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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의 첫날 - 떼오띠우아깐 본문

중미 3개국여행/멕시코

멕시코에서의 첫날 - 떼오띠우아깐

다보등 2013. 2. 15. 08:00

멕시코에서의 첫날 - 테오띠우아깐

 

 

 

 

 

 

 

 

지구반대편에서 맞이 한 아침이다.

이곳의 아침 기온은 제법 쌀쌀하다. 멕시코는 광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인만큼 기후 또한 다양하다. 이곳 멕시코 시티는 내륙 고지대라 건조하고 온화한 편이라 한다. 낮에는 햇볕이 무지 뜨겁던데 밤과 아침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춥다. 우리나라 가을같은 날씨이다. 도착한 첫날 나는 이다쌤이랑 한방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도 2인 1조로 방배정을 받을시엔 이다쌤이랑 한방을 쓰게 된다. 이다쌤은 우리땅 걷기 도반들중 이번에 함께 떠나 온 6명의 도반중 한명이다.이번에 함께 온 6명의 도반들은 차마고도를 함께 했고 네팔에서도 함께 하였고 또 이중 혜리는 나랑 터키도 함께 한 도반이며 그외 길고 짧은 국내여행을 참 많이 하였다.나는 배낭여행이 처음이지만 몇명은 배낭여행 고수들이다.이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게 된 중미여행이다. 멕시코에서의 아침은 이다쌤이 가지고 온 포트에 누룽지를 끓이고 무 장아찌로 초간단하나마 개운한 아침을 먹었다.

 

 

 

우리의 첫 메히꼬 데에페(멕시코 시티)에서의 일정은 인간이 신이 되는 거대도시 '떼오띠우아깐'을 찾아 가는 것이다. 우리의 길잡이 역할을 담당할 ' 핵심 중남미 100배 즐기기'를 가방에 챙겨 넣고 도반들 6명과 부산에서 온 영숙쌤을 포함 7명의 야심찬 인원이 호텔을 빠져 나왔다. 아! 투어를 신청하지 않고 우리랑 함께 하겠다고 따라 나선 청주에서 온 윤쌤과 울산 스님네 두분이 함께 했으니 총 10명이 길을 나섰다.100배에서 알려주는데로 이달고역에서 전철을 탔다. 숙소에서 이달고역까지 걸어서 10분거리에 있었다. 출근시간대의 전철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참고로 멕시코의 전철은 통로가 좁다. 얼핏 마을버스를 탄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복잡한 곳이므로 소매치기를 우려해 가방을 앞으로 맸다. 우리가 전철에 타자 많은 눈동자들이 우리를 향한다.여기서는 우리가 외국인인 것이다. 전철안의 멕시칸들, 의외로 많은 잡상인들,우리는 약간 긴장을 하였다.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녀 본 적이 없는 나로선 신기하기도 하고 긴장도 많이 되었다.우리의 친절한 길잡이 100배에서 알려 주는데로 전철을 한번 갈아타고 북쪽오토터미널에서 내렸다. 내리자 바로 터미널이 보였다. 테오띠우아깐가는 버스표 파는곳을 물어 물어 버스표를 구입했다. 오토버스터미널에서 유적지가는 버스를 타고 한시간 가량 이동을 하였다.그동안에도 버스는 몇번을 가다서다 사람들을 태우곤 하였다. 그런데 버스안에서 어찌나 잠이오던지 차창밖을 보고 싶은 맘은 따로 놀고 눈은 절로 내려 앉았다. 졸다보니 목적지에 도착을하였다.ㅋ

 

 

 

 

전철타러 가는 길에 만난 지하도안의 햄버거가게...

먹어 보고 싶었으나 아침도 먹었고 시간상 패쓰~~ㅋ

 

 

 

 

 

떼오띠우아깐은 기원후 300~600년 사이 멕시코 계곡에서 번성한 메소 아메리카 최대의 도시 문명이다. 전성기에는 약 15만명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도시이다. 세계 어느 문명보다도 거대한 규모로 번성했으며 과테말라의 마야문명까지 영향을 주었으나 기원후 600년에 접어 들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훗날 이 유적을 발견한 아스떽인들은 규모에 놀라 이곳을 신들의 도시라고 믿었고 태양과 달의 신화무대로 삼았다. 전설속에서 신들의 도시이자 죽은 인간이 신이 되는 장소로 이야기 되는 곳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남미대륙 한가운데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 도시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테오띠우깐에 입장을 하며 나랑 혜리는 제일 먼저 모자를 구입하였다. 뜨거운 햇살을 피하는 방법이다. 영숙쌤은 내내 까만 우산으로 벼텼다.ㅋ

날씨는 덥지 않아 딱 좋았으나 햇볕만큼은 송곳으로 찌르듯이 따가웠다.

 

 

 

입구에 들어서니 사방이 요새처럼 빙 둘러싸여 있는 커다란 정방형의 구조물 La Ciudadela가 눈앞으로 펼쳐 보인다. 이곳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었던 사제들과 관리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신전의 가운데 공터에는 2개의 작은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다. 그중 뒤편에 있는 께살꼬아틀의 신전으로 올라갔다. 아스텍인들이 하늘과 창조의 신인 께살꼬아틀(깃털 달린 뱀)을 섬기던 곳으로 계단 좌우와 기단마다 깃털이 달린 뱀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붉게 물들였던 색채가 흐미하게나마 남아있는데 나중에 들른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께살꼬아틀의 형상이 조각된 신전 기단...

 

 

 

 

 

 

 

께살꼬아틀 신전을 나와 고속도로처럼 넓직하게 길게 뻗은 길을 걸어 유적의 북쪽에 있는 신전으로 가는 길은 죽은자의 길(La Calle de los Muertos)이란다. 도로 양쪽 건물의 터를 고대 왕의 분묘로 생각했기 때문에 아스텍인은 이 길을 죽은자의 길이라고 불렀단다. 길의 양편에는 신전이나 주거지역으로 사용했던 건축물과 광장의 잔해가 남아있다. 그늘 한점없는 길은 한참을 걸어야 하므로 태양을 피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울산에서 오신 스님네 두분의 챙이 넓은 모자가 빛을 발휘하는 날이었다.

 

 

태양의 피라미드(Piramide de Sol)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3번째의 크기를 자랑하는 피라미드로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규모는 작지만 계단과 함께 단을 이룬 피라미드는 더 정교하다고. 16세기 발견 당시에는 태양신에게 바친 커다란 신전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주변을 둘러싼 3m 넓이의 해자나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아이들의 무덤 그리고 피라미드 내부에 동굴 등이 발견되면서 이곳에서 섬기던 신이 비의 신 뜰라록이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고.

 

 

용설란이 나무처럼 크게 자란 모습도 신기하다만 거기에 긁어서 흠집을 내어 낙서를 한 것을 보니 낙서본능은 어딜가나 똑 같은 모양이다.ㅋ

 

 

 

 

태양신전에 오르는 계단은 아찔하게 가파르고 높다. 아래를 내려다 볼라치면 어지러움증이 밀려왔다. 후둘거리는 다리를 몇번이나 쉬어가며 계단을 올라 갔다. 도중에 잠시 쉬다가 만난 유쾌한 멕시칸 가족들...함께 사진을 찍자며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고 우리에게 찍으라며 포즈를 취하기도 하였다. 아버지와 언니,동생과 그 언니의 딸과 그 동생의 딸 이렇게 다섯식구라고 소개를 하였다. 정말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진속에 파란색 옷을 입은 이가 언니인데 자신의 목에 두른 파란 스카프를 혜리에게 선물로 주기까지 하였다. 혜리가 파란색으로 깔마춤한 그녀를 이쁘다고 칭찬하였더니 답례로 그녀의 스카프를 풀어서 주었다. 잠시였지만 처음으로 만난 멕시칸에 대한 첫 인상이 참 좋았다.

 

 

 

높은 신전위에 앉아 내려다 보는 풍경이 평화스러워 보였다. 저 멀리 물러 앉은 낮으막한 산들, 옹기종기 듬성듬성 그림처럼 서있는 나무들. 파란하늘. 흰구름, 심하다 싶은 만큼 세게 부는 바람조차 사랑스러웠다. 얼마나 그 시간이 좋았던지...우리를 재촉하는 가이드가 없으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있고 싶은만큼 있을 수 있는 자유로움의 묘미를 이때 느낄 수 있었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신전이 달의 신전인 모양이다. 죽은자의 길 끝에 떼오띠우아깐의 실제적인 중심이라고 한다. 이제 저곳으로 가 볼 참이다.

 

 

기원후 500년경에 만들어진 밑변 가로 150m 세로 30m  높이 42m의 피라미드로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피라미드 자체의 크기는 작다. 하지만 실제적인 의례들이 모두 달의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중요성에서는 달의 피라미드가 앞선다고 한다.

 

 

 

 

달의 피라미드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죽은자의 길과 왼편으로 태양의 피라미드가 보인다. 피라미드라면 이집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도 피라미드가 있다는걸 알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무덤이라면 마야의 피라미드는 신전이라는 점이 다르다.

 

 

 

달의 신전에서 올라왔을때는 이제 햇볕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즐길 수 밖에. 피라미드는 윗부분이 평평하게 되어 있는지라 우리는 그 한가운데 앉아 사방을 둘러보며 즐기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우리만 그런게 아니고 다른 모든이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었다.준비해 간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곤 하였다. 이곳에 올라치면 모자와 자외선크림은 기본이고 물과 간식을 충분히 챙겨와야 하겠다. 유적지투어는 한낮에는 너무 뜨겁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와야함은 기본이다.

 

 

 

죽은자의 길이 끝나는 북쪽 끝. 달의 피라미드앞 서쪽편에 작은 피라미드 사이에는 기둥이 세워진 께쌀빠빨로뜰 궁전이 있다. 달의 피라미드에서 제례를 관장하던 신관이나 왕족이 거주하던 곳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께쌀빠빨로뜰 궁전 옆에는 깃털 달린 재규어 벽화가 선명한 재규어의 뜰도 있다.

 

 

 

떼오띠우아깐을 돌아보고 나오니 허기가 진다. 그러나 달리 이곳에서는 먹을 만한 곳이 없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였다. 이번엔 과달루페사원으로 간다. 그런데 과달루페사원은 백배에 소개가 되어 있지 않다. 다만 투어를 신청하면 투어코스에 과달루페사원이 들어 있길래 가보자고 버스를 탔다. 버스기사에게 과달루페사원에서 내려 달라 부탁하고 돌아보니 버스안은 만원이었고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아 일제히 졸기 시작을 하였다.그런데 참 멀다. 버스타고 한시간도 넘게 간다. 긴 비행시간과 시차, 배고픔으로 지친다. 거기다 몸이 피곤하고 배가 고프니 멀미까지 난다. 어질어질 고통속에 어디쯤에선가 내리라는 소동이 일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모양이다. 마침 환전소가 있어 우리 모두 200불씩 페소로 환전을 하였다. 어제 공항에서는 일인당 50불씩 내어 총무가 대표로 환전을 하여 단체경비로 쓰기로 하였고, 이번엔 개인경비로 쓸 돈이다. 200불을 환전하니 2,480페소이다.갑자기 부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ㅋ

 

 

 

과달루페사원은 검은 마리아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특별한 날에는 검은 성모에게 예배를 드리러 중남미의 많은 신자들이 방문한다고. 마침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서인지 미사집전중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중이었다. 경건한 얼굴들, 무릎을 꿇은 사람들, 신심이 가득한 그들의 표정에서 엄숙함과 경건함이 묻어 나왔다. 사진찍기조차 미안할 정도였다.

 

 

 

과달루페 성모라고 불리우는 이 검은 마리아는 1531년 멕시코 원주민 디에고에게 검은 피부를 하고 장미빛 옷에 푸른 망토를 두른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셨단다. 세차례에 걸쳐 나타난 성모는 자신의 존재를 믿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검은 피부를 가진 자신의 모습을 그려줬는데 이 그림이 교황청의 인정을 받게 되고 성모가 모습을 드려냈던 그 자리에 성당이 세워졌다.이 성당에 있는 그림이 그때 그림이라는데 관광객들에게 경외심과 의심의 눈초리를 함께 받고 있다고 한다.

 

 

 

 

 

 

 

과달루페사원을 뒤로하고 이번엔 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타기로 하였다. 마침 뉴욕에서 공부중에 잠시 여행을 왔다는 여학생을 만나 쉽게 지하철역으로 이동을 하였다. 이번 여행하면서 참 많은 젊은 한국학생들은 만났다. 미국유학중에 여행 왔다는 학생들도 많이 만나기도 하였고, 군제대후 복학을 미루고 중남미 여행중이라는 학생들도 만났다. 과테말라의 안티구아에서는 스펜어 공부를 하며 취미로 살사를 배우고 있던 학생도 만났다. 부모를 잘 둔 덕이라며 부러워했다. 방학중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버느라 한눈 팔 사이도 없는 학생들이 있나면 이렇듯 여행을 하며 경험을 쌓고 있는 학생들도 있으니 말이다. 암튼 이 여학생덕분에 편하게 메히꼬 테에페의 소깔로 광장으로 왔다.

 

 

 

소깔로광장에서는 국기하강식이 진행중이었다. 처음엔 군인들이 있어 무슨일인가 했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국기는 내려졌고 접어서 이동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큰 국기인지 접은 국기를 군인들이 줄을 지어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이다. 커다란 멕시코 국기가 펄럭이는 소깔로 광장을 보지못해 아쉬웠다.

 

 

 

 

 

 

우선 허기를 채워야 했다. 종일 굶은 셈인 것이다. 100배에서 소개한 식당을 찾아 이리저리 길을 헤매었다. 가까스로 찾은 식당은 치킨집이다. 주문하는데도 만만치 않다. 일단 스펜어를 알 수가 없고, 또 어떤 음식인지 알 수가 없고 손짓발짓으로 총무를 맡은 영숙쌤과 선화씨가 주문을 하느라 고생을 하였다. 가까스로 주문한 음식들은 어딘지 어설퍼 2%로 부족한 식사였지만 얼마만에 앉아서 먹는 밥이냐며 즐거워들 했다. 어두운 밤거리를 30여분 걸어서 숙소로 갔다. 밤거리에는 12월31일 송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너무 피곤하여 공원에서 즐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한시라도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제 공항에서 오지않았던 가방은 달라스에서 하루를 묵히고 오늘 호텔에 도착을 하였다. 인천에서 부친 짐은 멕시코로  논스톱으로 와야했는데 나랑 혜리 가방이 달라스에서 멕시코행 비행기에 짐이 실리지 않았단다. 당황스럽긴 하였으나 다행히 달라스공항에서 하루를 묵히고 하루 늦게 배달이 되었다. 그런데 받아 든 가방은 달라스공항에서 짐 수색을 당하였고(내 가방뿐만이 아니라 함께 온 대부분의 사람들도 수색을 당했다), 캐리어를 묶었던 안전잠김벨트가 망가져서 열리지 않는다.비번을 넣어도 꿈쩍도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가위로 벨트를 자르는 산고(?)를 치뤘다. 그러기나 말기나 하루만에라도 가방이 돌아 온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12월 31일을 보내는 멕시코시티는 밤새 축포소리로 떠들썩하다. 빨래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너무 피곤하여 눕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었으나 자정을 넘기며 한시간 간격으로 잠이 깬다. 시차가 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