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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의 불꽃이 잠든 '산타 클라라' 본문

중미 3개국여행/쿠바

<쿠바> 혁명의 불꽃이 잠든 '산타 클라라'

다보등 2013. 6. 24. 10:00

<쿠바> 혁명의 불꽃이 잠든 '산타 클라라'

 

 

 

 

 

 

세상 곳곳의 사람들을 이 먼곳까지 부르는 단 하나의 이름, 체 게바라.

1960년대 혁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체 게바라.

혁명의 이상적인 실현 말고는 아무것도 원치 않았던 체의 순수함이 전파되는 것일까.

평화로 가득찬 공기만큼이나 사심없는 미소를 베푸는 여유가 이곳 산타클라라에 남아 있다.

참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이곳에 묻힌 체 게바라에게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말 그대로, 인류의 모든 혁명적인 열정과 함께 포옹을!

 

 

 

 

산타 클라라로 가는 두시간의 길.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황량해 보이는 너른 들판이다. 농작물보다는 버려진 땅처럼 보이기도 하고 오렌지로 보이는 주황색열매가 군데군데 달린 나무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다. 그 황량해 보이는 넓디넓은 들판에는 의외로 가로,세로로 반듯반듯하게 길이 나있다. 지루할 틈도 없이 어느새 도착을 하였다. 산타 클라라의 중심 광장인 '비달광장' 바로 앞에 우리가 묵을 HOTEL SANTA CLARA LIBRE 가 있다. 일찍 도착한 관계로 방을 배정받지 못하고 시간이 아까운 우리는 그 동안을 기다릴 수가 없어 우선 가방을 보관소에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가이드북에 나와있는 MN으로 계산을 할 수 있다는 식당을 찾아 갔다.

 

 

 

 

 

 

Restaurante Amanecer 은 현지인들이 줄 서서 먹는 곳이란다. 제법 깔끔해서 CUC식당처럼 보이지만 MN으로 계산하는 식당이다.

우리는 이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띄엄띄엄 메달린 전등의 흐릿한 불빛으로 어두침침한게 분위기가 그랬지만 제법 북적이는 식당은 소문대로 이름난 곳인 모양이다. 메뉴판을 들여다 보며 우리는 각자 먹고 싶은 것으로 주문했다. 스파게티, 돼지고기 요리, 닭요리 등...물론 Cristal은 기본~~!!

뭣보다 MN으로 계산한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비달광장을 중심으로 시내의 볼거리는 걸어서 20여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산따클라라의 가장 중요한 볼거리인 혁명기념탑과 장갑열차 기념비는 동쪽과 서쪽 끝에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마차나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우리는 택시보다는 마차를 타고 체 게바라기념관으로 가기로 하였다. 다가닥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게 거리를 울렸다. 적당한 울림과 진동이 또한 흥미로웠다.

이곳 산타 클라라는 체 게바라와 관련된 2개의 기념비를 제외하고는 특징 있는 명소가 별로 없는 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관광객들에게 덜 물든 평화로운 쿠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한적한 소도시의 풍경이 펼쳐졌다.

 

 

 

 

 

 

 

볼리비아에서 사망한 체의 20주년을 기리기 위해 1987년 세워진 동상. 수류탄과 단검, 총으로 무장한 가장 단호한 모습의 체 바라를 만날 수 있다. 까스뜨로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명한 편지가 동상 오른편에 새겨져 있다. 1997년 체 게바라와 17명의 동지의 유골이 이곳에 안착되었다.

 

이 동상 아래부분은 박물관과 추모관 2개로 나누어 있다.(박물관에 들어 가기전에 모든 소지품을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당연 촬영금지이다.)

박물관에는 체 게바라의 어릴 적 사진과 출생증명서, 그가 혁명 과정을 거치며 사용한 무기들, 전쟁중에 쓴 편지 등이 진열되어 있다. 특히 체 게바라의 사진은 밖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대부분.

 

 

 

게바라가 쿠바를 떠난 지 여섯 달 뒤인 1965년 10월에 카스트로는 유명한 게바라의 작별 편지를 공개했다. 그 편지에서 게바라는 관직을 사퇴하고 쿠바 시민권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체 게바라가 카스트로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명한 편지가 동상 오른편에 새겨져 있다.

『당신이 나에게 서서히 가르쳐 준 신념, 우리 민중의 혁명적 정신, 가장 신성한 의무 - 어디서든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것 - 를 이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새로운 전장으로 가져갑니다.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쿠바를 모든 책임 - 나 자신한테서 비롯한 책임을 제외한 - 에서 면제시켜 준다는 것입니다.』-체 게바라와 쿠바혁명/마이크 곤살레스-

 

 

 

Hasta la victoria siemper 영원한 승리를 위하여!

 

 

 

192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산층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가 되기를 꿈꾸는 평범한 청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친구와의 오토바이 남미일주(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비참한 현실과 정체성을 깨달은 후 혁명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멕시코에서 피델 까스트로와 의기투합해 쿠바로 넘어 간 후 산띠아고 데 쿠바 근교의 시에라 마에스뜨라에서 본격적인 게릴라 활동을 시작한다. 2년동안 의사며 지휘관이자 게릴라로 활동했던 그는 산따 클라라에서의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바띠스타 정부 전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혁명에 성공한 후 쿠바시민권을 얻어 까스트로 정부의 제 2인자로 잠시 활동하지만 민중과 떨어진 관료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혁명의 완성을 위해 아프리카의 콩고와 볼리비아로 떠난다. 그리고 1967년 10월 미군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잡힌 그는 재판도 받지 못하고 총살로 그의 나이 39세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1960년 8월8일자에 체 게바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서평을 싣기도 했다.

"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얼굴이자 목소리이며 정신이다. 라울 카스트로는 혁명을 위해 뽑은 단검이다.

게바라는 두뇌에 해당한다.그는 삼두정치의 거두 가운데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그는 많은 여성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 달콤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미소를 지니고 있다. 체는 냉정할 정도로 빈틈없는 정신과 비범한 능력, 높은 지성,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쿠바를 뒤흔들고 있다."

 

 

 

 

 

 

 

 

 

 

 

 일행들을 기다리며 나무 그늘아래 앉아 체의 동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1960년대 혁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체 게바라. 그 열기는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 쿠바에 오기전에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여행을 앞두고 쿠바 여행기에서 그를 언급한 글을 읽어 보기도 하고 그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검색하여 읽어 보기도 하였다. 돌아가면 그의 평전을 챙겨 봐야겠다는 이도 있다. 나 역시 돌아와서 도서관을 찾았다. 쿠바에 관련된 여러권의 책을 읽었다. 여행기도 다시 챙겨 읽었다. 그리고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체 게바라 평전을 펼쳐보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무 두꺼워 손에서 내려 놓고 그 보다 조금 얇은 듯한 마이크 곤살레스가 지은 "체 게바라와 쿠바혁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책을 반납하기전 천천히 다시 한번 더 읽어 보았다. 조금...아주 조금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아니다 여전히 잘 모른다. 그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