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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떠있는 작은 모래섬 청령포/한강종주 4차 본문

물길따라 떠나는 여행/1300리 길 한강을 걷다

강에 떠있는 작은 모래섬 청령포/한강종주 4차

다보등 2013. 7. 4. 10:00

강에 떠있는 작은 모래섬 청령포/한강종주 4차

 

 

 

 

 

 

단종이 귀양을 와서 머물렀던 청령포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쌓여 있으며 한쪽은 벼랑이 솟아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게 막힌 곳이다. 단종이 이곳에 머물러 있을 때 매월당 김시습이 두어번 다녀갔다고 한다. 그때 매월당은 이곳에 와서 인생이 얼마나 뜬구름 같은가를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냐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미친듯이 소리쳐 옛 사람에 물어보자

옛 사람도 이랬더냐 이게 아니더냐?

산아 네 말 물어보자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림자는 돌아다봤자 외로울 따름이고

갈림길에서 눈물 흘렸던 것은 길이 막혔던 탓

삶이란 그날 그날 주어지는 것이었으며

살아 생전의 희비애락은 물위의 물결 같은것

그리하여 말하지 않았던가

이룩한 미완성 하나가 여기 있노라고

혼이여 돌아가자 어디인들 있을데 없으랴." (...) -우리땅 걷기 신정일-

 

 

 

 

1457년 10월 24일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 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청령포를 바라 보면서 시조를 읊었던 곳이다. 1617년 병조참의 용계 김지남이 영월 순시때 아이들이 이 시조를 노랫가락으로 부르는 것을 듣고 다음과 같이 한시를 지어 후세에 전하였다.

 

 

 

 

 

 

 

여기서 2개월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그 해에 있었던 큰 홍수로 인하여 읍내 관풍헌(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으로 어소를 옮겨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조는 노산군과 금성대군을 사사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계속되는 주청에 결국 어린 조카인 단종에게 사약을 내렸다.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은 단종은 1457년 10월 24일, 17세의 어린 나이로 관풍헌에서 그 짧고도 슬픈 생을 마감했다.

 

 

단종의 시신은 강물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단종의 시신에 손을 대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명에도 불구하고 동강에 떠 다니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선산에 묻었던 영월호장 엄홍도는 훗날 단종이 복위된 후 충절의 상징으로 함께 부활했다.

 

 

 

 

 

 

청령포/ 국가지정 명승 50호

 

 

 

 

 

 

 

단종어소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단종어소 앞마당에는 영조 39년(1763)에 '단묘재본부시유지비'를 세워 소실된 단종의 어소위치를 전하고 있다.

 

 

 

 

 

<관음송>/천연기념물 349호

관음송이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볼 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音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 한다.

나이는 600년 정도를 추정되며 줄기가 유난히 붉고 줄기 중간에 잔가지가 없는 키가 큰 아름다운 소나무이다.

 

 

 

 

 

 

 

 

 

원통한 새 한마리가 궁중을 나오니

외로운 몸 그림자마저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매누나

밤은 오는데 잠들 수가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새벽 산에 울음소리 끊어지고 달이 흰 빛을 잃어가면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겠구나

하늘은 귀 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서러운 이 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지는가/'연려실기술', '장릉지'에 수록된 단종의 시

 

 

 

 

 

 

 

조선 제22대 정조의 태실이 있는 곳으로 오르는 길은 계족산 등산로안내도가 함께한다.

 

 

 

 

정종대왕 태실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조선 제22대 정종대왕의 태를 봉안한 태실비로서 영조 29년(1753)에 영월읍 정양리 태봉에 처음 조성되었고 정조가 사망하자 순조 원년(1801)에 가봉하고 비를 세웠다. 1929년 이왕직에서는 태실의 관리와 유지가 어렵다는 이유로 태를 창경궁으로 옮겼으며 태실은 그 이후 석회광산의 개발로 훼손. 매몰되었던 것을 1967년 금강공원으로 옮겨 관리해 왔으면 1997년 현 위치에 복원하였다.

 

 

 

 

원래는 정종이었다가 나중에 업적을 높이사 정조로 시호가 바뀌었다고 한다.

참고로 조선 제2대왕 정종의 태실은 김천 직지사에 있다.

 

 

 

 

 

 

 

 

 (사)우리땅걷기에서는 1300리 길 한강종주를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시작을 하였고 12월까지 이어질 한강따라 걷는 여정에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강의 물줄기 태백시 검룡소에서 시작되어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에서 강으로서의 생을 마감한 후 서해로 들어가는 한강의 긴여정에 두발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