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시대를 앞서간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묘/한강종주 본문

물길따라 떠나는 여행/1300리 길 한강을 걷다

시대를 앞서간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묘/한강종주

다보등 2013. 10. 31. 16:31

시대를 앞서간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묘/한강종주

 

 

 

 

 

 

 

 

 

허난설헌의 본명을 초희이다. 그녀는 명종 18년 강릉에서 초당 허엽의 3남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홍길동을 지은 허균의 누나이다.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은 가부장적인 성리학 이념체계 아래 여성들이 설 곳은 점차 좁아졌다. 여성은 글을 배우기는 커녕 집안일과 대를 잇는 역할만을 잘 해내면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난설헌은 자유로운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나 초희라는 이름도 가졌을뿐더러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을 기회도 주어졌다.

 

 

 

그 허난설헌의 묘가  경기도 광주에 있다고 한다.

종일 한강변을 따라 걸은 우리는 하루의 끄트머리에 그녀의 묘를 찾아갔다. 비가 촉촉히 내린 후였다.

 

 

 

허난설헌의 묘/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 산 29-5

 

그녀의 존재는 기생 황진이와 달리 사대부가문 출신이라는 점, 신사임당과 달리 현모양처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독특하게 다가온다.

오로지 시로써 자신의 이름을 남겼고, 후대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극찬을 받을 만큼 천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여자로 태어난 것을, 조선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김성립이 남편이었다는 세 가지 恨으로 여긴 여자였다.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 가부장적인 가풍의 시댁에서의 삶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남편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내로서 견뎌내기 힘들었고, 이 때문에 고된 시집살이를 겪었다. 두명의 아이를 잃고...친정의 몰락에 대한 안타까움, 부부간의 불화, 그녀의 인생은 우울함의 연속이었다.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거두었다.

 

 

아들 딸 여의고서/

지난 해 귀여운 딸을 여의고

올해도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아무렴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이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매인다. 허초희

 

 

 

 

 

아래는 난설헌의 묘 입구 인근에 있는 공장에 있던...

이런 류의 인형들을 제작하는 공장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