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이도우 장편소설 본문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책 제목이 참 맘에 들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갈 어떤 곳이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참 설레인다.
어떤 날을 좋은 날씨라고 할까?
저마다 좋다고 느끼는 날씨는 조금씩 다르지 않을 까 싶기도 하고...
☆ 버스는 서리가 내린 혜천읍 들판을 지나고 있었다. 산이 많은 마을. 햇볕은 미약하고 차창 밖 풍경은 색이 날아간 필름사진처럼 무채색에 가까웠다.
버스는 얼어붙은 논밭을 지나 낯익은 북현리로 접어들었다. 들판에 커다랗고 하얀 마시멜로들이 뒹굴고 있었다. 추수하고 남은 짚을 발효시키는 통이었는데 진짜 이름이 뭐였더라. 언젠가 들었던 것도 같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해원은 잠시 짚어보다 저 멀리 보이는 논두렁 스케이트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음 정거장이다.
☆ 삼거리에서 언덕으로 접어드는데 처음 보는 가게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굿나잇책방
그 낡은 기와집은 오래전부터 이 마을에 있었지만 새로 걸린 낯선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노부부가 살던 집이었는데 그 새 주인이 바뀐 것일까?
"이 시골에 서점...?"
미닫이문에 맹꽁이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 논두렁 스케이트장에서 일하던 은섭은 그의 닫힌 책방을 기웃거리는 해원을 보고 멈칫 놀란다. 언젠가 그에게 무심히 겨울 들판의 마시멜로 이름을 묻던 이웃집 그녀가 돌아왔으니까...
☆ 겨울이 와서 좋은 이유는 그저 한 가지. 내 창을 가리던 나뭇잎들이 떨어져 건너편 당신의 창이 보인다는 것.
크리스마스가 오고, 설날이 다가와서 당신이 이 마을로 며칠 돌아온다는 것.
☆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미리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떠나. 그러니 그때까지는 부디 행복하기를.
서울에서 그림을 가르치던 일을 그만두고 펜션을 운영하는 이모 곁에서 한동안 지내기로 한 해원이 북현리 집으로 돌아온다.
이 시골에 뜬금없다 생각한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동안 몰랐던 고향을 알아간다. 고향친구들, 이모의 비밀, 보영이와의 서먹한 만남, 책방에 모인 사람들, 서로에게 많이 미안한 이들이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후회한다고, 용서해달라고, 이미 용서했다고...
그 말들을 비로소 용기 내어 전하는 이야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풋풋한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하기 쉽지 않은 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향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다시 돌아왔을 때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스며있다.
고향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그렇게 훌쩍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
얼마나 큰 위로이며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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