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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길 위의 작가 김주영 <객주 문학관>/청송군 진보면 본문

우리땅 구석구석~~/경상도

길 위의 작가 김주영 <객주 문학관>/청송군 진보면

다보등 2021. 12. 9. 10:27

청송군 주왕산과 달기약수를 둘러보고 진보면으로 돌아오니 오후 늦은 시간이 되었다. 청송군 진보면 이곳에 <객주문학관>이 있어 둘러보기로 하였다. 그때 시간이 4시 30분인데 문학관이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하여 부지런히 둘러보기로.

 

19세기 말 조선 팔도를 누빈 보부상들을 중심으로 민중 생활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

한국 역사 소설의 지평을 넓힌 「객주」를 테마로 문을 연 객주문학관은 폐교된 고등학교 건물을 증.개축하였다.

 

 

작가 김주영은 1939년 경상북도 청송 출생.

(본인이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문학관을 짓는다고 하여 개관을 반대하였다고)

 

1971년 단편소설 「휴면기」가 <월간문학> 신인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치열한 현장 취재를 발판으로  대하소설 「객주」, 「활빈도」,「천둥소리」,「화척」 등의 선 굵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모든 글은 작가의 자선전이자 반성문이라고 생각하며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이야기꾼이 되고자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객주문학관은 작가의 문학 세계를 담은 전시관부터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전시 및 신진 작가들을 위한 창작 스튜디오 등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며 전시관, 연수관, 창작관 등으로 이루어졌다.

3층부터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관람할 수 있게 동선이 구성되어있었다.

3층은 소설 <객주>를 한 눈에 볼 수있는 전시실로 작품 관련 전시뿐만 아니라 보부상들의 활동상이나 조선 후기 상업사를 엿볼 수 있는 조형물이 재현되어 있다.

2층은 영상교육실, 1층은 소설도서관으로 작가 김주영이 소장했던 자료와 국내 간행 소설책들을 구비해 소설전문도서관을 구축했다.

 

 

객주를 읽어보진 않았으나 오래전 객주를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장사의 신>은 보았던 기억이 난다.

것도 띄엄띄엄 보았던 터라 가물가물하다.

객주문학관을 둘러보며 올 겨울엔 따뜻한 도서관에서 소설 <객주>에 도전해 볼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실 자신은 없다...ㅎ)

 

 

작가가 '객주'를 집필하기 위해 4년여 동안 전국의 저자거리를 유량하며 썼다는 원고노트를 보면서 경악(?), 감탄하였다.

와아~~!!

세상에나! 어찌나 글씨가 작은지 돋보기로 보아도 힘들 것 같은 그런 깨알같은 글씨...

더 감탄스러운 건 글씨는 깨알같이 작아도 글씨가 너무나 바르다.

어쩜 깨알같은 글씨를 어찌 이리 예쁘게 또박또박 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렇게 글씨를 작게 쓴 이유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글을 메모할려면 무게와 부피를 줄여야 하는 관계로 최대한 작게 글을 써서 많은 글을 쓰기위함이라고. 

 

보부상들의 사진

 

「객주」는, 조선팔도를 어우르는 유장한 보부상 길, 그 험난하고 고단한 행로와 함께 구한 말 저잣거리의 눈물겨운 희로애락을 속속들이 재현한 걸작으로 꼽힌다. 이는 '남쪽의 땅 끝에서 휴전선 턱 밑까지 샅샅이 밟아 뒤지고' 다녔던 작가 김주영의 치열했던 저잣거리 답사와 조선 후기 상업사에 대한 연구와 남다른 상상력이 빚어낸 탁월한 성과물이다.

 

1980년대 신문 연재부터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만화(그림 이두호)와 드라마(장사의 신)로도 만들어졌다.

 

 

길 위에서 사는 보부상들은 한 번 길을 나서면 짚신도 무지하게 많이 필요했을 터. 

 

 

산적이 출몰하는 고갯길 아래의 주막에서는 십수 명의 길손들이 집결할 때까지 여러 날을 유숙하기도 하였다.

주막 주인은 예로부터 음식값은 받았으나 숙박료는 받지 않았다고.

 

 

"걷고 또 걸어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는 길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소설 '객주' 중에서 )

평생 걸어온 길에서 소설의 주인공처럼 느끼는 외로움은, 82살의 작가를 다시 새로운 창작으로 이끄는 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