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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출산 무위사無爲寺 본문

사찰여행

강진 월출산 무위사無爲寺

다보등 2022. 3. 17. 16:47

2022년 2월 27일

의외로 국보도 많고 보물도 많은 월출산 무위사가 있다는 것을 강진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노자사상의 중요 화두인 '無爲'라는 이름을 단 절집은 일주문 앞에 주차를 하면 바로 사찰내로 진입할 수 있다. 많은 국보와 보물이 있음에도 문화재 관람료가 없다. 주차비를 내라고 하는 이도 없다. 굳이 입장료 때문만이 아니라도 맘이 편한 절집이었다.

 

월출산무위사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관음사로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히 알 지 못한다. 무위사사적에 의하면 시절따라 여러번의 중창에 3창을 거듭하며 그때마다 이름도 바뀌다가 1555년(명종 10년)에 태감선사가 4창을 하고 비로소 절의 이름이 '무위사'로 되었다고 한다.

무위사는 죽은 영혼을 달래는 수륙재를 지낸 사찰인 만큼 대웅보전이 아니라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이 본전이다.

(수륙재(水陸齋)는 물과 육지에 있는 혼령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식을 행하는 재(齋)로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중기까지 국행수륙재를 올렸다. 무위사는 세종대왕의 명으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고려의 충신과 왕족들의 넋을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으로 위로하며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극락보전을 지어 수륙재 봉행을 이어왔다)

 

 

 

무위사에서 눈여겨 볼 것은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의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이다. 극락보전은 정면에서 보면 직선으로 뻗은 처마가 간결하다. 화려하지 않으나 우아하고 단정한 멋이 풍겨나는 극락보전은 무위사(無爲寺)라는 절집 이름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전각이 아닌가 싶다. 내부에 아미타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 삼존좌상(아미타삼존좌상 보물 제1312호)가 봉안되었고, 뒤 벽면에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제131호),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가 조성되어있다. 무위사에 왔다면 놓치지 말아야할 포인트로 극락보전 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필히 친견할 것을 추천한다.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제13호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을 나눈 절제된 아름다움도 감상 포인트다. 화려한 단청이나 그 흔한 용두조각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 나무결이 있고 유흥준 교수님은 '기둥과 들보를 노출하여 조화로운 면 분활로 집의 단정한 멋'으로 칭찬한 측면은 치자빛 물감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극락보전 앞쪽으로 너른 마당 건너편에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어 눈길을 끌고 있는 반면에 그 옆의 배롱나무는 아직은 내 차례가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위사 홍매화

 

배롱나무

 

극락전 우측편의 무위사 삼층석탑은 고려초기의 석탑으로 무위사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탑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이 탑은 전형적인 2층 기단의 3층 석탑으로 각 부재가 잘 조화되어 균형미를 느낄 수 있는 석탑이다. 

 

무위사 삼층석탑,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

 

선각대사 형미(逈微)는 신라 말의 명승으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지 14년 만에 돌아와 무위사에 8년간 머무르다가 고려 태조 원년(918년)에 입적하자 고려 태조가 '선각先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 명을 '편광탑'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비는 대사가 입적한 지 28년 만인 946년(정종 1)에 건립되었다. 비는 비받침과 비몸돌, 머릿돌을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이다.

선각대사탑비, 보물 제507호

 

선각대사탑비 뒤쪽으로 미륵전이 있다. 미륵전 안에 있는 미륵불은 머리를 한껏 부풀리고 두툼한 입술을 한 동네아주머니같은 스타일이라 자꾸만 미소짓게 만든다. 불상이라 보기엔 무리가 따르는 석조물인데도 경외감과 친근감이 든다.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 수암마을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이곳으로 모셨다고 한다.

 

미륵보살

 

월출산산신각의 길쭉한 글자체도 독특하고 익살스럽다.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극락보전 내벽사면에 있는 국보, 보물의 벽화들을 관람하였다. 

 

아미타여래삼존벽화, 국보 제313호

중앙의 높은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서있는 뒤쪽에 6명의 나한이 두 손을 공손히 합장하고 있다.

 

아미타여래삼존벽화, 국보 제313호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는 아미타여래삼존도와 함께 1476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후불벽 뒤에 그려진 관음도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수작으로 손꼽힌다. 우측 상단에는 고려시대 문인 유자량이 쓴 낙산관음찬이 쓰여있다.

백의관음도에는 노거사가 벽화를 그릴  49일 동안 법당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하였으나 한 승려가 호기심에 들여다보자 한 마리의 새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날아가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백의관음도, 보물 제1314호
내벽사면벽화, 보물 제1315호

 

 

극락보전 오른쪽 뒤편으로 새롭게 불사를 시작하는 대적광전은 400년 전에 소실된 법당을 복원하는 불사라고 한다.

극락보전이 자리한 옛 모습에 반해 나의문화답사기의 유흥준교수는 강진에 올 때마다 들렸다고 한다.

관리가 잘되는 모습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자꾸만 옛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까울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