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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절집다움이 스며있는 완주 화암사 본문

사찰여행

절집다움이 스며있는 완주 화암사

다보등 2021. 10. 8. 14:35

얼마 전에 전주에 있는 절친 영희언니를 만나러 갔더랬다. 나보다 9살 많은 언니지만 누구못지 않게 건강하게 잘 지내시더니 어느날 부터인가 '나도 나이만큼 아픈 곳이 생긴다'며 병원 순례를 하더니 얼마전에 백내장 수술을 하였단다. 본지 오래라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할 요량으로 문득 아침에 광명역에서 KTX를 타고 전주엘 갔다. KTX광명역에서 전주까지 1시간 20여분이면 닿는 좋은 세상이다. 전주는 마치 나의 친정같은 곳이라 여겨지는 것도 영희언니 때문이다. 생면부지의 남이지만 10년도 전에 윈난성 호도협에서 룸메이트로 만나 지금까지 친정언니처럼 한결같이 따뜻한 분이다. 느닷없이 찾아갔으나 반가이 맞아주는 언니네서 잠시 발을 뻗고 앉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완주 화암사엘 가게 되었다.

 

왜냐면, 기차안에 비치되어 있던 KTX매거진에 여러곳의 관광지가 소개되어 있던데 그중에 완주에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이 소개가 되어있더라는 말을 했더니 술박물관은 되었다며 이왕에 완주 이야기가 나왔으니 화암사엘 가자고 했다.

 

 

화암사하면 지난 3월 초 생각지도 않은 많은 눈이 내려 감탄을 하며 눈산행을 하였던 고성 금강산 화암사가 생각이 난다. 같은 이름을 가진 완주 화암사와는 몇 번의 기회를 놓치고 나니 영 인연이 닿지 않았더랬다. 오늘에사 화암사와의 인연이 닿는 날인가 보다 생각하며 기뻐하였다. 이 참에 예전에 읽었던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에 대한 글이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다. 

<잘 늙은 절, 화암사>안도현 시인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 지 모르겠다...(중략)...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금도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화암사가 그러하다. 어지간한 지도에는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밝히기를 꺼리는,

그래서 나 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다.

십여년 전 쯤에 우연히 누군가 내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화암사 한번 가보라고.

숨어있는 절이라고, 가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고.

 

 

불명산 깊은 자락에 숨어있는 화암사는 계곡인지 길인지 모를 좁은 계곡을 올라야 하는 제법 높은 곳에 있는 절집이다. 화암사 가는 길은 온통 바위투성이에 미끄럽기까지 하여 주의를 기울이며 올라야 한다. 다행인건 군데군데 나무데크가 놓여 그나마 수월하다는 것이다. 100개인지 200개인지 모를 철계단을 올라야 하는 수고끝에 이제 다 올랐나 싶지만 막판 큼직한 돌계단까지 마져 올라야 겨우 절집에 닿을 수 있다.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없는 작은 절집이다. 

 

 

 

수량은 대단치 않으나 20여 미터는 됨직한 시원스런 폭포를 보니 얼마전에 읽었던 주쯔칭(朱自清, 1898~1948)의 '초록'이라는 산문에 폭포수가 떨어지는 못에 대한 표현이 아름다워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있다. 

 

'초록은 젊은 아낙의 길게 끌리는 치맛자락처럼 느슨하게 주름지고, 첫사랑에 빠진 처녀의 심장처럼 살랑살랑 나대었다. 물결은 기름을 바른 듯 매끈하고 환하게 빛났을 뿐 아니라 달걀흰자처럼 부드럽고 야들야들해 내 평생 만져본 가장 부드러운 피부를 연상시켰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못의 초록물빛을 표현한 대목인데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까마득한 폭포 위로 얼핏 철계단이 보인다. 오래전엔 가파른 돌계단을 기어오르듯 가야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철계단 숫자에 놀랄 일이 아니다. 세상 편해진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출입금지인 옛길이다

「화암사는 불명산 기슭에 있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봉우리들은 비스듬히 잇닿아 있으니,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어 사람은 물론 소나 말의 발길도 끊어진지 오래다.(중략) 골짜기 어귀에 바위 벼랑이 있는데 높이가 수십길에 이른다. 골골의 계곡물이 흘러내려 여기에 이르면 폭포를 이룬다. 그 바위벼랑의 허리를 감고 가느다란 길이 나 있으니 폭은 겨우 한자 남짓이다. 이 벼랑을 부여잡고 올라야 비로소 절에 닿는다.」

 

15세기에 씌어진 <화암사중창기>구절이다.

하...내가 보기엔 50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별시리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은 절이다.

 

 

드디어 절집이 살짝 모습을 보여준다. 예까지 오는 쉽지않은 길을 생각하면 아무나 쉽사리 접근을 허락치 않겠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 일주문 대신 빛바랜 우화루가 고고한 모습으로 객을 맞아 준다.

 

 

<화암사 우화루> 보물 제662호

이 건물은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다시 지은 것으로 뜰을 사이에 두고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다.

절 입구 쪽에서 보면 돌로 쌓은 축대 밑으로부터 높은 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마루를 놓아 2층의 누각처럼 보인다. 반면 뒤에 자리한 극락전 쪽에서 보면 마루바닥이 뜰과 같은 높이에 있어 단층 건물로 보인다. 극락전 쪽은 전면이 환하게 트여 있지만 맞은 편은 널빤지로 막고 창문을 내었으며 양 옆에는 흙벽을 쌓았다. 이 우화루는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는 건물이다.

 

 

우화루 오른편 쪽에 가는잎유홍초(새깃유홍초)를 정성스럽게 곱게 가꾸고 있어 눈길을 끌게 한다.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유홍초와 더불어 자라고 있는 꽈리같은 이것은 풍선처럼 생겼다하여 '풍선초(풍선덩굴)'라 한다.

풍선이란 이름이 들어가서인지 귀엽기 그지없다. 

풍등처럼 하늘에 띄우면 동동 떠오를 것 같다. 

 

 

우화루의 왼쪽에 있는 돌계단을 밟고 마치 가정집 대문을 들어서듯 들어서면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마당이다. 극락전과 우화루, 적묵당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적묵당 마루에 걸터 앉아 마주 보이는 불명산 자락을 보며 멍때리기 딱 좋은 곳인 듯 싶다. 정말 단촐한 ㅁ자형의 소박한 공간배치가 아늑함을 더해준다.

 

보이는 게 다인 화암사 절마당

 

<화암사 극락전> 국보 316호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죽은 이를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곳이다. 조선 세종 7년(1425)에서 세종 22년(1440)사이에 고쳐 짓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선조 38년(1605)에 다시 지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고쳐 짓기를 반복했으며, 2004년에도 해제.보수 작업을 진행하였다.

 

화암사 극락전, 국보 316호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하앙식 구조로 된 건물이다. 하앙은 지붕의 하중을 분산하고자 기둥과 지붕 사이에 끼운 긴 서까래를 처마와 나란히 경사지게 놓고 일반 지붕의 구조보다 훨씬 길게 늘여 뺀 건축 방식을 말한다. 이 구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많이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으로 목조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화암사 극락전이 국보로 지정이 된 듯 싶다.

 

 

건물의 편액은<극極><락樂><전殿>이라고 각각의 글자를 나누어 걸었는데, 하앙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목재로 인해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고, 편액 위에 그려진 불화를 살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잘늙은 절, 단청이 다 벗겨진 극락전의 모습이 화려하게 새로 단청을 한 것보다는 고졸한 멋이 있다. 아무런 치장도 없이 저렇게 늙어가도 앞으로의 긴 세월을 또 잘 견딜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화암사 우화루에는 오래되고 퇴색한 목어 하나가 메달려 있다.

잘 늙은 절, 그만큼 오래된 화암사의 역사를 느끼게 하는 목어는 마치 잘 마른 북어 같다.

 

우화루에 걸린 목어가 너무 인상적이다. 마치 잘 마른 북어같다

 

극락전 왼편으로 산신각이 있다. 너무 작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나 있을까 싶은 초초소형 전각이다.  언니가 화암사 산신각은 정말 작은 산신각이라며 알려줘서 망정이지 요사채 뒤쪽에 있어 자칫 놓치기 쉽상이다. 부러 찾아봐야 찾을 수 있는 산신각은 굳게 닫힌 문과 높은 축대로 인해 쉬이 가까이 갈 수가 없다. 멀찌감치서 사진만 찍었다.

 

 

<철영재>

사육신 성삼문의 조부(성달생, 1376~1445)로서 세종 때 전라관찰사를 거쳐간 후 훗날 퇴락해가는 화암사를 중창 불사하였다. 이에 후대에 이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어 위패를 보관하고 있다.

 

 

절을 나와 왼편으로 나오면 절집의 돌담이 큰 바위위에 있다.

화암사 뒷쪽으로 조금 올라 탁트인 산너머 먼 산들을 바라보며 잠시 지난 이야기를 하며 쉬었다.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였다. 절집은 어딜가나 물이 달다.

플라스틱 바가지가 아닌 고급져 보이는 스텐(?)바가지가 인상적이다. 

돌담위로 보이는 풍선덩굴이 가는 줄기를 타고 오르느라 지친 듯 보인다.

 

 

자소엽, 인동초

 

화암사에 복수초가 겨울을 뚫고 피었을 때, 얼레지가 군락을 이룰 때 다시 올 수 있었으면...하는 바램을 담아 화암사 우화루에 눈도장을 팍팍 찍어 놓고 내려왔다. 

 

사람주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