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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누리 성채와 성모 교회 본문

걸어서 세계속으로/코카서스 3국(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나누리 성채와 성모 교회

다보등 2024. 7. 23. 11:18

 

카즈베기 마을을 떠나 트빌리시로 가면서 첫 번째 들른 곳은 아나누리 성채라는 곳이다.

보니까 첫날 카즈베기로 가는 길에 차창으로 스치며 얼핏 보았던 건물이다.

아나누리 성채는 어떤 곳일까? 여행사에서 보내준 자료를 참고하여 올린다.

 

 

 

코카서스 산맥에 위치한 아나누리 성채는 13세기 아라그비 백작의 성이었으며 성채와 교회가 함께 들어선 복합 건물로 두 개의 성과 교회가 연결되어 건물전체를 성벽이 에워싸고 있는 형태이다. 네 귀퉁이에 망루가 있어 동시에 요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채 뒤편 망루에 올라 진발리 호수와 성채의 전경을 장관을 이룬다.

푸르고 맑은 진발리 호수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성에는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슬픈 전설이 있는 곳이다.

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던 아그라비 가문과 근처에 있는 산스세 공작 가문과는 원수지간이었다. 몇 백 년을 아그라비 가문이 통치하다가 1739년 산스세 가문이 아그라비 가문의 사람들을 몰살하고 성을 차지했다. 그러나 4년 후 산스세 공작의 폭정으로 인해 지방 농민들 반란으로 죽임을 당하고 이후 테무라즈 2세가 직접 통치했다. 이후로도 아나누리 성채는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는 등 끊임없는 비극을 당한 성이다. 

 

아나누리 성채

 

'아나누리' 이름에 대한 전해 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이곳 ‘누리’ 지역 출신의 '아나'라는 여인이 있었고 성이 포위되어 공격을 당할 때 성에 숨어있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해 주다 붙잡혔는데 고문을 당해 죽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사람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 사람들을 지켜줬다고 한다. 이후 성의 이름을 '아나누리'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모승천교회

 

 

19세기까지 성채로 사용됐고 안에는 성모승천교회가 있다. 화려함으로 포장한 유럽의 성당들과 달리 기도를 하고 구원을 바라는 종교 시설 본연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빛바랜 프레스코 벽화를 볼 수 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건 천국도라 불리는 프레스코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는 심판을 하는 그림인 것 같다. 특히 왼쪽 아래쯤에는 저울 같은 거로 죄의 무게를 다는 것 같은 그림이 있는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어 아쉽다. 이집트 벽화에서도 심장의 무게를 달아서 심판을 하는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사후 세계는 이렇듯 선과 악의 무게를 다는 저울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사후 세계 심판을 받는 프레스코화
포도나무 십자가를 든 성녀 니노

 

 

 

 

성을 한바퀴 돌고 망루 쪽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망루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보이는 것 이상 더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허술해 보이는 성벽을 줄타기하듯 올라 가는 게 편해 보이지 않아서 돌아섰다.

 

 

 

일행 중 한 분이 성 모자상을 사고 싶은데 조지아돈이 없어서 살 수 없다며 안타까워 하길래 20라리를 빌려줬다.

이 일을 계기로 여행 내내 나에게 어찌나 친절하게 대하는지...

얼굴도 미쳐 익히기 전인데 돈을 빌려 주어 고마웠다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

작은 호의에 크게 고마워하니 쑥스러운 일이다. 

 

 

 

화장실 이용료 1라리이므로 여럿이 모여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기념품도 구경하면서 

우리는 이곳에서 오래 머물지는 않았고 대부분은 약속된 제 시간에 버스에 탑승하였다.

이제 점심 먹으러 식당으로 간다고 한다.

한껏 기대를 하면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