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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고리에 있는 스탈린박물관 본문

걸어서 세계속으로/코카서스 3국(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고리에 있는 스탈린박물관

다보등 2024. 7. 29. 06:43

우플리스키체에서 고리까지는 2-30분 거리로 그 짧은 시간에도 졸다 깨다 하였다.

조지아 고리는 구 소련의 정치가였던 스탈린의 고향이란다. 
나는 스탈린이 조지아 사람인 걸 이때 처음 알았다.

독재자로 평가받는 인물에 다른 한쪽에서는 위대한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늘 아이러니하다. 

고리시 시청
스탈린 박물관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1879년 이곳 고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1888~94년까지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어릴 때 스탈린은 친구들의 놀림에 시달렸으며 아버지를 11세에 여의고 어머니의 노력으로 15세에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는 비밀조직에 가입하여 사회주의를 학습하다가 중퇴를 했다. 이후 직업혁명가로의 길을 걸으면서 경찰에 체포되고 시베리아에 유배되기도 하고, 탈출했다가 다시 체포되는 일을 반복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레닌의 눈에 들어 당 서기장에 오르고 레닌의 사후 소련의 일인자가 되었으며 반대파를 숙청하고 독제체재를 완성하였다.
 

 
 
고리에 세워진 스탈린 박물관은 스탈린 사망 4년 후인 1957년 고리 태생 스탈린에게 공식적으로 헌정한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스탈린의 개인 소장품과 함께 그의 생가와 전용 이동 열차가 전시돼 있다. 
박물관은 1989년 조지아의 독립운동과 함께 폐쇄되었지만 다시 문을 열어 현재는 인기 있는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스탈린 동상
스탈린 박물관

 
 
스탈린은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은 인물인데 1937년 연해주의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키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불러왔다. 또 북한의 한국전쟁을 승인하고 지원하는 등 우리에게 정말 큰 아픔을 준 인물이다.

현재 스탈린이 어떤 인물이었는 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소련을 미국과 맞먹는 강대국으로 등극시킨 위대한 지도자라 여기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대숙청 등으로 수백만 명을 학살한 최악의 독재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사각형의 대형 건물 안에 생가가 있다

 
 박물관은 유료이고 개인적으로 관람하라는데 우리는 입장 하지 않았다. 
생가는 사각형의 대형 건물 안에 보존되어 있었다. 작고 허름한 집이다.
당시 아버지는 구두를 만들던 사람으로 왼쪽 방 하나를 임대하여 지하에서 작업을 하였다.
 

조지아 국기가 있는 곳이 스탈린 박물관이고 앞쪽에 사각형 건물 안에 생가가 있다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53년 3월 스탈린은 모스크바 근교의 별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암살되었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스탈린의 권력이 막강했기에 스탈린 없는 스탈린체제는 손쉽게 무너졌으며  희생된 사람들이 하나씩 복권되었다.

스탈린 생가

 
 
박물관 옆 부지 한쪽에는 초록색 특별객차 한량이 전시되어 있다. 방탄기능이 포함된 이 객차는 얄타회담이나 테헤란회담 참석 등 1941년부터 스탈린이 타고 다니던 객차라고 한다. 1985년 기차야적장에서 있던 것을 찾아서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생가 앞쪽에 분수대와 함께 잘 조성된 공원이 있었다.
주변에는 뽕나무가 많았는데 나무에는 오디가 많이 달려 있어 지나치지 못하고 따먹기도 하였다.
 

 
 
생가에서 분수대 방향으로 보는 시점
 

 
 
분수대에서 생가 쪽으로 보는 시점
 

 
 
점심을 먹고 따로이 물을 마시지 않고 몇 시간을 있으니 너무 목이 말랐다. 물어보니 아무도 목마르다는 사람이 없다.
혼자 박물관을 빠져 나와 길 건너 편의점으로 갔다. 냉장고 안에 있는 물을 네 병을 사서 하나씩 나눠 주고 시원하게 마셨다.
 

 
 
박물관 입구에서 파는 스탈린 마그네틱을 나올 때 살 생각이었는데 편의점을 들러 다른 길로 나오는 바람에 완전히 잊어버렸다. 친구에게 색다른 마그네틱을 하나 더 보탤 참이었는데 아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