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추석 연휴에 다녀온 경복궁과 인파 본문

우리땅 구석구석~~/서울.경기

추석 연휴에 다녀온 경복궁과 인파

다보등 2024. 9. 19. 10:45

연휴 첫날, 예전 같으면 명절 음식 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쁜 날이지만 명절차례를 없애기로 하고 여유가 있는 추석 연휴를 맞았다. 긴 연휴가 시작되었고 명절엔 고궁나들이가 제격이지 하는 마음에 여유롭게 느긋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경복궁으로 갔다. 

5호선 광화문역에 내려 광화문광장으로 나가면 제일 먼저 세종대왕상을 만난다. 

북악산과 경복궁을 배경으로 세종대왕상이 있는 풍경은 정말 압도적으로 멋지다.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로 나가면 가깝지만 이 모습을 보려고 광화문역을 이용했다. 

 

세종대왕상

 

 

광화문 광장을 지나 오전 11시, 마침 광화문 수문장교대식이 시작하고 있었다.

엄청난 사람들 장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원 세상에나!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미처 몰랐다.

 

광화문

 

 

경복궁은 백악산(북악산)을 주산으로 넓은 지형에 건물을 배치하였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景福’의 이름은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이곳에서 세종 대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반포되기도 하였다.

 

 

 

경복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는데 그 후 복구되지 못하였다가 270여 년이 지난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다시 지어졌다.

1910년 경술국치 후 경복궁은 계획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하여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전각들이 철거되었고,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의 경관을 훼손하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복궁 복원공사가 진행되었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였으며 흥례문 일원, 침전 권역, 건청궁과 태원전, 그리고 광화문 등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화문을 지나면 흥례문이다. 1395년(태도 4년) 지어졌으며 1426년(세종 8년) 홍례문(弘禮門)이라 했다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년) 중건하면서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인 홍력(弘曆)을 피휘 하여 흥례문이라 개칭했다. 1916년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건설하면서 철거되었다가 85년 뒤인 2001년 10월 26일 복원되었다.

 

흥례문
근정문

 

 

경복궁의 영제교永濟橋는 금천교禁川橋이다. 금천교는 말 그대로 금천을 건너기 위해 세운 돌다리이며, 외부와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궁궐의 정문과 중문 사이에 둔 인공 개천이다. 잡귀를 쫓아내고 또 외부인이 궁에 들어갈 때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는 의미로 금천을 상징적인 경계로 두었다.

 

경복궁 금천교 영제교

 

금천 축대 4방에 4마리의 서수 상이 있다 온몸이 비늘도 덮여있고 정수리에 뿔이 달려있으며 겨드랑이와 뒷다리 부근에 갈퀴가 선명하게 나있는 모습이다.

천록天鹿은 <후한서> 영제기에 나온 상상의 동물인데 요사스럽고 나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즉 외부의 잡귀를 막는 상징적 경계인 금천에 사악하고 나쁜 것을 물리치는 동물인 천록을 둠으로써 궁궐의 신성함을 더욱 돋보이려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4마리의 천록 모두 금천 바닥을 마치 감시하듯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영제교 천록

 

이 중 서북쪽에 있는 천록이 제일 유명하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메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메롱해치라는 이름으로 캐릭터화까지 되었단다.

 

영제교 천록 메롱
근정전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근정전 앞마당은 다른 궁궐의 정전과 같이 박석이 깔려있고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조정에는 품계석을 놓았다.

 

근정전 뒤편으로 오른쪽에는 백악산, 왼쪽에는 인왕산이 보인다

 

근정전 앞마당에 박석이 깔린 모습
근정전의 돌난간에 해치는 새끼를 데리고 있다
사정전
향오문

 

 

강녕전과 교태전은 왕과 왕비의 일상적인 생활공간 영역이다. 사랑채에 해당하는 강녕전은 왕이 독서와 휴식, 신하들과 면담을 하던 곳이고, 안채에 해당하는 교태전은 왕비가 거주하면서 궁 안 생활을 총지휘하던 곳이다. 

교태전 뒤편에 계단식 화단을 쌓아 아미산을 조성하고, 4기의 장식적인 굴뚝과 관상용 수석들을 배열하여 정원을 만들었다.

 

강녕전

 

강녕전과 교태전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용마루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집을 '무량각無樑閣'이라 한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므로 용이 깃든 건물인데 거기다 용마루를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양의문
교태전
잡상

 

궁궐의 지붕에는 맨 위 좌우 끝에 있는 '취두'라는 장식 기와가 있다. 아래로 내려오면 '용두'가 있고, 둘 다 용 모양이다.

"용두 앞으로 일렬로 늘어선 '잡상'은 서유기의 주인공인 삼장법사,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 등 상상의 동물들로 되어 있다. 잡상 아래 추녀 끝에 용 모양을 하고 있는 게 '토수'다.

토수(吐首)는 비바람에 목재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녀 끝에 끼워 놓은 부재를 말한다.

 

맨 위쪽 오른쪽부터 용두, 잡상, 토수

 

흠경각과 함원전

 

 

아미산(峨嵋山)

경회루의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교태전의 뒤편에 있다.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을 경복궁까지 이어서 교태전에서 낳은 왕세자와 대군들에게 백두산의 기를 주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교태전의 온돌방에서 나오는 연기를 배출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각 굴뚝의 여섯 벽면에는 다양한 길상문으로 아름답게 꾸며 그 예술적 조형미와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1호로 지정되었다.

 

아미산
아미산 굴뚝

 

자경전 꽃담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인 1865년(고종 2) 신정왕후(神貞王后: 익종의 비인 趙大妃)를 위하여 창경궁 자경전을 본떠서 교태전(交泰殿)의 동쪽에 지었는데, 화재를 당하여 1888년 재건한 것이다. 십장생 무늬는 가장 한국적인 무늬로 알려진 것으로, 이것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조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향원정

건청궁 남쪽 연못의 섬에 있는 2층의 누각. 건청궁의 후원 역할을 하는 장소였기에 건너가기 편하도록 건청궁에서 향원정을 향해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는 6.25 전쟁 때 불탄 후 1953년에 재건할 때 자리가 바뀌어 향원지 남쪽에 향원정으로 향해 놓여 있었으나 2020년 복원 공사를 통해 다시 원래 자리를 찾았다. 

 

향원정

 

 

 

건청궁은 1873년(고종 10년) 경복궁 중건이 끝난 뒤 고종이 흥선대원군 모르게 궁궐의 내밀한 북쪽에 국고가 아닌 사비로 지은 '궁 안의 궁'이다. 실제로 1873년부터 고종이 친정을 시작했기 때문에, 건청궁 건설은 아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행보하는 해석이 있다.

 

건청궁
장안당

 

장안당은 고종이 머물던 처소로 민가의 사랑채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이후 버려졌다가 1909년 철거되었고 2007년 복원되었다.

곤녕합은 명성황후 민씨가 머물던 처소로 민가의 안채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인에게 명성 황후 민씨가 시해된 장소이며 시신은 곤녕합 옥호루에 잠시 안치했다가 곧 건청궁 뒤쪽 녹산에서 불태워졌다. 이곳 역시 아관파천 이후 버려졌다가 1909년 철거되었고 2007년 복원되었다. 

 

 

옥호루와 오른쪽 곤녕합

 

 

집옥재 일원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주로 건청궁에서 기거했다. 이미 창덕궁에 지어졌던 집옥재, 협길당 등을 1891년 건청궁 서편으로 옮겨 와 자신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했다.

집옥재는 양 옆벽을 벽돌로 쌓고 내부를 중2층으로 만들었으며, 팔우정은 팔각형의 2층 정자이다. 이 건물들은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궐내에서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며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

 

 

집옥재를 지나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서면 바로 길 건너 청와대로 연결된다.

와~!

청와대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우리는 다시 돌아서 경복궁으로 재입장을 했다.

 

청와대

 

 

향원정을 멀찌감치 지나쳐 경회루로 갔다.

향원정과 국립민속박물관이 보이는 풍경

 

 

경회루(慶會樓)는 경복궁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경회루의 1층은 48개(둥근기둥과 네모난 기둥 각 24개)의 높은 돌기둥들만 세웠으며, 2층에 마루를 깔아 연회장으로 이용했다. 추녀마루에는 우리나라 건물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雜像)이 있다.

 

경회루 측면

 

경회루

 

 

수정전은 근정전 서쪽에 자리한 전각이다. 궁궐에 부속된 관청이 밀집한 궐내각사 권역의 중심이었다. 세종 때는 집현전이 있던 곳이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867년(고종 4) 중건했고 고종 때는 군국기무처와 내각이 이곳에 있었다. 주변에 있던 2백여 칸의 다른 궐내각사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때 모두 철거되어 현재는 수정전만 남아있다.

2차 복원정비 사업의 2단계가 진행될 2026년 ~ 2034년에 주변 건물들을 복원할 예정이다.

 

수정전
근정전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재충전한 에너지로 오늘도 힘찬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비록 한여름 같은 이상한 9월이긴 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