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코레아 후라 '하얼빈' / 김훈 장편소설 본문

공연,영화,서적

-코레아 후라 '하얼빈' / 김훈 장편소설

다보등 2024. 12. 15. 21:44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은 지난 10월에 읽었던 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은 지 여러 달이 지났고 블로그에 정리하는 것도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었고 올해 크리스마스쯤에 개봉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영화가 개봉 하기 전에 먼저 블로그에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사진 폴더 속에서 책 표지와 내용을 찍은 몇 장의 사진을 찾아 냈다.

 

 

 

작가 김훈이 그리는 안중근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온몸으로 길을 내며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안중근이 지녔던 젊음의 패기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환상은 그의 생명과 함께 부서져간다. 안중근이 부딪혔던 벽은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한 듯하다. 청년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길을 찾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고, 때로는 시류와 타협하여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을 버릴 것을 요구받는다. 그렇기에 거대한 세상에 홀로 맞선 안중근의 생애는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과 탄식을 자아낸다.

각자의 이익과 진영에 입각한 무수한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지금,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그의 살아 있는 몸과 말과 청춘에 초점을 맞춘 김훈의 이 소설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인간으로서 또 다른 한 인간을 살해하는 중죄를 범하는 것을 무릅쓰고 ‘동양 평화’를 온 세상에 외친 안중근의 궤적은 몸과 마음의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염원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일깨운다.

 

- 철도는 눈과 어둠 속으로 뻗어 있었다. 그 먼 끝에서 이토가 오고 있었다.

멀리서 반딧불처럼 깜박이는 작은 빛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빛이라기보다는, 거역 할 수 없이 강렬한 끌림 같은 것이었다. 두 박자로 쿵쾅거리는 열차의 리듬에 실려서 그것은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빌렘에게 영세를 받을 때 느꼈던 빛이 생각났다. 두 개의 빛이 동시에 떠올라서 안중근은 이토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눈을 감았다.

 

 

소설에서 안중근과 이토의 갈등만큼이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안중근에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와 한국 교회를 통솔하는 뮈텔 주교의 갈등이다. 일본 형법에 근거한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은 죽음을 앞두고 신에게 죄를 고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빌렘은 그런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베풀어주려 하고, 뮈텔은 한국에 겨우 자리 잡은 천주교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빌렘의 뜻에 반대한다. 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빌렘과, 교회의 안위를 위해 역설적으로 세속과 결탁한 뮈텔의 대치는 성聖과 속俗의 대립이라는 갈등을 더하며 소설의 결을 더욱 풍부하게 일구어낸다.
안중근과 마찬가지로 빌렘은 뮈텔의 권위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안중근을 만나러 감옥으로 간다. 이러한 빌렘의 용기는 안중근의 거칠었던 영혼을 평온한 안식으로 인도한다.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혹은 빼앗은)’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_‘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