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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본문

우리땅 구석구석~~/서울.경기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다보등 2025. 2. 18. 21:36

두 달에 한 번 만나 맛있는 음식 먹고, 카페로 옮겨 수다 떨고 오후 3 - 4시 헤어지는 모임이 있다.

별스런 대화꺼리는 없지만 아이들이 어릴 땐 아이들 이야기였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이젠 손주들 이야기다.

그러다 것도 뜸하고 나이 들어가는 남편들 흉도 보고 걱정도 하며, 그 사이사이 우리들 나이 또한 적잖은 나이임에 놀라곤 한다. 이제 우짜든동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게 최선이다. 

을사년 첫 모임인 2월 모임은 서대문역 7-8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신라스테이에서 만나 런치 뷔페를 먹었다.

나는 마포에 있는 신라스테이 뷔페를 여러 번 가본 적은 있는데 서대문은 처음이다. 집에서 좀 멀어서 그렇지 가격도 적당하고 음식 종류도 다른 곳에 비해 많다는 게 이곳을 모임 장소로 정한 총무의 답이다.

 

뷔페는 오전 11시 30분에 입장인데 그 시간에 제법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런치 뷔페 마감 시간이 오후 2시까지여서 천천히 여러번 음식을 가져다 먹었고, 우리는 커피까지 마시고 마냥 앉아 있다가 2시가 거진 다되어 나왔다. 카페로 이동하지 않고 커피까지 다 해결하였으니 상대적으로 싼 가격인 셈이다.

가까운 곳에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가 있어 부른 배도 소화시킬 겸 걸어갔다. 

서대문형무소는 나도 몇 번씩이나 가보았던 곳이지만 친구들도 처음은 아니라고 한다. 

 

 

독립문 못 미쳐 독립문 영천시장이 있다. 옆으로 지나쳐도 되지만 이왕이면 시장 구경을 하면서 지나가기로 하였다.

마트가 아닌 이런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좋아 건성건성 들여다 보며 지났다. 

독립문
서대문독립공원
서재필과 유관순 동상

 

서대문형무소는 일본제국주의가 지은 근대식 감옥이다. 1908년 10월에 문을 열어 1987년 11월에 폐쇄될 때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옥사는 붉은 벽돌로 지어졌고 수감자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원형 감옥형태인 패놉티콘 구조로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배에 맞섰던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갇혔으며, 해방 후에는 독재 정원과 군사 정권에 저항했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혔던 역사의 현장이다.

 

 

1908년 경성감옥, 1912년 서대문 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뒤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고려하여 보안과 청사, 제9~12 옥사, 공작가, 한센병사, 사형장 등을 남겨 두고 나머지 시설은 모두 철거하였다. 이후 서대문구에서 현장을 보존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참고자료)

 

 

 

 

기록으로 보는 옥중생활 1

심훈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쇠고랑을 차고 용수를 썼을망정 난생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까지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악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어머니!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새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타벽통보법

수감자들이 감방과 감방 사이의 벽을 두드려 정보를 주고받던 암호 통신법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순서대로 두드려 글자를 조합하는 방식이다. 망우리 우편 수송차 습격 사건으로 8년형을 받고 갇혀 있던 공명단원 김정련이 1932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잡혀온 안창호에게 타벽통보법을 알려 주다가 순찰하던 간수에게 발각되자 '똥통'을 뒤집어엎고 소란을 피워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가 있다.

독방

이곳은 1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으로 일제가 애국지사들에게 육체적인 고문과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해 설치한 독방이다. 애국지사들은 특수범죄자로 분류하여 전기와 변기도 없고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러한 독방에 투옥시킨 후 고문과 폭행 등 갖은 악형을 일삼았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 손을 잡고 함께 온 부모들이 많았다. 아이들의 눈빛이나 표정이 진지하다.

문화해설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게 설명을 해준다. 수감자들에게 밥을 주는 틀밥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밥의 양은 개인별 형량과 노역의 강도에 따라 1~ 9등급으로 차등을 두어 배급하였다. 이를 위해 등급별로 깊이가 다른 원통형의 틀에 밥을 찍어 배급하였다. 이 때문에 감옥의 밥을 일본어로 틀이라는 뜻의 '가다(型)'를 붙여 일명 '가다 밥' 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정해진 규정 이하로 배급되어 수감자는 늘 배고픔을 견뎌야만 했다.

 

 

기록으로 보는 옥중생활 2

여운형 「옥중 회고록」

감옥소 덕에 얻는 병이 다섯 가지이다.

맨 처음 상해에서 잡힐 적에 운동장에서 경관과 격투하다가 귀를 몹시 얻어맞았는데 그때 고막이 상하여 한쪽 귀는 아주 병신이 되고 말았다. 그다음에는 옥에서 주는 조밥을 먹다가 돌을 깨물어서 이 한 개가 그만 부스러지고 말았다. 웬일인지 잇몸 전체가 상하고 염증을 일으켜 퍽 괴로웠다. 옥에 갇힌 지 며칠 못 가서 신경통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 통에 머리와 수염이 이렇게 하얗게 세어 버렸다. 코 아래 수염은 흰털이 많기는 하지마는 이전 모양으로 다시 길러 보려고 생각한다. 신경 관계인지 불면증도 대단하였다. 하루 3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어 퍽이나 애를 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옥 안에서는 누구다 다 앓게 되는 치질에 걸리어 퍽 고생하였다.

틀밥
왼쪽 기결수 수인복, 오른쪽 미결수 수인복
수감자를 효과적으로 감시 할 수있는 원형 감옥형태 인 패톱티콘 구조

간수가 이곳에서 세 곳의 옥사를 감시할 수 있는 원형 감옥형태 구조다. 

간수가 있는 자리는 전구가 없이 컴컴하게 해 놓고 옥사가 있는 긴 복도에는 불을 밝혀 수감자의 행동을 감시한다. 수감자들은 간수가 어두운 어디선가에서 밤낮없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 함부로 행동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 지배에 맞섰던 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갇혔으며, 해방 후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 저항했던 만주화 운동가들이 갇혔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여사

 

 

서대문형무소 취사장

 

밥 짓는 무쇠솥
초기 사형장 터

1908년 10월 서대문형무소가 경성 감옥으로 문을 열었을 때 최초로 설치된 사형장이 있던 자리다. 사형은 감옥 안에서 비공개로 집행되었기 때문에 감옥 내에서도 가장 깊은 안쪽에 배치되었다. 최초의 사형장은 교수대 2개 설치되었고 지하에 시신수습실을 만들었다. 지금의 연못은 그 지하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이강년, 허위, 이은찬, 이인영 의병장과 이재명, 강우규 의사들 290여 명이 사형당했다. 1921년 옥사를 확장하면서 현존하는 사형장 위치로 이전했다. 

한센병사
사형장
시구문

사형 집행 후 시신을 바깥의 공동묘지로 내보내기 위해 밖으로 연결한 통로이다. 붕괴되었던 것을 1992년 독립공원을 만들 때 발굴하여 40m를 복원하였는데 원래 길리는 약 200m라고 전해진다. 일제는 시신에 구타나 고문의 흔적이 많은 경우, 사형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 시신을 받아갈 유족이 없는 경우에 이 문을 통해 시신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여옥사

여성 미결수를 가뒀던 구치감으로 1916년 즈음 지어졌다가 1979년에 철거되었던 것을 2011년 복원했다. 일제강점기 여성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갇혀 고난을 겪었다. 여옥사 8호 감방은 1920년 3월 1일에 3.1 운동 1주년 옥중 만세 투쟁이 펼쳐졌던 현장이다. 이곳은 특이하게 지하 공간이 있었는데 '유관순이 지하에 갇혔었다는 설'이 있었으나 그 근거는 없다. 해방 후에는 지하 공간을 물품 보관 창고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8호 감방

8호 감방에 수감된 사람들 : 유관순, 어윤희, 권애리, 신관빈, 심영식, 임명애, 김향화 등 

여옥사 8호 감방은 3.1 독립만세운동 때에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수감되었던 감방이다. 유관순과 함께 8호 감방에 수감된 여성 독립운동가는 개성지역 3.1 운동을 지도한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수원지역 3.1운동을3.1 운동을 지도한 김향화, 파주지역 3.1 운동을 지도한 구세군 사령 부인 임명애 등의 인사들이었다. 

 

서대문 형무소역사전시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오는 길은 전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하면 바로 앞이다. 

독립문역에서 승차하여 종로 3가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집으로.

오늘 모임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한참을 수다도 떨고 할 것 다하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까지 관람을 하였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