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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및 석탑 본문
2021년 당진 합덕면에 있는 김대건신부와 관련된 유적지를 비롯하여 가톨릭 순교성지인 신리성지 등 당진의 여러 곳을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가져온 당진관광지도를 펼쳐서 이번에 역사이야기가 있는 당진 면천읍성 일대를 목적지로 정했다. 그리고 면천읍성 가기 전에 안국사지를 먼저 들르기로 하고 내비에 주소를 찍었다. 또 다른 당진의 역사기행을 찾아서 당진으로 향했다. 오늘은 특히 아들네 식구와 함께 하니 든든하다.

늘 정체가 심할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서해안고속도로는 오늘은 어인일인지 하나도 밀리지 않고 내비가 알려준 한 시간 소요시간에 목적지인 안국사지(安國寺址)에 도착을 하였다.
충남 당진시 정미면 원당골에 무려 보물이 두 개나 있는 당진 안국사지는 고려 현종 21년(1030년) 거란족의 침입으로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고자 지은 호국사찰로 보물 제100호인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제101호 석탑, 도지정 기념물 제163호 매향암각 등이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명문 기와와 막새기와를 통해 조성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2004년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태평십(太平十)’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다. 발굴단은 이 시기를 요(遼)의 성종(1021~1030) 연간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태평십’은 1030년(고려 현종 21) 임을 밝혔다. 안국사지에서는 막새기와가 단일 종류의 것만이 출토되고 있어 ‘태평십’ 명 기와를 안국사 창건기의 기와로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이 시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여겨진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머리에 네모난 갓 모양의 보개를 쓰고 있다. 두 팔과 두 손이 신체에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00호 안국사지석불입상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으로 변경되었다. 안국사는 안국산(일명 은봉산)에 위치한 폐사지로 1929년에 다시 세웠다고 하나 또 다시 폐사되었다.

불상 하단의 석탑은 원래 5층일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1층에 1매의 몸돌만 남아 있고 그 위에 4매의 지붕틀이 겹쳐져 있으며 받침부의 구조는 매우 간략하다. 1층 몸돌의 네 모서리에 기둥 형태가 표현되어 있고 3면에는 여래좌상, 1면에는 문고리형이 조각되어 있어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기본형식에서 벗어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불상과 석탑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나타나던 양식으로 혼란기 백성들이 마을공동으로 세운 것으로 거칠고 섬세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구원사상을 넘어 힘든 현실세계의 돌파구를 찾기위해 노력한 지역공동체의 모습이 엿보인다.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무릎 아랫부분이 매몰되어 있었으나 2004년 충청남도역사문화원의 발굴조사를 통해 불상의 발과 대좌가 모두 확인되었다.

중앙의 본존불상은 머리와 신체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대형 석불입상이다. 머리 위에는 화불이 장식된 보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보관 위에 방형의 보개가 있다. 본존불상의 이마에는 백호가 있는데 백호 위에 또 다른 원형의 구멍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상호는 턱 부분에 약간 살이 올라있으며 눈·코·입 등이 얼굴 중앙에 몰려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흘러내렸고 목은 짧으며 삼도는 없다. 왼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복부에 위치하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에 대고 있다. 본존불상의 발부분은 별도의 석재에 발가락을 표현하여 조성하였다. 발의 길이는 40㎝이며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의 발과 유사한 상자 모양이다. 본존불상의 대좌는 3m가 넘는 자연 암반의 상면에 방형의 대좌를 선각의 방식으로 조성하였다.

우협시 보살상은 머리에 인동당초문 형태의 초문(草紋)이 장식된 비교적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으며 이마와 보관 사이에는 반원형의 머리카락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상호는 눈·코·입 등이 오밀조밀하게 표현되어 얼굴 중앙에 몰려 있다. 귀는 긴 편이며 귀 가운데를 한 가닥의 보발이 가로질러 귓불 부분으로 내려오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며 삼도의 아랫부분에는 목걸이 장식이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양 팔뚝에 팔찌(腕釧)가 새겨져 있다. 수인은 양손 모두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채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 부착하고 있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다. 우협시 보살상의 대좌는 원형이며 대좌 상면에는 발이 조각되어 있다. 대좌의 지름은 130㎝, 두께는 33㎝이다.

좌협시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파손되어 있으며 현재 파손된 보관만이 몸통 위에 놓여 있다. 좌협시 보살상의 복부에는 리본 형태의 띠 매듭이 새겨져 있다. 좌협시 보살상의 모습은 수인의 손 위치가 다른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우협시 보살상과 동일한 모습이다. 좌협시 보살상의 대좌는 평면 방형이며 대좌의 크기는 90㎝, 두께는 43m이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에서 주목되는 형식적 특징은 본존불상이 방형의 보개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는 고려 광종대 조성된 불상에서 처음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을 들 수 있다.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를 착용하고 있는 불상의 조성 배경은 ‘황즉불(皇卽佛)’ 사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경우 광종대 조성된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를 착용한 불상보다 형식화되어 있는데, 불상이 제작된 11세기 전반에도 고려는 여전히 황제국 체제를 표방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 배경에도 ‘황즉불’ 사상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석조여래삼존불상 뒤쪽으로 길고 큰 바위도 예사롭지가 않다. 자꾸 눈길이 간다.

안국사지 매향암각 / 도지정 기념물 제163호
불상 후면에 있는 매향암각은 모양이 배같이 생겨서 '배바위', 고래 모양이라 하여 '고래바위' 또는 베틀에 딸린 북모양이라 하여 '북바위'등으로 불린다.
바위에는 매향의식을 치른 내용을 담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매향은 향나무를 땅에 묻는 민간 불교의식으로 향나무를 통해 소원을 비는 자와 미륵불이 연결되길 바라는 신앙의 한 형태이다.

이런 매향활동을 통해 고려시대 몽고와 왜구의 침입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지역민들이 불안한 민심을 달래고자 미륵신앙의 안식처로써 안국사를 선택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


안국사지 주변을 잠시 산책하기도 하였다. 날씨가 완연한 봄같아서 나들이하기에 아주 좋은 날이었다.


산수유 꽃봉오리가 올망졸망 부풀긴 하였으나 아직은 피기 전이다.
지장전 앞 화살나무는 크기도 크고, 더군다나 열매가 정말 많이 달렸다.
저렇게 많은 열매가 달린 화살나무를 보기도 쉽지 않다.






안국사지에서 내려오면 커다란 돌을 쌓아 축대처럼 조성하여 출입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신기하고 궁금하여 바위굴을 통과하여 위로 올라가 보았다. 작은 언덕에 별시리 볼 것은 없지만 주변 나무며 바위들이며 인위적으로 꾸며 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마당에 장독대가 엄청나다.
된장, 고추장 등을 만들어 파는 곳인가 본데 내려가서 보아도 입구에 금줄을 쳐놓아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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