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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신부님을 만난 진천 배티성지 본문

우리땅 구석구석~~/충청도

최양업 신부님을 만난 진천 배티성지

다보등 2024. 11. 21. 07:02

식파정을 둘러 보고 서울로 돌아 오는 길에 진천 배티성당을 마지막으로 들렸다.

배티 순교 성지는 충북 진천 서운산 자락에 조성된 천주교 성지로 배티는 '배나무 고개'라는 순 우리말이다.

오늘의 일정이 맹동저수지 - 점심 - 식파정 -배티성당이다.

여전히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 하늘에 구름이 두텁고  오후 3시 40분 경 도착을 하였는데 마치 해가 진듯 어둡다.

 

 

 

 

한국 천주교회가 박해를 받는 19세기 초부터 이곳 골짜기에는 15개의 교유촌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배티를 동양의 카타콤브라고 불리었다. 그중에서 배티 교우촌은 1837년 5월 성 모방(나 베드로) 신부에 의해 충청북도 최초의 공소로 설정되었으며 1850년에는 성 다블뤼(안 안토니오) 주교가 설립한 최초의 '조선대목구 신학교'가 이곳에 정착하였다. 

1853년 여름에 가경자 최양업 신부가 이곳에 부임하여 신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유촌들을 순방하였다.

배티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첫 번째 신학생이면서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사목 중심지이며 순교지이고, 복자 9위를 탄생시킨 순교자의 본향이다.

 

 

 

배티성지는 천주교 청주교구의 성지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영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땀과 신앙이 어려 있는 곳.

둘째, 천주교 신자들의 비밀 교우촌(동양의 카타콤브)

셋째, 한국 최초의 신학교 마을(카톨릭 대학교의 효시)

넷째, 순교자들의 영원한 안식처여, 고향이다. 그리고 아홉 분의 복자를 모시고 있는 장소이다.

충청북도 지정 문화재(기념물) 제 150호로 3곳의 장소가 지정되어 있다.

 

 

순교 현양비

1866년 이후의 병인박해 때 배티와 인근 교우촌에서 체포한 천주교 신자들을 관아로 압송하던 포졸들이 주막에서 술을 마시는 동안 '신자들을 묶어 놓아던 돌기둥'이라고 전해지는 선돌. 1949년 백곡저수지 축조로 수몰되었다가 1980년의 큰 가뭄 때 옛 두건 마을 수몰 터(진천읍 건송리)에서 배티 순교성지로 이전되어 1982년 9월 27일 현양비로 제막되었다.

 

탄생기념 성당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 1861)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요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은 1836년 유학을 떠나 마카오와 만주의 소팔가자 등지에서 신학과 서양의 근대 학문을 배운 한국 최초의 유학생이었다.

최 신부님은 1850년 초부터 1861년 6월 15일에 선종하기까지 11년 6개월 동안 '교우촌 사도'로써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최양업 신부님은 '착한 목자요', '땀의 증거자'이다.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과로로 선종한 그분의 신앙과 삶은 한국 천주교회의 훌륭한 족적으로 남아있다.

 

 

 

나는 이곳 배티성지에서 최양업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쓴 '차쿠의 아침'에서 먼저 신부님을 만났다는 걸 깨달았다.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유학을 떠났던 그 중 한 명이 최양업 신부님이다. 둘의 나이 만 15세가 되던 해였다.

김대건 신부님이 먼저 첫 번째로 신부사제를 받았고, 최양업 신부님이 두  번째로 신부 사제를 받았다.

그 둘의 우정을 책에서 소개하고 최양업 신부님이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땀의 증거자'라는 걸 '치쿠의 아침'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소설 최양업 '차쿠의 아침'/ 이태종 지음

한국 천주교 사제가 집필한 두 번째 종교소설 '차쿠의 아침'은 '최양업 신부님'애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엮은 최양업 신부님이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과 두 번째 신부인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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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마음으로 들어오라

홀로 머물러라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라 

(성 알퐁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