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충청남도 기념물 면천읍성 본문

우리땅 구석구석~~/충청도

충청남도 기념물 면천읍성

다보등 2025. 3. 12. 21:25

당진 안국사지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는 면천읍성으로 왔다.

복원된 면천읍성이지만 밖에서 보니 기대가 된다.

당진에서 가까운 서산에 해미읍성이 있다. 그러나 면천읍성은 서산 해미읍성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면천읍성은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6-70년대 집들이 남아 있다. 이 또한 재밌는 구경거리다.

면천읍성 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였다. 지금은 민가, 상점 등이 산재해 있으나, 100여 년 전엔 성 안에 민가가 없었다. 수십 년 전까지 당진 최대 규모의 장이 섰다. 

읍성 안 마을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한번에 올리기엔 양이 많고 딱 짤라 작성하기에도 아쉬운 점이 많아서 면천읍성만 따로 올린다.

 

 

면천읍성은 당진시 면천읍 소재지에 남아있는 평지 읍성으로 당진, 서산, 태안 등과 더불어 옛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바닷길이 있었던 곳이다. 이처럼 중국과의 통상에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방상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해서 백제시대부터 중요한 거점으로 취급되었다. 지금의 읍성이 세워진 것은 1439년(세종 21년)으로 조선 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성벽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았는데,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고 쌓았다. 현 성벽의 둘레는 1,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는 치성과 옹성의 길이를 합한 전체 길이는 1,564m 정도로 추정된다. 이 성은 조선시대 성을 쌓은 규정이 가장 잘 반영된 우수한 유적으로 동, 서, 남, 북의 사대문까지 갖춘 성이었다. 성 내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군자정, 레트로거리 등이 있고, 매년 봄에는 면천 진달래민속축제가 열린다. (다음백과사전)

 

조선 후기 읍성은 사실상 기능이 상실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가 관아자리에 면사무소를 건립하고, 객사를 공립보통학교로 사용하였다. 이후에도 읍성의 돌로 각종 시설을 보수하거나 저수지의 건립에 사용하는 등 읍성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면천읍성은 90년대 이후 풍락루와 서벽이 복원되면서 복원정비가 시작되었고, 2007년부터 본격적인 발굴과 정비가 시작, 오늘에 이루고 있다.

 
면천沔川은 '물이 가득 흘러서 바다로 모여 들어간다"는 시경에 나타난 글에서 따왔다고 한다.

 

성곽 옆으로 길을 따라 읍성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이층 누각이 눈에 들어온다.

풍락루

 
풍락루는 지금은 사라진 면천관아의 문루였던 누각으로 정확한 기록이 없어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원래는 반월루라 하였으나 1852년 당시 면천군수였던 이관영이 중수한 후 '풍락루'라 이름 지어 현판을 걸었고 <풍락루기>를 남겼다고 한다.
풍락루라 한 것은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으로 살기 좋은 땅에서 백성과 더불어 평안하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노후와 붕괴될 위험이 있어 1943년 철거하였다가 2007년 철거 전의 사진자료를 토대로 하여 2층 누각형식의 팔작지붕 건물로 복원하였다.
 

 
풍락루 옆에 300년된 느릅나무가 있다.

풍락루와 300년 수령의 느릅나무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로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다. 면천객사는 1433년 처음 세워진 이래 다섯 차례 중수를 거쳐 1662년(현종 3년) 다시 지어졌으며 1911년 일제강점기 면천공립보통학교로 사용되었으며, 1972년 면천초등학교의 신축으로 철거한 후 2022년 복원한 것이다.

면천객사인 조종관

 
옛 면천초등학교(면천공립보통학교) 부지 안에는 1100년 수령의 암.수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2016년 9월 6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51호로 지정되었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과 그의 딸 영랑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면천에 살고 있던 복지겸 장군이 병으로 누워 있을 당시 백약이 무효해 그의 어린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드렸고 백 일 째 되던 날 신선이 나타나 두견주를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그 곳에 은행나무를 심은 뒤 정성을 들이면 나을 수 있다고 해 그대로 따랐더니 장군의 병이 거짓말처럼 치유됐다는 설화와 해마다 마을 주민이 은행나무에 모여 목신제(음력 2월 1일)를 올리는 등 역사적, 문화적, 민속적 가치가 있다.
 

 
300년 되었다는 느릅나무도 그렇고, 사진을 찍지 않았으나 느릅나무 못지 않은 수령을 가진 회화나무도 있다.

1100년된 경이로운 은행나무는 여전히 열매를 맺고 있단다. 이 모든 노거수들이 왕성하게 푸른 잎을 달고 있을 풍성한 계절에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문

 

읍성 안쪽 마을은 사람들이 사는 삶의 공간이다. 6-70년대 오래된 상가들이나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백년 넘은 우체국이 동네 카페로 변하였고, 60년 된 가정집이 서점으로 운영 중이다. 

면천공립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관은 최근에 지어진 시설이다.

읍성 안에서 볼 수 있는 2025년을 만나러 가자.

 

 

 

(저는 며칠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혹시 와이파이 된다면 인사드릴 수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