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화재를 면한 청송 주왕산 대전사, 청송백자 전수관 본문
천년고찰 의성 고운사가 화마에 전소된 가운데 산불은 주왕산을 넘어 대전사에서 불길이 보일 정도로 근접하게 닥쳤다. 대전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보광전 등 다수의 유물이 있다. 이동 가능한 유물은 안전한 장소로 조기 이동하였고, 보광전은 방염포로 감싸 혹시 모를 화재에 대비하였다. 경내 풍등 제거 등 작은 위험 요소까지 점검하며 소방차가 계속 물을 뿌려 불길 확산을 막았다.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이곳까지 올 줄 누가 알았겠나? 천만다행으로 대전사는 화마를 피했다.
우리는 느긋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대전사 가는 길 초입에 있는 '청송백자 전수관'을 먼저 들렀다. 청송에서 백자가 난다는 이야기는 S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녀는 청송백자에 반해 언젠가는 청송 달항아리를 하나 사겠다고 점 찍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였다.
청송백자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4대 지방요(地方窯, 청송백자, 양구백자, 해주백자, 회령자기) 중의 하나이며,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청송군의 우수한 향토문화유산이다. 다른 지역의 백자와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어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높았던 청송백자는 20세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1958년 알루미늄 그릇 등 공업용 대량생산 제품의 출현으로 인해 한 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이러한 청송백자의 존재는 2007년 시작된 청송백자 발굴사업으로 재조명되었고, 청송군은 2005년 청송백자 가마터 지표조사연구 등을 통한 자료를 토대로 2009년 청송백자의 원형과 가치를 복원, 계승하고 현대적인 감각과 쓰임에 맞춰 변화·발전시키기 위하여 청송백자전수관을 개관하였다.
청송백자전수관은 현대적 건물의 전시실에서부터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된 사기움과 사기굴, 광산사무실과 주막까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재현된 청송백자전수관의 사기움(전통공방)은 움집형태의 원형구조로 원료의 분쇄에서 성형, 시유까지의 모든 공정을 완료할 수 있는 효율성과 경제성이 높은 청송지역만의 독특한 구조로 옛 청송 사기장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청송의 문화유산이다. 도석에 의해 특화된 형태인 사기굴(전통가마)과 등짐장수들이 구워진 그릇을 서로 가져가기 위해 묵었던 주막 역시, 청송백자의 오백 년 세월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청송백자가 활발하게 거래되던 조선 후기, 이곳에서 보부상들은 봇짐을 풀고 밤이면 술도 거나하게 마셨다. 이들이 험준한 산을 타고 집결하는 날은 ‘점날’. 즉 사기굴에서 사기가 나오는 날로 저마다 자기 몫을 챙겨 다시 산을 타고 민가로 이동해 그릇을 팔았단다. 이런 이야기들은 조선후기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소설가 김주영의 <객주>가 떠올랐는데 그도 이곳 청송 출신이다.
청송백자는 백토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백자와는 달리 ‘도석(陶石)’이라는 돌을 빻아서 그 돌가루를 활용해 백자를 빚어내는 독특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백자 브랜드다.
변기나 양푼, 요강, 제기 같은 것은 잡사기라고 하고 종지나 접시, 밥, 국 담는 그릇은 생활자기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민가에 놋그릇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걸로 탄피를 만든다고 공출해 갔기 때문이다. 이후 제기에도 사기를 쓰게 되었다. 사기는 가마에 넣고 구우면 되니까 목기보다 만드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어서이다.
가마터는 총 48기가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도석(陶石)'이 산출되는 이곳 법수광산을 기점으로 반경 10km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주왕산 대전사로 가는 길은 벚꽃이 만발하였다.
여전히 흐린 날씨에 바람도 많이 불고 쌀쌀하다.
일요일이고 벚꽃이 만발한 4월이건만 대전사 입구에 관광객이 보이질 않는다. 재난 후에 관광객 발길이 끊어지면 2차 피해가 우려된다. '여행이 곧 기부'라는 말이 있다. 관광이 곧 피해 지역 회복의 시작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 주면 좋겠다.
대전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라면 거대한 바위가 아닐까 싶다.
'기암단애'라고 하는 저 바위는 화산재가 식으면서 암석이 되는 과정에서 생긴 틈을 따라 침식이 일어나며 만들어진 바위라고 한다. 마치 대전사를 지키고 있는 부처님 손 같아 보인다.
청송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보광전은 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그 건축연대가 임진왜란 때 불 탄 것을 조선 현종 13년(1672)에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 구조는 조선 중기 이후 목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전사에서 용추폭포 가는 길은 이번 화재 후에 통제 중이다. (지금은 해제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잠시 추운(?) 몸도 녹일 겸 회연당에 차를 마시러 들어갔다.
마침 도연스님의 '허공에 그린 그림 전시' 중이라 차가 나오기까지 잠시 감상하였다.
허공에 그린 그림 展/ 화두를 그리다
도안 스님의 선화 전시회
화두(話頭)가 진리를 말로 드러낸 것이라면
선화(禪畫)는 진리를 그림으로 드러낸 것이다. 화두와 선화가 한 경계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하나는 무엇인가?
......
조금 힌트를 준다면 그림을 마주했을 때
단지 있는 그대로 보면 되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며 궁리를 한다면 바로 어긋난다.
산채비빔밥과 산나물전을 주문하여 산골다운 점심을 먹었다.
1박 2일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오송역에서 전주 가는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다음을 기약하고 S와 헤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S를 DMZ 평화의 길에서 다시 만났다. 보고 또 봐도 반가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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