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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서울성곽일주답사(1) 본문

서울문화유산답사

서울성곽일주답사(1)

다보등 2008. 3. 5. 11:53

* 일정 : 3월1일 오전 9~19:00(10시간 예정)

* 종주코스: 남대문-인왕산-창의문-북악산-숙정문-성북동-낙산-동대문-광희문-장충동-국립극장-남산-남대문(18.2km)

 

조선건국 초기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후 ,태조 4년(1395)도성 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유교사상인 인, 의,예, 지에 근거를 두고 명명됐다.

-동쩍문은 인(仁)을 일으키느 문이라 홍인지문,

-서쪽문은 의(義)를 돈독히 하는 문이라 하여 돈의문

-남쪽문은 예(禮)를 숭상하는 문이라 하여 숭례문

-북쪽문은 지(智)를 의미하는 문이라 하여 홍지문이라 함.

 

4소문에는 홍화문, 광희문,창의문, 소덕문이 있다.

-동북의 홍화문(弘化門)-혜화문(惠化門)

-동남의 광희문(光熙門)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서남의 소덕문(紹德門)이라 했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문은 창의문과 흥인지문뿐이다.(숭례문은 한달전 화재로 소실... ㅜ.ㅜ)

 

<<서울성곽을 걸으며 찾아 본 주변의 문화유산들...>>

 남대문에서 출발하여 정동으로 가면서....

 

 

구 배재학당 동관(서울시 기념물 16호)

구 배재학당 동관 건물은 1916년 건립되어 1984년 배재고등학교가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하기까지 교실로 사용하였으며 1923년 준공한 서관은

학교 이전시 옮겨져 복원하였다. 동관 건물은 앞쪽의 현관과 양옆 출입구의 돌구조 현관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처음 지어질 때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구 대법원 청사(등록문화재 237호)

▼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

 

▼ 정동교회(사적 256호)

 

▼중명전(서울시 유형문화재 53호)

중명전은 러시아의 건축가 사바찐의 설계로 1897년 1901년에 걸쳐 황실도서관으로 건립된 지하1층,지상2층의 벽돌조 건물로 처음에는

수옥헌이라 불렀다.1904년 4월14일 경운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은 고종황제의 편전이자 외국사절들의 알현실로 사용되었으며 1905년

11월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된 근대사의 중요한 유적이다.또한 1907년 4월 20일 이곳에서 고종황제로 부터 친서를 받은 이준은 이상선,

이위종과 함께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고 대한제국의 주권회복을 호소하였으나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일제에 의해 고종황제는 강제 퇴위 당하였다.

현재 문화재청이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위쪽에...

 

  ▼성문은 없고 돈의문터라는 표시만.....

 

 

▼서울 경교장(사적 465호)

경교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선생이 1945년 국내로 돌아와 임시정부의 집무실겸 숙소로 사용한 곳으로 김구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이 건물 2층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하셨다. 이건물은 1938년 지어진 양옥주택으로 안정된 비례와 아치창을 이용한 단아한 외관이 특징

이며 내부에 부분적인 변형이 있지만 건물의 모습이나 기본적인 형태가 잘 보존 되어 있다.

 

창문에 총탄자국을 재현해 놓았다.

 

▼홍난파 가옥(등록문화재 90호)

 

성곽은 어느 순간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곤 했는데 이렇듯 성곽을 이용하여 집을 짓기도 하고 연립주택 뒷벽이되기도 하고....

 

 

인왕산 올라가는 길목의 재현된 성곽....(일부 남아 있는 성곽위에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벌거벗은 나목에 주인을 기다리는 까치집들.....

 

성곽을 따라 인왕산을 오르고.....

 

 

봄날씨다 완연한.....

삼일절휴일이라서 인지 수많은 사람들로 인왕산정상은 북새통....

 

뿌연 하늘 저쪽으로 남산의 서울타워가 보인다.

저곳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남대문으로 내려 서야 한다.

 

 

창의문에 도착했다.(서북의 서소문이다)

이곳에서 북악산 성곽을 오르기 위해 출입카드를 적고 츨입증을 받아야 했다.

가파른 성곽은 너무도 힘든 길이었다. 처음부터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걷는것에 도전한 나는 넘 힘들다는 사실....ㅜ.ㅜ

흠....요즈음의 내가 얼마나 게을었는지 당장 표나 난다.-.-;;

 

 

 

 ▲북악산 정상에 선 우리 일행들.....

 

 

 

 ▲총알 자국이 선명한 그날의 소나무....

 

 

 

 

 

오른쪽 인왕산자락에서 부터 구비구비 걸어 온 성곽...

5시간쯤 걸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배도 고프다.

2시가 넘어 가고 있다.성북동에서 왕돈까스를 먹는다던데 어서어서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숙정문은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남대문인 숭례문(예를 숭상한다)과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 5년 처음 서울성곽을 쌓을 때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한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 두어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가뭄이 심할때는 숙정문을 열고 남대문을 닫아 두었다고 하는데

이는 태종 16년(1416)에 기우절목(기우제 시행규칙)을 만들면서 북쪽은 음, 남쪽은 양이라는 음양의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숙정문은 오랫동안 문루가 없이 월단(무지개 모양의 석문)만 남아 있었는데 1976년 북악산 일대 서울성곽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성북동에서  점심을 먹기로한 장소에 도달했다. 5시간30분을 걸은 지금 시간이 오후2시40분......

성북동 오박사네왕 돈까스는 말 그대로 왕이었습니다~~어찌나 큰지....-.-;;

배고픈 김에 우리 모두 넘 맛나게 먹었다는....

그리고 이제 힘든 성곽코스는 끝이 나고 그런대로 걸을 만한 코스라네요.

동대문으로 해서 낙산으로 장충동으로 남산으로 그렇게 성곽길이 남아 있답니다.ㅜ.ㅜ

3명은 점심 먹고 포기하고 집으로 갔다.

그래도 끝까지 완주를 해야지 하는 각오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아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