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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으로 이르는 절 -도피안사 본문
도피안사(到彼岸寺)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피안(彼岸)이란 강 건너 저편, 불교에선 사바인 이승을 넘어선 저쪽의 정토를 의미한다.
도피안사...열반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그 절에 가면 그런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사적기 寺蹟記〉에 의하면 당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조성하여 철원에 있는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기 위해 암소 등에 싣고 운반하는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 사방으로 찾아보니 현재의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어 865년(신라 경문왕 5)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절의 이름은 철조불상이 피안(彼岸 : 열반의 세계)에 이르렀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1898년 불탔으나 당시의 주지 월운(月運)이
신도 강대용의 도움을 받아 중건했고, 1914년에는 주지 김의권에 의해서 신축·개수되었으나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철조불상과 대좌 및 석탑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뒤 1959년 이명재 소장이 15사단 장병과 함께 재건했으며,
현재는 군에서 파견된 군승(軍僧)과 주지 김상기가 관리하고 있지만 휴전선 북쪽 민통선 북방에 위치하고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법당과 요사채,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 3층석탑(보물 제223호) 등이 있다.
국보와 보물이 있는 절이긴 하나 예스럼움은 남아 있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감이 없진않다.
연꽃이 활짝 피었을때를 상상하며 피안의 세계로 한걸음 발을 내딛는다.
보물 삼층석탑 어딘가에 개구리가 기거했었나보다...._()_
양산 통도사 자장암의 금와보살이 잠시 여길 다녀 가셨나??ㅎㅎ
도피안사 삼층석탑 <보물 제 223호>
법당 앞에 건립된 높이 4.1m의 3층 석탑으로 방형 지대석위에 8각의 2중 기단을 갖추고 있다.
하층기단은 8각의 각면에 안상이 조각되고 갑석 위 괴임대에는 단조로운 복판연화가 있다. 상층기단 갑석에는
양련이 조각 되었으며 밑의 복련보다 다소 두툼하다. 탑신부는 일반형 석탑에서와 같이 방형으로 3층을 중적하였다.
상륜부에는 큼직한 노반만이 남아있다. 탑의 건립연대는 법당 안에 안치된 철불상의 각명에 의하여 신라 경문왕 5년(865)으로 추정된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땅도 패이지 않고 빗물이 옆으로 튀는 것을 방지한 센스.......
도피안사 철조비로사나불좌상 <국보 제63호>
이 불좌상은 신체와 대좌가 모두 철로 된 신라말의 보기드문 불상이다. 뒷면에 새겨진 139자의 명문 가운데 '함통 6년 기유 정월'의 문구가
있어서 이 불상의 제작시기는 신라 경문왕 5년(865)임을 알 수 있다. 살상투의 표현이 분명하지 않은점, 계란모양의 단정한 얼굴,
이상적이며 생동하는 느낌이 사라진 극히 현실적인 체구 등에서 우리는 당시의 참선하고 있는 스님을 대하는 듯한 친근한 느낌을 받는다.
기록에 의하면 도선대사가 철조비로사나불을 만들어 철원의 안양사에 모시려고 있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아보니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법의는 얇게 빚은듯한 평행 옷주름이 전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옷주름은 9세기 후반기 불상에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특히 명문에 의하면 이 불상은 철원군의 거사 신도 1500여명의 열렬한 신앙심에서 만든 것으로서 당시의 활발했던 불교신앙
결사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이와함께 이 불상은 당시 유행하던 철조비로사나불상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갸름한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평판적인 신체에는 굴곡의 표현이 없고 양어깨를 감싼 옷에는 평행한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몸에 비해 가냘픈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사고 있는 모양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이 시기에 가장 유행한 형태로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중대는 8각을 이루고 있다.
이 불상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859), 축서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867)과 함께
통일신라말의 대표적인 비로자나불상 중 하나로, 새로운 양식적 요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이다.
이성선 '到彼岸寺' 전문
허리 굽고 귀도 절벽인 노승이
누덕옷 속에
길을 모두 감추고 떠나버려서
그곳으로 가는 길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뜻밖에 일찍 뜬 달이
둑 위 가랑잎과 누워 섹스하는 모습만
훔쳐보고 돌아왔다
그 절에 가 봐도 이름과는 달리 피안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노승이 이승을 떠나면서 그의 누더기 옷 속에 그 길을 감추고 가 버렸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의 '누덕옷'은 무욕청정한 삶의 징표이기도 하지만, 또한 해탈한 육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누덕옷 속에 '피안에 이르는 길'을 감추고 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럼 피안에 이르는 길이 어디냐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 바로 이곳이 피안이란다.-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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