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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문화탐방체험교실 5강좌(종묘에서퇴계로까지) 본문
세운상가 -2차세계대전과 6.25전쟁 사생아
종묘에서 퇴계로까지....
서울역사박물관의 주최로 문화탐방체험교실이란걸 한다. 물론 무료이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첨되었다.ㅎㅎㅎ
답사는 정동과 대한제국, 경술국치의 현장, 3.1운동의 유적을 따라서, 민족운동의 현장, 한국전쟁관련답사 등 서울의 근현대사 유적지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그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탐방장소에서 만나 문화탐방체험을 하는 시간으로 6월 세째주
17일까지 8회에 걸쳐 탐방이 이어진다.25명 정원으로 수강자가 답사를 원하는 코스를 선택하여 신청할 수 있다.앞시간 4주는 신청에서 떨어지고
뒤로 4회만 참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매회 따로 인터넷 신청을 받아 당첨자를 발표했었다.
오늘 5월25일 주제는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안창모교수님의 안내로 종묘에서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세운상가를 걸어가며
"세운상가-2차 세계대전과 6.25의 사생아"란 제목으로 문화탐방을 한다.
흐린날씨에 약간의 빗방울이 내리는 화요일 오후 2시 종묘앞에서 부터 오늘의 문화탐방체험교실이 진행이 되었다.
<이하 안창모교수님 자료참조>
2차세계대전에서 비행기가 전쟁의 주요한 전략병기로 등장하자 제국주의 일본은 전략병기의 진화에 따른 전쟁방식의 변화가 도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폭격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예비조치로 1945년 3월 '한반도내의 도시소개대망'을 발표하고 이어서
경성내에 5개 소개 대상지를 고시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가시적 성과가 종로에서 필동에 이르는 소개공지대의 확보였다. 폭50미터,
길이 1,200미터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던 거주자의 강제퇴거가 이루어졌고 5월11일 시작된 1차 소개작업은 '싸우는 도시, 완성의 진군보'라는
구호 아래 6월말 완공 되었으며 이어 8월중에 2차 건물 소개 작업이 계획되었었다.소개공지대를 급하게 마련한 것은 공습시 화재등에 의한 2차
피해를 막기위해 화재전파를 막을 수 있는 공지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예상 밖으로 빨리 종결됨에 따라 종묘앞에 새로 개설된 소개도로가 미처 정비되지 못한 채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고
종묘앞 소개도로는 슬럼의 최적지가 되었다. 종묘 앞 신설도로의 슬럼화는 6.25전쟁 이후에 극심해졌는데 그 결과는 종묘 앞을 종삼이라는
사창가로 번창하게 만들어 버렸다.
세운상가지역의 소개공지대가 예비적 차원의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도시에 남긴 상처가 유난히 큰 것은 철거지역이 채 정비되기 전에
2차대전이 종료 되었고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행정공백기에 무허가 판자촌이 급속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 이곳은 청계천변과 함께 서울의 가장 어두운 곳의 하나였고 자연스럽게 박정희정권은 이곳의 개발을 통해 서울을 현대도시로
탈바꿈 시키는 전초기지로 삼고자 했다. 당시 5.16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던 건축가 김수근은 세운상가 프로젝트를 통해 동서로 발달한
서울의 도로체계에 남북축을 추가함과 동시에 종묘에서 남산에 이르는 녹지축을 만들고자 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운상가의 아파트는 최고의 주거지였고 서울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상가였던 세운상가는 그들의 꿈에 부응하는 듯 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하였다. 70년대 들어 본격화된 강남개발로 강북개발을 억제하면서 경제성을 좌우하는 용적율 상한선이
낮아졌고 각종 건축규제가 강화되었는데 그 결과는 이제 막 신흥개발로서 면모를 갖추어가던 세운상가에게는 치명적이었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까지 세운상가는 서울의 중심상권을 형성하였고 아파트 또한 선망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이후 서울의 중심 상권이
충무로, 명동으로 이전하고 대형 백화점이 개장하게 되면서 세운상가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또한 한강변에 현대, 삼익, 한양 아파트 등의 대형
고급 아파트가 건설되자 초기 세운상가의 입주자들은 강남으로 이주하게 되어 영세한 회사의 사무실이나 혹은 경제적 여력이 없는 계층의 주거로
슬럼화 되어 버렸다.그 결과 세운상가는 대낮에도 낯 뜨거운 물건을 팔고 젊은여자와 어린이들은 다닐 수 없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은 80년대의 악명에서 다소 벗어났지만 전반적인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이 남의 손에 좌우되던 식민지 조선 제1도시의 비극적인 모습이 투영된 세운상가.전후의 비극적 삶이 펼쳐졌던 곳,
그리고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탈출구인 경제성장의 가시적인 성과로 삼고자 했던 현대도시화 프로젝트의
현장 그러나 그 꿈이 일장춘몽으로 끝나면서 다시 철거대상이 되어버린 세운상가. 그 곳에는 지난 세기 우리 역사의 지난한 삶의 극단적인
모습이 펼쳐졌었다.세운상가 주변 재개발로 세운상가는 철거라는 건축물로서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대로 보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세운상가 아파트 내부 중정....
세운상가 건물군중 종로에 면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면 또 다른 모습의 종묘를 만나게 된다. 과연 종묘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나아가 서울에 이런 풍경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종묘의 전경과 종묘 너머 북악으로 연결되는 녹지축을 바라 보노라면
세운상가를 만든 이들이 왜 그렇게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녹지축을 강조했는지 그리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야기가 나오면서 북악에서
남산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녹지축의 조성을 왜 그리 떠들어 대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1967년 준공 당시의 모습을 중앙일보는 이렇게 쓰고 있다. "26일 오후 일부가 개점된 종묘-대한극장간 상가 아파트는 그 웅장한 규묘에
현대적 시설을 갖추어 서울의 상가에 군림하는 새명소로 등장하였다." 이 기사의 언급대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까지 세운상가는 서울의
중심상권을 형성하였고 아파트 또한 선망의 대상이 되었었다.
우리는 세운상가가 몰락해서 슬럼화되었다고 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세운상가는 공룡같은 몸체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세운상가는 아직도 전기,전자 제품의 집산지이며 국내 오디오 매니아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이다. 종합조명 점포에서부터 방송국, 스튜디오,
무대조명, 진열장 등에 이르는 각종 특수 조명기구들, 컴퓨터, 비디오 등 다양한 전자제품이 한 곳에 모여 있고 가격도 저렴해서 전국의 상인들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로 북적대는 전문상가이기 때문이다.물론 '몰카'와 '음란 비디오의 천국' 요즘은 도감청 장비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언론을 타기도
했지만 "있는 기기 없는 부품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동네"라는 명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충무로쪽 진양상가에는 꽃가게와 홈패션
그리고 애견동물 코너도 퇴계로와 맥을 같이하며 자리하고 있다.
상가뿐 아니라 아파트도 627채나 있다. 교통요지, 일터와 근접한 주거공간이다. 오피스 호텔도 있다. 90%를 호화 아파트로 채우는 요즘 무늬만 주상복합인
주상복합건물과는 비교가 안되는 진짜 복합도시다. 3,000여개 업체, 고용인구 2만, 이용인구 30여만이 꿈틀거리는 거대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 복잡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옥상에서 바라보는 지붕의 모자이크다. 숨쉴 곳 하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도시생명체가 세운상가의 진면목이다.
1km라는 짧지 않은 거리를 오르내리며 세운상가를 체험하다 보면 마지막에 위치한 진양상가에 다다르게 된다.
진양상가의 아파트가 가장 높고 종묘쪽의 아파트가 가장 낮은 것은 고도 제한 등의 법규가 마련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종묘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했던 건축가의 뜻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진양상가의 아파트 옥상에서 근접한 남산을 바라보는 동시에 남산에서 종묘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세운상가 열차군은
도시와 건축에 관심을 갖은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청계천 복원을 전면에 내세운 도심재개발사업은 세운상가의 운명을 크게 바꾸어 놓을 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운명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에 계획되고 진행되는 사업이 서울에 미칠 영향은 1960년대 세운상가 건설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클 것이다. 60년대의 세운상가가 기존의
소개도로를 물리적으로 차를 위한 도로로 확보하고 그 위에 새로운 인공대지를 만들어 새로운 개념의 도시로 건설되었지만 현재 진행중인
세운상가 주변 블록 개발프로젝트는 주변 블록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림상가>
예전의 삼풍상가를 헐고 다시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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