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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적지 관광 첫번째 '광개토대왕릉'을 찾다 본문
고구려 유적지 관광 '광개토대왕릉'을 찾다
(백두산종주를 마치고 고구려유적지를 방문하다~)
고구려의 숨결.......
백두산으로의 여행을 하기위해 단동에서 14시간을 걸쳐 달려갔던 길을 돌아 나올땐 이틀에 걸쳐 나오게 된다. 그러면서 고구려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어 백두산에서 그치지 않고 고구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길이라 많이 흥분되었고 기대가 되었다. 광개토대왕릉비가 있고 광개토
대왕능이 있는 곳은 압록강 북안인 중국 지린성 지안현(輯安縣)에 있다. 임나일본설을 주장하는 일측이나 고구려의 역사까지도 중국의 역사로 만들겠
다는 중국이나 어이없는 말만하는 이들에 대처할려면 국력을 키워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듯 싶다. 우리의 역사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데...수능에서 선순위에 밀려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과거가 있으므로 현
재와 미래가 있느니....
통화에서 집안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보이는 차창밖 풍경들이 휙휙 지나가는 와중에 눈에 뜨인 참 재미나게 생긴 나무들....길가에 가로수로 울타리로 심어져
있는 나무....자라는 나무의 생김새가 우리가 잘 아는 벤자민같아 보였는데 자세히 보면 잎이 다르다. 궁금증은 광개토대왕릉이 있는 곳에서 풀 수가 있었다.
나무는 '느릅나무'이며 낙엽송이며 키 작은 교목이다. 중국에서 광범히 재배하고 있는 (백)느릅나무의 재배품목이고, 내가뭄성, 내한성이 뚜렸하고 유해기체
에 강한 저항성을 가진 나무라고 한다.....^^*
가는 길에 화장실도 이용할 겸 잠시 들렀던 어느 시골집(?) 마당에 벌집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꿀을 사는 이도 있었다. 한병에 우리돈으로 만원....
나는 왠지 도저히 이런 물건들을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사는 이들이 있으니...참 재밌다....ㅋ
드디어 도착한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릉이 있는 곳...........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의 동쪽인 국강상에 있는 광개토왕릉 동쪽편에 세워졌다. '국강상광개토경편안호태왕'이라는 광개토왕의 시호를
줄여서 '호태왕비'라고도 한다.
비는 커다란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으로 된 불규칙한 직4각형의 기둥 모양으로 된 4면비로, 남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세워져 있다. 높이는 6.39m로 윗면과 아랫면은 약간 넓고 중간부분이 약간 좁다. 아랫부분의 너비는 제1면이 1.48m, 제2면이 1.35m, 제3면이 2m, 제4면이 1.46m이다. 아래에 화강암의 받침대를 만들었는데 길이 3.35m, 너비 2.7m의 불규칙한 직4각형이고, 두께는 약 20cm이나 고르지 않다. 문자의 크기와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해 비면에 가로·세로의 선을 긋고 문자를 새겼다. 문자는 비의 4면에 모두 새겨져 총 44행 1,755자로, 이중 마멸되어 전혀 판독할 수 없는 것이 약 140여 자에 이른다. 각 문자는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에 가까운 서체를 사용하여 장중하고도 위엄이 있어 고구려 독자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특하다. 그리고 문자의 크기는 균등하지 않으나 대략 가로·세로가 14~15cm 안팎이며, 이체자(異體字)와 간체자(簡體字)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백과사전 참조-
비바람으로의 침식을 막기위해 비각을 설치하여 보호를 하고 있다. 비석사진 촬영은 금지인지라 밖에서....;;
공개된지 20여년이 흘렀건만 탁본도 못하게 한다. 또 실내 전시공간에 있는게 아니어서 촬영으로 비석이 상할리가 없는데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다.
비석의 금간곳을 비롯해 일부 회를 발라 비문을 다시 써넣은 것에 대한 해석이 한국, 일본, 중국 등 세나라 모두 제 각각이어서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는게
역사학계의 공통된 주장이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으니...촬영도 못하게 하고 공동조사도 안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리라......
이 비는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이 왕 2년(414년)에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당시 수도였던 압록강 유역인 중국 길림성 통화전구
집안현 통구성(吉林省 通化專區 輯/集安縣 通溝城 - 중국 현지에서는 集安縣)에서 동북쪽 약 4.5km 지점의 태왕촌(太王村)에 있다. 임나일본부설 논란을
불러 일으킨 신묘년기사(辛卯年記事)를 일본은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 등을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 :
□는 훼손된 문자 )”을 해석했는데, 이후 이 신묘년기사를 4세기 후반 신공황후(神功皇后)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정벌했다는『일본서기(日本書記)』의 기록
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이른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정설로 만들었는데 이는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에 자극을 받은 한국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을 했고, 민족주의 사학자 정인보는 1930년대 말에 저술한 「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문석략(廣開土境平安好太王陵碑文釋略)」에서 ‘도해파(渡海破)’의 주어를 고구려로 보아 “왜가 신묘년에 왔으므로, (고구려/광개토대왕)가 바다를 건너가 왜를 깨뜨리고 백제와 □□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
다”고 해석하여 일본인들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비가 있는 곳으로부터 서남쪽 약 300m의 지점에 있는 태왕릉인 광개토왕의 능으로 이동하는 중....
이곳을 광개토대왕능이라 하는 이유는 부근에서 '태왕릉이 산악과 같이 안정되고 굳건하기를 원한다(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광개토대왕릉은 무참했다. 광개토대왕릉은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이를데 없었다. 장수왕릉에 비해 5배나 된다는 기록과는 달리
능은 거의 허물어지고....널부러진 돌들이며...높이 14.8m, 한 변이 66m에 이르는 네모꼴 계단식 석실묘였다지만 아무리 봐도 네모모양이 실감이 나지 않
고......초라하게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한국인을 상대로 돈벌이로 전략되어 버린듯한 관광지모습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영토에 있다
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것이 아닌 남의 것이 되어 버린.....
<광개토대왕 비문의 내용>
비문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제1면 1행 ~ 6행)은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추모왕(鄒牟王=동명왕),유류왕(儒留王),대주류왕(大朱留
王) 등의 세계(世系)와 광개토왕의 행장(行狀)을 기록해 놓았다. 둘째 부분(제1면 7행 ~ 3면 8행)에는 광개토왕 때 이루어진 정복활동과 영토관리(만주 정복, 백제 정벌, 신라 구원, 동부여 및 숙신 정벌)에 대한 내용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해 놓았다. 비문의 기록에 따르면, 광개토왕은 64개의 성(城)과 1,400개의
촌(村)을 공파(攻破)하였다. 왕의 외정에는 정토복속(征討服屬)과 토경순수(土境巡狩)가 있으며, 한반도 내는 전자의 대상이 되어 동일세력권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영락 10년(400)조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왜는 축출의 대상이었고 정토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
본부와 같은 실체를 찾아볼 수 없다. 셋째 부분(제3면 8행 ~ 4면 9행)은 능을 관리하는 수묘인(守墓人) 연호(煙戶)의 숫자와 차출방식, 수묘인의 매매금지
에 대한 규정이다. 이 부분은 고구려 수묘제(守墓制)의 실상과 함께 수묘인의 신분 등 사회사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광개토대왕릉이나 광개토대왕비가 있던 주변의 수많은 집들을 허물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인근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고 한다. 주변을 정비하고
고구려 유적을 발굴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리라.....
아~~~자꾸 생각하니 가슴만 아프고 울화통이??
사진으로 보이는 울타리 넘어는 북한측이다. 남포시라고 했던것 같다. 북한 만포시와 압록강을 마주한 집안은 지금은 인구 25만명의 크지않은 도시지만
기원전 3세기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로서 경제, 문화, 정치의 중심지였다.
남포시를 배경으로.....^^;;
광개토대왕릉입구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 중국인....이곳 역시 촬영금지.....
널방내부는 물론이고 널방입구를 촬영하는 것도 제제를 당하기도 했다는.....광개토대왕의 화려한 업적에 비추어보면 수 많은 수장품들이 있을 것으로
추측이 되나 모두 도굴 또는 훼손되어 외형만 남은 모습이다.ㅠㅠ
은근 무더운 날씨....
광개토대왕릉을 둘러보고 내려오며 이래저래 열받아서인지 산산님도 나랑 함께 맥주 한 캔을 속시원하게 비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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