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고구려유적지관광 두번째 '장수왕릉'엘 가다~ 본문

걸어서 세계속으로/중국

고구려유적지관광 두번째 '장수왕릉'엘 가다~

다보등 2011. 8. 16. 09:00

백두산 여행중 고구려유적지관광 두번째 '장수왕릉'엘 가다~

(백두산종주를 마치고 귀국길에 들른 고구려유적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경영했던 동아시아의 대제국 고구려....그리고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 ...
동양의 피라미드라고 불리운다는 거대한 고구려의 유적지 '장수왕릉'에서 그를 만났다.....유일하게 외형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장수왕릉은 화강암의

분홍빛이 도는 거대한 크기에 일순 경건해지며 정적이 감도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양의 피라미드라 불리운다는 이 능은 높이가 13m에 달하며 7층의

계단식 적석총이다. 적석총은 고구려에서 성행하던 무덤의 형태이다.장수왕릉이 1500여년이 넘는 세월에도 거의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고구려인들

훌륭한 건축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들여쌓기와 그랭이라는 기술로 만들어진 장수왕릉....들여쌓기는 위로 올라 갈수록 단을 조금씩 들여쌓아 마치

계단처럼 보이는 고구려의 전형적인 건축기술이고 그랭이는 울퉁불퉁한 주춧돌에 나무기둥이나 돌을 다듬어 서로 맞추면 아랫돌의 생김에 따라 위의 나무

기둥이나 돌이 톱니처럼 서로 맞물린듯이 밀착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장수왕릉은 1100여개의 돌을 64km나 떨어진 채석장에서 가지고 와서 윗돌과 아랫돌

단단하게 끼워 맞춘 것이다.장수왕릉보다 300여년 늦게 세워진 불국사에서도 볼 수 있는 기법이다. 광활한 대륙을 지배했던 고구려인의 위상과 기술력

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수왕릉은 광개토대왕릉이 있는 곳과 그닥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장수왕은 21세에 즉위(412)하여 78년동안 재위하였다.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적극적인 남하정책을 추진하여 죽령 이북 한강유역을 차지

하며 백제땅 거의 절반을 점령하고 신라부터 항복을 받아냈으며, 북쪽으로는 아버지 광개토대왕이 물려 준 요하동쪽부터 만주벌판을 점령하여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며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장군총이라 불린 이유는 중국인들이 이름없는 한 장군의 무덤이라 하여 그리 불렸고 '총'이라 붙이는 것은 주인을 모를 경우라 한다. 따라서 누군지 알 수

없는 장군의 무덤이 바로 장군총이라는 것이다. 현재 '장수왕의 능'으로 규정되었고, 장군총이라 부르면 안될 것이다. 태왕릉보다도 1/3이나 작은  장수왕

릉은 그 규모에서가 아니라 축조방법과 왕릉의 형태가 고구려 적석총의 형태에서 가장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무덤은 높이 12.4km, 길이 31.6km, 7단 계단식으로 정면은 집안시를 향하고 있다. 네 귀는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석실안 석관의 머리 방향은 53도로 북동쪽

백두산 천지를 향하고 있다.  안팍 전부를 화강석으로 쌓아 올린 석축릉으로 구조가 정연하고 규모가 매우 장대하다. 축석분으로서 거의 완전한 모양을 갖

추고 있는데 중국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고분의 유물은 모두 도굴당한 상태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의 것이라는 두설이 있었는데 현지 중국 학자들은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들이 놓여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최근에 많은 학자들은 고구려의 '거석숭배문화'의 반영이라는 설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한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에는 신성함이 담겨 있고 그 신성함을 이용해 왕권의 신성한 권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문화재보호를 위해 오를 수 없지만 예전엔 저 계단을 올라 장수왕릉 상층부의 석실까지 입장이 허용됐었다 한다. 석실에선 고구려수도였던

국내성이 한 눈에 보인다한다. 고구려왕릉은 왕이 살아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조성했다하니 장수왕은 죽어서도 고구려를 굽어 살펴보려 했음을 느낄

수 있다.

 

 

 

 

 

 

 

 

 

 

장수왕릉 주변에 있는 이 딸린무덤은 가이드말에 의하면 그의 '애첩무덤'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원래는 5기정도였는데 지금은 한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기단위에 고인돌 모양을 한 기이한 형태의 아담한 무덤이다. '딸린무덤'은 왕을 모시던 시종

들이나 첩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