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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안산에 올라 서울을 보다 본문
서울 서대문구 안산에 올라 서울을 보다
우중충했던 오전과 달리 오후로 접어들며 날씨는 아주 화창해졌다. 약간 추운듯한 바람이 알샤하니 빰을 스치고 지나는 느낌이 그닥 싫지 않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간단한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안산으로 올랐다. 안산은(295.9m) 예전엔 길마재로 불렸다. 조선시대 안산현은 안산 아래 마을 지금의 현저동을 일컬었다. 황기가 서렸던 인왕산과 마주하며 무악재를 만들고 있는 안산은 그 능선이 말안장처럼 편하게 생겼다. 안산은 무악산으로 오랫동안 불렸고 지금도 그 이름에 익숙한 사람이 많다. 무악재에서 온 이 명칭은 조선 건국 당시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데 도움을 준 무학대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또 서울의 진산이 삼각산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어서 이를 막기 위해 이 산의 이름을 '어머니의 산'이란 뜻으로 '모악'이라 지었다는 설도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빠져나와 한성과학고에서 오르면 안산으로 오를 수 있다. 무악재는 한양의 북서쪽 경계이자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교통 군사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중국 사절들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 이곳에 사절을 맞는 모화관과 영은문을 지었다. 안산은 한양의 관문을 끼고 있다보니 조선시대 '이괄의 난'때 승부처였고, 6.25전쟁때도 서울 수복 당시 최후의 격전장이 되기도 했다.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 탈환을 도모하면서 마지막에 대치한 곳이 안산이었다. 유명한 '연희고지'전투가 그것이다. 안산은 '연희전문대' 지금의 연세대,이화여대 뒷산이다. 무학대사가 이쪽으로 궁궐터를 생각했었다는 얘기도 있다. 여하튼 국군 해병대 제1대대가 9월22일 안산을 점령하고 결국 9.28 서울 수복을 한것이다.이곳에서 숨진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300m가 채 안되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이처럼 역사적으로 할 말이 참 많은 산이다.
오르면서 앞쪽으로 인왕산과 성곽이 보인다.
안산은 높이에 비해 물이 많은 산이란다. 샘터가 무려 20여군데나 있어 굳이 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산이라고 한다....^^*
서대문구 냉천동도 안산에서 솟아나는 물이 차고 달아 생겨난 이름이다. 지금은 전부 안산으로 부르지만 그 지맥인 김화산(金華山) 기슭에서 특히 약수가 많이 솟아났다.
가을답지않은 따스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진달래가 철없이 피었다. 미처 추위를 피하지 못한 진달래가 오돌돌 떨고 있는듯 하다.
무악산 동봉수대 터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3호
이곳은 무악산에 있는 동,서 두개의 봉수대가 있었다. 지금보이는 봉수대는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을 기념해 복원한 동(東)봉수대이다. 이 봉수대는 평안도와 함경도로부터 달려 온 봉수가 남산의 제3봉수대로 최종 보고되기 바로 전단계의 봉수였다. 현재는 봉수대 주변으로 안전을 위한 가림벽 설치공사로 주변이 어수선하였다.
무악산 동봉수대에서 보이는 서울 전경....
<팥배나무열매>
<매자나무열매>
두가지색을 가진 조릿대
높은 봉우리의 북악산아래 청와대가 보인다. 앞쪽으로 인왕산을 따라 서울성곽이 길게 보인다.
북아현동 뜨란채아파트방향으로 하산을 했다. 연대를 거쳐 이화여대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달리 이정표가 없던관계로 길게 걷다보니 예정에 없던 북아현동이다. 큰길로 나가기 위해 이리저리 길을 묻고 물어야 했다. 충정로 어디쯤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짧은 해가 어느새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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