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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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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구석구석~~/서울.경기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

다보등 2012. 7. 9. 09:00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

 

 

 

 

 

1950년 9월 14일 저녁 7시

최규봉 대장은 맥아더 사령관으로부터 전쟁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명령을 받았다. 15일 0시 북한군이 점령한 팔미도의 등대에 불을 밝히라는 것. 이에 최대장을 포함한 특공대 6명은 팔미도에 잠입하여 사투끝에 적 2개부대를 섬멸하고 잠입한지 4시간이 지난 오전 1시 45분 팔미도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게 된다.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천상륙작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다. 이 특공대가 소속된 부대가 극동군사령부 주한첩보연락처인 이른바 켈로부대라고 한다. 켈로부대는 미군이 3천명 규모로 조직한 유엔군 첩보부대이다. 비밀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부대 특성상 성과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1994년까지 참전을 공식 인정 받지 못해 비운의 부대라 불려왔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달 22일 최대장이 인천상륙작전의 공을 인정받아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날 저녁 뉴스시간에 팔미도의 켈로부대에 대한 뉴스를 접하며 오늘 이렇게 팔미도등대를 찾으리라고는 미쳐 상상도 못했다. 팔미도에 발을 딛으며 그 극박하고 치열했던 그 날을 상상하니 괜시리 가슴이 먹먹하고 코끝이 찡해졌다.

 

 

 

 

 

 

2003년 12월 지난 100년간 밤바다를 밝힌 팔미도등대가 앞으로 다가 올 천년의 세월동안 변함없이 우리나라 항로표지의 이정표가 되기를 염원하여 팔미도등대의 해양문화유산 지정을 기념해 세운 '천년의 빛' 조형물

 

 

 

 

 

앞쪽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등대인 구등대와 뒤편의 신등대가 나란히 보인다. 1903년 한국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팔미도등대가 석유등을 밝혔다. 해발고도 71m의 팔미도등대는 10km밖에서도 알아 볼 수 있었다한다.54년 자가발전 시설을 갖추고 백열등으로 불을 밝혔고 92년에는 태양광 발전장치를 설치하였다. 2003년 한국등대 설치 100주년을 기념해 해양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팔미도등대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선착장으로 가는 길을 걸어 보았다. 20여분이면 선착장에 도착하는 짧은 길인지라 우거진 숲길이 이어져 등대만 보고 그냥 왔던 길로 내려가는 것보다 산책로를 걸어서 내려 가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마침 우리가 선착장에 도착을 하니 유람선이 팔미도에 서서히 접근을 하고 있다. 팔미도는 정기유람선이 운행을 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다시 배를 타고 영흥도로 돌아 오는 길에 나무데크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섬이 보였다. 저게 무슨 섬이냐 선장에게 물으니 우봉도라고 한다. 신정일선생님은 다음에 저 섬도 한번 가보자고 한다. 쌤~ 섬 탐방에 재미내셨능교?ㅎㅎ

 

 

 

 

 

멀리 영흥대교가 보인다. 오전 7시에 배가 출항을 하여 오후 5시 영흥도에 도착을 하였다. 종일 배를 타고 120km를 달렸다. 등대탐방이라는 색다른 체험을 하였다. 등대에 대한 관심보다는 서해의 작은 섬 무인도를 가 본다는 설레임이 훨씬 컸다. 더군다나 배멀미를 하지 않고 신나게 즐겼으니 이보다 더한 흥미로운 섬기행이 어디있으랴~~ㅎㅎ(더러 배멀미를 한 사람도 있지만서도....^^;;)

 

 

 

 

 

 

명성호선장님이시다~~^^*

 

 

 

2호 배가 서서히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이후에는 횟거리를 사서 주차장 바닥에 주저앉아 마지막 회포를 풀고 집으로 gogo~~

 

 

 

  영흥도선착장 - 부도등대 - 선미도등대- 팔미도등대 -영흥도선착장 (12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