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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계속으로/터키

이스탄불 외곽에 있는 성화가 많았던 '코랄교회'

다보등 2013. 1. 4. 11:44

이스탄불 외곽에 있는 성화가 많았던 '코랄교회'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투르크'라고 부른다.

우리가 코리아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처럼.

 

역사를 배웠다면 과거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것이다.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원래, 나라와 나라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지만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즉,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것이다.6.25 때부터가 아니고...

 

그렇다면 의문점 하나.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까?

 

답은 간단하다.역사 교과서의 차이다.우리나라의 중, 고 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돌궐이 이동해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됐다느니 하는 얘기는 전무하다.

 

터키는 다르다.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이며 돌궐 시절의 고구려라는 우방국에 대한 설명 역시 아주 상세하다.

 

'형제의 나라'였다는 설명과 함께.그래서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한국을 사랑한다.설령 한국이 그들을 몰라줄지라도...

 

실제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 역시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은 대부분 '아니오'였다.

 

충격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다.

 

6.25참전과 올림픽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경기는 한국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졌다. 이후 우리나라 제품의 인지도가 높아진건 말할 필요가 없겠다.

 

여행하는 내내 터키 어디를 가나 꼬레아에 대한 후한 대접을 받았고 그들은 살갑게 우리를 대해 주었다.

6.25를 기억하며 친척중에 참전을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한다던지 것도 아니면 마을에 어떤이가 참전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였다.친분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터키는 그래서 기분 좋은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