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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은 도담삼봉으로 향하고/한강종주
하늘이 어두워진다 싶더니만 후두둑 멀리서부터 빗소리가 먼저 달려 오더니 순식간에 천지에 비가 내리기 시작을 하였다. 어떻게 해 볼 사이도 없이 주먹만한 빗방울이그냥 쏟아졌다. 급히 우산을 꺼내 들었으나 우산으로 가릴 수 있는 형국이 아니었다. 그나마 우산도 없는 도반들이 태반이다. 오전에 잠시 내리던 비는 점심을 먹은후 해가 났고 하늘이 맑아 대부분의 도반들이 우산 하나의 무게라도 줄일 요량으로 버스에 두고 내린 탓이다. 마침 주인없는 원두막이 있어 옹기종기 디밀고 비를 피했다. 비는 한참을 그렇게 쏟아졌다. 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참 한가로운 기분이 드는건 뭐인지...ㅋㅋ
30분남짓 억수로 퍼붓던 비는 언제냐 싶게 또 그렇게 말갛게 그쳤다.
도담삼봉까지 걸어 가야 마땅하나 비를 맞은 도반들도 많고 이래저래 많이들 지쳐서 버스로 이동을 하였다. 얼마남지 않은 거리인지라 내심 걸었으면 하였으나 그럴 수 없는 형편이었다.
도담삼봉에 도착을 하고보니 이곳엔 비온적이 없이 하늘이 쨍쨍하다. 하참 기가찬다.ㅋ
예전엔 석문이 있는 줄도 몰랐고 그저 도담삼봉만 보고 돌아섰는데 요즘은 석문이라는 명소를 안내하는 안내문이 걸렸고 많은 사람들이 석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석문 올라가는 길에는 시끌법적하게 노래하는 분수를 만들어 놓아 눈쌀을 찌푸리게 하였다. 노래방에서 노래하듯이 돈을 지불하고 노래를 하면 분수를 가동하는 모양이다. 고래고래 노래하는 사람들의 작태가 보기에 썩 좋지않아 보였다. 에그...꼭 저렇게 저런곳에서 노래를 하고 싶을까? 그 마땅찮은 현장을 어서 벗어나고자 부지런히 석문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고 오른다.
석문까지는 10여분이면 오를 수 있다한다.
오래전에 석회동굴이 무너진후 동굴천장의 일부가 남아 지금의 구름다리 모양이 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안내문에는 그 규모가 동양에서 제일이라지만 중국의 계림을 가면 어마어마한 석문이 있다하니 동양에서 제일이라는건 과장된 표기인듯 하다.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그의 완당집(玩堂集)에 ‘석문(石門)’이라는 제목의 멋진 시를 읊었다.
“百尺石霓開曲灣 / 神工千佛杳難攀 (백척석예개곡만 / 신공천결묘난반)
不敎車馬通來跡 / 只有煙霞自往還” (불교거마통래적 / 지유연하자왕환)
“백척의 돌무지개가 물굽이를 열었으니 / 신이 빚은 천불에 오르는길 아득하네
거마가 오가는 발자취를 허락하지 않으니 / 다만 연기와 안개만이 오갈뿐이네”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은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주역인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자신을 삼봉이라 자호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한다. 삼봉(三峰) 정도전 그의 호를 따라 도담삼봉이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에 군수로 부임하면서(1548년) 도담삼봉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퇴계는 그 마음을 멋진 시로도 남겼다.
山明楓葉水明沙 / 三島斜陽帶晩霞 (산명풍엽수명사 / 삼도사양대만하)
爲泊仙橫翠壁 / 待看星月湧金波 (위박선사횡취벽 / 대간성월용금파)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도담삼봉에서 사인암으로 버스로 이동을 하였다. 사인암리에서는 남조천이라 불리는 작은 개울을 따라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절벽을 볼 수가 있는데 단양 8경 가운데 하나인 사인암이다. 30m가 훨씬 넘어 보이는 절벽은 커다란 암석들이 층층히 경계를 지어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남조천위에 걸쳐있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고려 공민왕때 나옹화상이 창건했다는 청련암이란 작은 암자가 있다.
청련암
사인암/명승 제47호
하늘높이 치솟은 기암절벽이 마치 다른 색깔의 비단으로 무의를 짠듯 독특한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해금강을 떠오르게 하는 풍경으로도 유명한데 추사 김정희가 하늘에서 내려 온 한폭의 그림같다고 예찬했을 정도로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사인암'이라는 이름은 고려 후기의 유학자인 역동 우탁(1263~1342)이 지냈던 사인이라는 벼슬에서 유래하였다. 단양이 고향인 그는 이곳을 유난히 사랑하여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를 지냈던 임재광이 그를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지은것이다.
사인암에는 우탁이 지은 시조 '탄로가'가 새겨져 있다.
'한 손에 가시들고 또 한 손에 막대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사)우리땅걷기에서는 1300리 길 한강종주를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시작을 하였고 12월까지 이어질 한강따라 걷는 여정에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강의 물줄기 태백시 검룡소에서 시작되어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에서 강으로서의 생을 마감한 후 서해로 들어가는 한강의 긴여정에 두발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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