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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인의 성지 '향비묘' 그리고 공동묘지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인지...
타클라마칸 사막투어는 실망이었다.
위구르어로 타클라마칸은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라는 뜻이란다. 세계 최대의 모래사막 가운데 하나로 중국의 신강위구르 자치주에 있다. 중국 타림분지 중앙에 있으며 북쪽의 톈산 산맥, 남쪽의 쿤룬산맥, 서쪽의 파미르고원 등 높은 산맥들로 둘러싸여 있다. 암튼 하루투어로 사막을 알고 싶었던 무리한 기대감은 실망으로 변했고 속절없이 누구를 탓하랴? 사막은 무슨? 개뿔!을 외치며 우리는 다시 카슈가르 시내로 돌아왔다.
香妃墓
카슈가르로 돌아와서 그냥 숙소로 들어갈것인가 아님 향비묘를 갈것인가 분분하였다. 피곤은 하나 이왕 내친김에 향비묘를 갔다오는 것으로 결정! 택시를 타고 향비묘를 찾아 갔다.
향비묘?
아바흐 호자의 손녀인 향비의 묘가 있는 곳이다. 이는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인에겐 성지나 다름없는 아주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이 묘당은 1640년경 이 지역의 이슬람교 지도자 아바 호자가 선친을 위해 지은 것인데 그의 사후에 일가족 5대 72구의 시체가 묻혀 있다고 한다. 위구르인들은 죽어서도 최대한 이곳 묘당 근처에 묻히고 싶어한단다. 마침 찾아간 이 날은 장례식을 치루고 있어 남의 나라 장례식을 한참 구경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로서는 참 신기한 모습이라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가만보면 남자 일색이다.
아바호자의 묘...즉 향비묘가 있는 묘당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보수하느라 어수선하다.
묘당은 주로 쪽빛 타일로 모자이크를 했다. 신장 동부의 하미에서 200만 명의 손을 거쳐 가져온 타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타일이 고갈되어 벽이 망가져도 수리하기가 쉽지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대대적인 보수를 하고 있는걸 보면 어떤식으로든 타일이 생산되어 보수를 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묘당안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사진을 찍는데 득달같이 관리인이 나타나더니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만류한다. 급히 사과를 했다. 안에 있는건 빈 관들이고 시신은 2m 아래 지하에 있다고 한다. 실내엔 크기가 제 각각인 관들이 있는데 한가운데 가장 큰것이 아바 호자의 관이란다. 아바호자의 몇대 손녀인 향비(당시 26세)는 다분히 정략적 이유로 청나라 건륭황제에게 바쳐져(그에게는 황후 외에 2명의 황귀비, 5명의 귀비, 각각 6명의 비와 빈이 있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영화를 누리다가 병사했다는 설도 있고, 절개를 지키다가 향수병에 걸려 요절했다는 설도 있다. 위구르인들의 자존심을 위해 내용을 가미 윤색했다는 설도 있다. 16세기 이곳이 캬슈가르 칸 국의 수도로 있다가 청나라가 침입하자 반청 독립운동의 책원지가 되었다는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면 이런 이해가 가능할 법도 하다.
기념품 가게에 내걸린 향비의 초상화
향비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날은 어찌된 일인지 상점은 문을 닫았다. 금요일인 오늘이 이슬람에서는 휴일인 모양이다.
처음 묘당에 들어갈때 묘당입구에 있는 에배당에 수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나와보니 밖에 도열해 있다.
어찌나 진지한지 덩달아 긴장감이 돌았다.
나중에 보니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있으나 여자는 단한명도 보이질 않는다. 죄다 남자들 뿐이다.
관을 옮기는 모습이다.
이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모였는데 죽은이가 이 지역의 유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바크 호자묘(향비묘)입구의 코란을 가르치는 학교(교경당)의 기둥과 장식
바닥에 깔린 카페트의 문양이 향비묘로 들어가는 문과 묘당을 카페트에 새긴것 같다.
딱 한사람이 앉으면 될 크기이니 예배드릴때나 경전을 배울때 질서정연하게 앉을 수 있겠다.
아바호자의 묘당 뒤편에 있는 공동묘지이다.
운구행렬을 따라 가다보니 묘당 뒤편에 어마어마한 공동묘지를 만났다. 장례식이 없었다면 모르고 지나쳐 볼 수 없었던 곳이다.
위구르인에게 첫째 소망이 뭐냐? 한결같이 사후 향비묘 가까이 묻히고자하는 것이란다.향비묘 옆에 공동묘지를 보아하니 참말 그런 모양이다.이곳에 묻히는 것도 돈이 제법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위구르인이라면 옛날 찬란했던 위구르왕국을 잊지 않고 있음이다.그녀 향비는 그들의 우상으로 우뚝 선지 오래...
남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인가보다 하여 우리는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 멀찌감치서 장례식을 구경했다.
그나마 여행자라는 신분이라 이렇게나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묘지 첨탑과 이슬람 진리의 상징인 초승달
다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며 차창밖으로 그 유명한 카슈가르의 선데이바자르를 지나친다.
내일은 키르키즈스탄으로 넘어 가는 날이다.토르갓 패스라는 해발 3,752m 고개를 넘어 가야 한다.
많이 피곤하여 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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