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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시기리아 바위산 정상에 다시 도전, 기어이 올라서다 본문

걸어서 세계속으로/반갑다 스리랑카

시기리아 바위산 정상에 다시 도전, 기어이 올라서다

다보등 2015. 8. 2. 22:20

말벌 때문에 돌아섰던 시기리아 바위산 정상에 서다

 

 

 

 

 

2015년 1월 27일

오전에 사자발 입구에서 있었던 말벌 소동은 오후가 되어서 진정이 되었습니다. 시기리아 바위산을 뒤로하고 앞산에 있는 피두란갈라 사원엘 다녀왔습니다. 말벌 때문에 간 곳이지만 말벌에게 감사해야할 지경입니다. 정말 멋진곳이었으니까요. 우리가 다시 시기리아에 입장을 할려니 제지를 당합니다. 입장권에 사인을 받아 두었으므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오전에 말벌소동으로 시기리아를 나오며 재 입장을 보장받으며 사인을 받아 두길 정말 잘한 일입니다. 말벌 때문에 오전 관광객들은 다 돌아갔고 아마도 다시 입장한 관광객은 우리뿐인것 같습니다. 우리는 말벌 소동 그 덕에 피두란갈라 사원의 바위산 정상에서의 압도적인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온게지요. 아마도 그러지 않았으면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덥고 힘든데 거기까지 걸어가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말벌에게 감사를??ㅎㅎ

 

 

 

다시 시기리아 바위산으로 접근을 합니다. 하루에 두번이나?ㅋㅋ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다시 왔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요~

 

 

 

오전과는 달리 한산합니다. 오전에 그 많은 관광객을 보았던터라 우리에겐 정말 다행이지요 뭐~~

 

 

오전의 말벌소동을 알길이 없는 관광객들은 평화스러워 보입니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 오는 길이 다르므로 우리는 내려오는 길로 올라갑니다. 두번째 길이다보니 아주 익숙합니다요~

 

 

드디어 사자발 앞에 왔습니다. 기어이 우리는 이곳에 왔습니다. 오전에 이곳에서 말벌이 관광객들을 공격하여 난리도 아니었던 현장입니다. 오전에 철수하였다가 오후에 다시 온 현장입니다. 계단에는 벌들의 사체가 여기저기 눈에 뜨이더군요.  벌에게 쏘인 관광객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바위산 정상으로 오르는 돌계단 양옆에 아직 남아 있는 사자발톱 모양의 유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발톱만 남은 건축물 위로 애초에는 거대한 사자 몸통이 있었고 사자 아가리를 통해 궁궐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 형상이 쉽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시기리아라는 이름도 싱하(사자)와 기리야(목구멍)라는 싱할라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아찔한 절벽에 지금은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철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도 다리가 후덜거립니다. 유적입구의 계단까지 합쳐 산정까지 는 모두 1,200여개의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철계단옆으로 바위를 파서 만든 계단이 보이는지요? 철계단이야 요즘의 것이고 카시야파 왕 시절엔 까마득하고 아찔한 절벽의 바위를 파서 만든 계단으로 산정으로 올랐겠지요. 이런 아찔한 길을 신하와 백성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올라갔지만 왕은 노예들이 떠 받드는 가마에 올라타고 오르내렸을 것이라하니 참...이 대목에서 욕이 나옵니다. 정말...

 

 

문득 계단을 오르다보니 앞쪽에 오전에 갔다 온 피두란갈라 사원이 있는 바위산이 보입니다. 마치 봉긋한 젓무덤같아 보입니다. 저 곳에서 보이던 이곳의 풍경이 얼마나 감동이었던지요. 바라만 봐도 흐뭇합니다. 말벌 소동 때문에 갔던 곳...ㅎㅎ

 

 

 

시기리아 바위산을 흔히 사자바위라고도 부릅니다. 아찔할 만큼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르니 넓고 평평한 정상에 서게됩니다 이곳엔 연회장, 수영장 등 카시아파 궁궐 터가 계단식으로 펼쳐져 보입니다. 바위산 아래에서는 전혀 상상도 못할 그런 모습입니다. 마치 잉카인들이 세운 비밀요새 마추피추를 연상시킵니다.

 

 

오늘 어쩌면 이곳에 오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시기리아 바위산 꼭대기, 미지의 땅에 섰다는 성취감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포기할뻔 하였으므로 더욱 값진 곳인것 같습니다. 언제 이곳엘...다시 오겠냐고요~~

 

 

시기리야 산정상에는 젊은 왕이 불안과 광기 속에 누렸던 터가 당시의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광폭했지만 고독했던 왕의 슬픈 역사는 슬픈 전설로 전해집니다. 내전으로 오랫동안 미지의 땅으로 감춰져 있던 시기리아는 지금은 꽤나 유명해져 구미 유럽의 여러 매체에서 '죽기전에 꼭 가보아야할'이란 수식어가 붙는 명소로 알려져있습니다.

 

 

오전에 말벌소동으로 관광객들이 가버렸고 더욱이 오후엔 단체관광객들이 없으므로 이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그찮았으면 와글와글 하였겠지요. 호젓하고 공허로움이 주는 분위기는 폐허를 느끼기에 더할 수 없이 좋네요.

 

 

 

 

수영장으로 서양인 남자 둘이 뛰어들었다가 안내인에게 제지를 받고 쫓겨납니다. 아니 저곳에서 수영할 생각을 하다니 정말!

아효....암튼 저런 사람 꼭 있습니다~~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철계단은 오를 때보다 더 후덜덜입니다. 그럼에도 마주 보이는 피두란갈라 사원의 바위산이 보이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저 곳을 간 일은 오늘의 보너스였던 것이지요. 말벌이 우리에게 준.(오전에 있었던 말벌 소동...종일 말벌 때문에 울다웃습니다. 새옹지마인게지요~) 그냥 보이는 풍경에 감탄하는 것과 가 보았던 경험으로 감탄하는 것의 엄청난 차이...아시나요?ㅎㅎㅎ

 

 

 

사자발톱을 뒤로하고 시기리아를 떠나며 바위산 중턱에 그려져 있던 아름답고  고혹적인 미녀들을 떠올립니다. 시기리야 바위 절벽 한가운데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신비스러운 미녀들...깍아지른 수직의 절벽 한가운데 누가 어떻게 이런 벽화들을 그렸을까? 누가 이 벽화를 발굴한 것일까?

광기에 사로잡힌 왕은 뜻밖에도 스리랑카에서 가장 볼만한 황홀한 미술 작품을 후세에 남겨 놓았습니다. 광기와 고독이 만든 예술작품인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