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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계속으로/겨울 티벳

티베트 최대규모의 사원이었던 드레풍사원 그리고 세라사원

다보등 2016. 3. 10. 10:30

티베트 최대규모의 사원이었던 드레풍사원 그리고 세라사원

 

 

 

 

 

 

 

달라이라마와 1만 명의 스님이 수행했던 티베트 최대 규모의 사원인 '드레풍'은 산중턱에 지어진 사원으로 '쌀더미'라는 뜻이란다. 쌀포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습의 드레풍사원은 1416년 티베트 불교의 중흥조 쫑카파의 제자인 잠양초체가 창건했다. 잠시 세력이 약해졌던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발원을 담았다. 1464년 승원 건립을 계기로 급성장해 겔룩파 3대사원 가운데 하나로 거듭났다. 이후 포탈라궁이 완공되기 전까지 달라이라마가 주석하며 티베트 종교,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총 면적 20만m2에 한때는 1만 명이 넘는 스님이 거주하는 등 티베트 최대 규모 사원의 면모를 갖추기도 했으나 중국의 점령과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현재는 500여명만이 남았다고.

 

 

 

드레풍 사원의 해발고도는 3,800m에 이른다. 라샤보다 150m 높다. 사원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만만치 않아 숨이 가프다. 가파른 계단을 천천히 한 계단씩 오르며 생각이 든다. 번번히 이런 고산에 오면 느끼는 것이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라는게 어떤건지 조차 모르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풀 하나가 소중하고 물 한 방울, 산소 한줌이 감사하다. 희박한 산소에 가쁜 호흡을 내쉬며 모든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인다.

 

 

 

 

 

 

 

 

태양열로 물을 끓이는 모습은 티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늘이 가깝다보니 당연히 태양도 그 어떤 곳보다 뜨거울 수 밖에 없다. 쉽게 물을 끓여 사용할 수 있다하니 신기방기하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하던 할머니는 사진 찍어도 되냐하니 처음엔 말라고 하시더니 어찌어찌 찍겠다 하더니만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니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ㅎㅎ

 

 

 

 

 

 

 

 

 

 

 

 

 

사원입구 산중턱 바위에 알록달록 그려진 불화가 눈에 띈다. 드레풍 사원을 창건한 잠양 초체와 세라 사원을 창건한 샤캬 예쉐의 모습이란다.

 

 

 

앞치마를 두른듯 보이는 이 옷은 결혼한 여자가 입는 옷이라고 한다. 자매들이랑 함께 참배 온 어린 새댁...

 

 

 

 

 

1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법당 촉첸은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 카메라에 한꺼번에 넣기도 힘들었다. 티베트력으로 6월30일 드레풍 사원에서는 '쉐둔 축제'가 열린다. 여름 한달 동안의 안거가 끝나면 신도들이 요구르트와 음식을 공양 올리는 연회를 개최한 것에서 비롯되었다한다. 축제기간 동안 드레풍 사원에 걸어 놓은 탕카는 높이 42m에 폭 37m에 달한다하니 그 크기가 엄청나다. 매년 수십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축제기간에 맞춰 이곳을 찾는다 하니 탕카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장관일 것이다.

 

 

 

게펠리 산(해발 5,240m)밑에 흰 쌀자루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드레풍' 사원의 의미는 '쌀더미를 쌓아 놓은 모습'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드레풍 사원은 모두 흰색이었다. 전성기 때 승려의 수가 1만 명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약 500여 명 정도가 수행을 하고 있다. 앞쪽은 스님들 숙소로 구성되어 있고 뒤쪽에 건물들이 공부방이다.

 

 

 

 

 

 

 

▼1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법당 촉첸

 

 

 

대법당 촉첸 앞마당에서는 라샤 서쪽 신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지금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나게 규모가 큰 신시가지가 라샤 변두리에 많이 세워지고 있었다. 신시가지는 중국 정부에 의해 한족의 주거지로 조성되었다. 높게 치솟은 아파트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였다. 어느날 한족들이 이 신시가지에 대거 입주를 한다면 라샤는 더 이상 라샤가 아닐 것이다. 너무 슬프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레퐁 사원의 큰 규모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사원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미륵불, 쫑카파, 13대 달라이 라마, 사원의 창시자인 잠양 초체의 존상 들이 모셔져 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상과 존상이 모셔진 포탈라궁 내부를 그대로 옮겨 놓은것 같다. 특히나 티베트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주방도 있는데 당시 사용하던 솥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만큼 거대했다. 거대한 것은 솥뿐만이 아니었다. 그 솥에 불을 지피던 아궁이는 사람이 서서 걸어 들어가도 될만큼 거대했다. 지금도 그 아궁이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 큰 아궁이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쉽~ㅋ

 

 

 

드레풍 사원에는 대규모의 전각들이 많았다.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전각들을 둘러보는데 이곳이 고산이라는 생각을 잊어 버릴 수 있을만큼 흥미로운 일이었다. 사원을 이루는 전각들이 골목골목으로 이어지고 미로처럼 연결되어 자칫 길을 잃을 걱정을 해야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사원이라기보다 마을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골목을 돌아 또 다른 골목과 마주하며 느긋하게 드레풍사원을 즐길 수 있었다.

 

 

 

 

 

드레풍 사원을 나와 세라사원으로 가는 길에 점심을 먹었다. 주차를 하고 식당으로 걸어 가는 도중에 그만 김이 모락모락나는 만두집앞에서 발이 멈추었다. 만두는 보통 만두 크기의 절반정도로 작았다. 야채가 든 만두는 내 입맛에 딱이었다. 한판에 8개가 든 만두 한판을 다 먹었지....어찌나 맛나던지....ㅋㅋㅋ

 

 

 

 

 

나름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세라사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많이 밀린다.12월의 티벳의 가로수는 지금이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푸르렀다. 티벳도 지구 온난화 영향을 받는걸까? 밤이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긴 하지만 낮엔 영상 10도를 넘는 기온인지라 아주 따뜻하다. 가로수의 푸른 잎을 보니 계절이 무색하다.

 

 

 

 

 

라샤 북부에 있는 세라사원은 간덴사원과 드레풍 사원과 함께 라샤 3대사원으로 겔룩파(노랑모자를 쓴 라마승) 라마 승려들의 사원이자 티베트와 몽골 등의 승려들에게 기본 교리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1419년 총카파의 승려였던 참첸 츄 제이에 의해 창견되었다. 1959년 세라 사원에는 5,000명 이상의 승려가 거주하였다. 비록 중국의 침공과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기는 했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이 수리되었다. 2008년에는 550명의 승려들이 살고 있었지만 2008년 티베트 소요 사태 이후로는 소수만이 남아있다.

 

 

 

 

세라사원이 특히 관광객들에게 유명해진것은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티베트 스님들의 교리문답식 수업때문이다. 즉석에서 화두를 정하고 서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무술을 하는 듯한 독특한 행동으로 기선을 제압하면서 질문을 하면 답변자는 논리적 대답으로 받아치는 형식이다. 큰 소리로 답하는 모습이나 손벽을 치며 무술을 하듯 과장된 몸짓의 그  모습은 어찌보면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하여 말은 알아들을 수 없으나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어떤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깨달음을 정진하는 이들의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는 현장으로 그래서 세라사원이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하였을때는 교리문답 수업이 없는 날이라 하니 많이 아쉬웠다.

 

 

 

 

 

세라는 티벳어로 '들장미'를 뜻하며 원래 사원이 세워진 곳이 들장미가 만발하던 곳이어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사원안에는 명나라 황제가 총카파를 초청하였을때 스승을 대신하여 간 샤라예체가 황제에게 설법을 하고 답례로 받은 경전, 탕가, 등의 기념물과 티벳, 중국,인도 등지에서 제작된 만개가 넘는 불상들이 있다. 대웅전에는 무량수불, 석가불, 미륵불이 중생을 맞이하고 있다. 건물마다 달라이 라마가 앉는 의자가 있는데 항상 비워놓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도를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