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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인 오일도의 고향, 영양 입암면 감천마을 본문

우리땅 구석구석~~/경상도

서정시인 오일도의 고향, 영양 입암면 감천마을

다보등 2024. 4. 15. 23:40

청송 사는 후배가 사과꽃이 필 때 오라며 진작에 잡아 놓은 날에 왔건만 사과꽃은 피지 않았다.

작년엔 4월 초 사과꽃이 만개하였었단다. 올해 청송엔 벚꽃도 아직 피기 전이었다.

사과 꽃 대신 역사속 인물을 찾아보는 청송(영양) 여행이 되었다. 하여 첫 번째로 독립운동가 남자현지사 생가지를 들르고, 두번째로 두들마을에서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쓴 여중군자 장계향에 대해 알아보고 역시 두들마을 출신인 소설가 이문열의 문학관과 생가도 돌아보았다.

두들마을을 나오며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 '율'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카페 '율'

 

카페 율에 있는 벚나무

 

 

전국이 벚꽃이 만개하여 꽃놀이에 법석이었으나 4월 초 청송(영양)엔 벚꽃이 아직 피기 전이었다.

카페 율 입구에 있는 벚나무에도 꽃이 피었다면 대단하였겠다며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들마을의 이문열 생가와 광산문학연구소는 차로 이동하면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광산문학연구소는 알 수 없는 화재로 전소가 되어 흔적만 남은 채 빈 터로 남아 있었다.

 

 

 

두들마을에 목련꽃이 만개하여 그 고운 자태를 맘껏 내보이고 있었다.

 

도로변으로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았다

 

 

이동하는 도로변 벚나무는 아직 꽃이 피기 전이지만 지날 때마다 벚나무의 분홍색이 달라지고 있어 2-3일 후에는 만개하겠다. 두들마을을 나와 그 길을 달려  점심은 영양읍 '진영보쌈'에서 칼국수까지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오일도와 감천마을

시인 오일도(1901~1946)는 1931년을 전후하여 문단에 등단 <시문학>, <문예월간> 등에 서정시를 발표하였으며 1935년 시 전문지인 <시원(詩苑)>을 창간했다. 주요 작품에는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노변의 애가> 등이 있다.

「시원」 은 5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 채 1년이 못 되는 기간 동안 총 5호 정도만 발간했지만 「시원」은 1930년대 한국 문단에 커다란 영향을 남겨 한국현대시 발전에 기여하였다.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 황막한 벌판을 희게 덮게 하오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杯)에 입술 터지고

무자비한 바람 때 없이 지내는 잔 칼질에 피투성이 낙엽이

가득 쌓인

대지의 젖가슴 포-트립 빛의 상처를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저어 앙상한 앞 산을 고이 덮어 다오

 

사해(死骸)의 한지 위에

까마귀 운다

금수(錦繡)의 옷과 청춘의 육체를 다 빼앗기고 한위(寒威)에

쭈그리는 검은 얼굴들

 

눈이여! 퍽퍽  내려 다오

태양이 또 그위에 빛나리라

 

가슴 아픈 옛 기억을 묻고 보내고

싸늘한 현실을 잊고

성역(聖域)의 새 아침 흰 정토(淨土)위에 내 영혼 쉬이려는

희원(希願) 이오니

 

 

 

감천마을 입구에 있는 시공원으로 낭만주의 시인이자 민족주의 시인인 오일도 선생의 마음을 담은 시비들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숲과 어우러져 잔잔한 여운을 주는 곳이다.

시인의 글을 음미하며 걷다 보면 그의 정신과 절개를 느낄 수 있다. 

흔히 오일도를 애상의 가을을 노래하는 서정시인, 고독과 비애의 시인이라 하지만 그에게 있어 서정은 시대의 절망과 상실을 표현하는 시선이었다. 나태주 시인은 그의 시에 대해 '억센 항변과 암울한 시대를 한탄하는 시들'이라 평했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암울한 시대를 한탄하는 시들을 썼던 서정시인이자 항일시인 오일도의 고향 감천 마을은 맛있는 물이 샘솟고 감나무가 많아 김천이라 불린다고 안내문에 적혀있다. 낙안 오씨들이 400여 년을 살아온 집성촌이며 서정시인 오일도가 태어난 곳으로 시인의 생가는 감천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마을입구에 있는 연못 건너편에 낙안오씨 종택인 감호헌과 사당인 충효사가 있다.

감호헌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작은 촌이지만 정갈한 느낌의 집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을 가운데 시인의 생가 대문 앞에 태극기를 달아 놓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일도 생가

 

 

 

대문에서 정문을 보면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채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에는 '국문헌(菊雲軒)이라는 당호와 '한묵청록(翰墨淸綠)'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선조 오수눌의 호 '국헌'에 구름 '운'자를 더해 '국운헌'이라 했다.

'한묵청록'은 바른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다. 중문채에 딸린 작은 방은 글방으로 저 글방에서 오일도가 공부했다고 한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8호

 

지금도 후손이 살고 계신데, 문을 활짝 열어 놓아 집안 곳곳을 둘러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혹시 몰라서 조심스럽게 안채 사진을 찍고 돌아 나왔다.

 

 

 

생가 앞 골목을 걸어 주차장이 있는 시공원으로 향했다.

어느 집 마당에 홍매화가 만개하여 발길을 잡는다.

산수유도 한창이고 목련꽃도 한창이다. 영양은 다른 지역보다 꽃들이 살짝 늦은 감이 있다.

 

 

 

몇 년 전 외씨버선길(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모여서 만든 길이다)을 친구들과 걸었었다.

외씨버선길은 조지훈의 시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에서 길이름을 따왔다. 그때 감천마을을 지나갔었다.

오일도 시인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왠지 오일도라는 시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음이 그래서이다.

 

삼천지 연못

 

이렇게 감천마을을 돌아보며 잘 몰랐던 또 한 명의 인물 오일도 시인에 대해 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목적지는 인물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고 하니 이번엔 어떤 곳일지 기대 또한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