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우암 송시열을 추모하는 강한사 (대로사) 본문
효종의 영릉과 가까운 여주 남한강 변에는 우암 송시열을 추모하는 대로사(大老祠)가 있다. 대로사는 정조 9년(1785년)에 사액을 받아 건립된 건물이다. 대로사는 나중에 강한사(江漢祠)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로사가 여기에 세워진 건 정조가 영릉에 행차했다가 송시열이 여주에 머물 때마다 영릉(寧陵, 효종대왕릉)을 바라보며 통곡하고, 후진들에게 북벌의 대의를 설파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정조가 내탕금을 하사하여 지은 사당이다.
내부에는 사당, 강당, 내, 외삼문, 추양재 관리사가 있다.
대개의 서원이나 사당이 남향을 하고 있으나 대로사 사당은 북벌계획을 추진하던 효종대왕릉을 바라보며 서향을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송시열은 이이의 학통을 계승해 일생을 성리학 연구에 몰두한 대학자로서 성균관 문묘에 모셔져 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기 위해 효종을 도와 북벌 계획을 추진했으나 효종이 사망하자 중지되었고 이후 서인의 지도자로서 효종의 배향공신이 되었다.
정조는 송시열이 효종을 도운 것이 대로(大老)의 표본인 강태공과 같다 하여 사당 이름을 대로사라 했다.
그 후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철폐할 때에 송시열을 모신 44개의 서원이 모두 헐렸으나 대로사만 '강한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남게 되었다.
송시열은 효종의 봉림대군 시절 스승이었다. 당시 봉림대군이 왕이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소현세자가 의문 속에 죽자 졸지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자 송시열은 신임 왕에게 기축봉사를 올려 "나라를 다스리는데 한 번 정하면 바꾸지 않아야 할 계책이 있는데 정치를 바르게 해 오랑캐를 물리치는 일입니다. 오랑캐 금나라는 우리와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라고 말해 북벌론에 불을 지폈다. 봉사라는 상소 형식도 그렇고. 정치를 바르게 닦아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주장도 주의(朱熹)의 말에서 따왔으니 그는 철저한 주자 신봉자였다.
'서울문화유산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주 영릉(英陵) 세종대왕릉, 영릉(寧陵) 효종릉 (0) | 2024.05.14 |
---|---|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9호 (0) | 2021.03.29 |
동쪽에 있는 아홉 기의 능 '동구릉東九陵' (0) | 2018.03.12 |
숙종과 경종이 태어 난 '경희궁' (0) | 2017.08.28 |
비운의 역사현장 '중명전' (0) | 2017.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