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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과 장부 / 리보중 지음, 이화승 옮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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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과 장부 / 리보중 지음, 이화승 옮김

다보등 2025. 1. 30. 23:22

불로장생을 꿈꾸며 만들어진 화약
‘조총과 장부’ 책 내용은 어려웠고, 방대한 역사서 같았다.
현재 베이징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리보중은 <조총과 장부>에서 중국이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동아시아의 16세기, 17세기를 다룬다. 초창기 경제 세계화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조총(군사)’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장부(무역)’로 상징된 상인무역의 발전이 어떻게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파헤친다.
한 편으로는 수 세기에 걸쳐 다양한 종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과정에서 인도에서 생겨난 불교가 정작 인도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힌두교가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이나 이슬람이 지구촌 곳곳에 퍼지게 된 과정도 소상하게 적혀있다.

 

 

BC 221년 전국시대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 한 진시황제는 불로장생 선인이 될 수 있는 약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하여 세상 어딘가에 있을 불로장생약을 찾으라는 명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동쪽으로, 서쪽으로, 남쪽으로 떠났다. 이렇듯 중국은 기원전부터 불로장생의 약을 얻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였고 그러다 보니 여러 광물, 약초 할 것 없이 섞어가며 약을 제조하는 기술과 지혜가 늘어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황, 초산칼륨 등을 끓이는 가마솥에서 화약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화약 발명은 이런 과정 중의 부산물인 것이다. 어떤 실험에서 누가 화약을 최초로 발명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명나라의 약학서인 본초강목 등 다양한 문헌에서 화약은 부스럼과 온역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는 약재로 쓰였다. 화약의 또 다른 용도로 도사들이 악귀를 쫓는 등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데 사용했다. 이처럼 화약은 새해와 명절 등에 불꽃놀이처럼 화약을 사용하여 요란한 소리와 연기로 악귀를 내쫓고 복을 비는 의식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약재로도 쓰였다. 이렇게 처음엔 사람을 치료하고 악귀를 내쫓는 데에 쓰이던 화약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전쟁에서 살상용 무기로 변해갔다.
 
「송대에 가장 중요한 변화는 화약을 발명한 것이다. 명대 후기 군사 전문가 조사정(1553~1611)은 “옛날에는 100보 바깥의 적을 제압할 만한 무기는 오직 활과 화살밖에 없었다. 전국 시대에 노전이나 박석이 있었지만 활, 화살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총에 화약을 장전해서 사람을 향해 쏘면 활이나 박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라고 했다」 p130
 
「송대의 관형화기는 돌화총이다. 당시 화약이 매우 원시적인 수준이어서 폭발력과 살상력이 약했고, 활보다 사정거리가 짧았다. 또 조준 장비가 없어서 명중률도 낮았다. 송나라와 금나라가 싸울 당시 금나라 기병은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말이 불을 겁냈기 때문에 ‘펑’ 소리와 함께 불이 번쩍 빛나거나 작은 돌들이 말의 눈이나 몸을 맞히면 말들은 놀라서 날뛰었다. 그 덕분에 기병의 전열을 흩트리는 효과는 거두었지만 실제 살상력은 없었다.」 p133
 
화약이 발명되었다고 곧바로 총이 되고 대포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화약이 기존의 활, 창, 칼 등 냉병기를 압도하는 화기가 되기까지는 수 세기가 걸렸다. 너무나 많은 세월이 있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수많은 전쟁의 희생이 있었다.
 
「최초의 금속 화총은 가공이 쉬운 동으로 만들어졌다. 동의 강도는 대나무보다 훨씬 뛰어나 화총은 살상력이 있는 무기가 되었다. 이 동화총은 명대 초기에 이르러 철화총으로 발전했고, 철의 강도는 동보다 뛰어났기에 더 많은 화약을 장전해서 공격력도 강화되었다.」 p134
 
13세기 초, 중국의 화총은 금속으로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화창과 화포(대포)도 구분할 만큼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중국의 화약은 몽골이 서아시아를 정복하면서 자연스레 서유럽으로 전해졌다. 12~15세기 동쪽에서 서쪽으로, 즉 실크로드를 경유해서 서유럽으로 퍼져나간 것이 첫 번째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16~17세기 서쪽에서 동쪽으로, 즉 서유럽에서 세계 각지로 화기기술이 확산되었다. 화기처럼 중대한 군사무기가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파되고 다시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보편적으로 사용되기까지는 수 세기가 걸렸다.
15세기 이전 중국과 서유럽은 화기 기술이 가장 발전한 곳이었고, 중국이 서유럽보다 앞섰으나 15세기 이후로 양자 간의 우위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15~16세기에 유럽에서는 전쟁이 끊일 사이가 없어 자연스럽게 중국에서 전래된 화기가 발전하였다. 이때 중국에서는 포나 총의 발전은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유는 첫째로 기술이 국가 기밀로 되어 있어서 기술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중국을 통일한 명나라의 주된 적은 북로남왜라고 했던 것처럼 북쪽의 북방 민족과 중국 연안을 드나들던 해적들이었기 때문에 16세기까지 명나라를 위협할 만한 적은 없었다. 비교적 평화가 오래 지속되어 군사 무기 개발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
반면 유럽에 전해진 화약은 유럽대륙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더불어 각국이 저마다 무기 개발과 개량에 전력을 쏟았기 때문에 중국의 화기들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우수한 무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은 유럽에서 전해온 조총을 개량했고 이를 중국에 전했다. 명나라 사람들은 조총의 장점을 알아봤고,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유럽에서 만든 무기들이 상인들에 의해 다양한 화포들이 명나라 시대에 전해졌다. 조총과 불랑기포, 홍이포로 대표되는 선진화기를 중국의 기술과 접목해서 더욱 성능이 뛰어난 무기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화약은 전 세계를 대표하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결국 화약이 불로장생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만들어진 화약이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살상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조총과 장부>를 읽었다.
원자폭탄 발명을 후회한 과학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고 괴로워한 과학자,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발명한 비행기도 전투기로 거듭났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발명품들은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군사 무기로 개발되었다. 발명이란 밝은 면이 있다면 어두운 면도 존재하고 있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창조라는 말이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어떤 무기들이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까. 또 이를 통해 인류는 어떤 문명의 혜택을 받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