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싸구려 행복> 가브리엘 루아 장편소설 본문
가브리엘 루아(1909~1983)
캐나다 마니토바주에서 태어났다. 광활한 초원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1929년 위니펙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 생활을 하면서 연극배우로 무대에 섰다. 1945년 '싸구려 행복'을 발표해 캐나다 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의 페미나상을 받았다. 1977년 교사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쓴 여섯 편의 중/단편 모음집 '내 생애의 아이들'로 캐나다 총독상을 받았다. '끝이 없는 사랑'으로 1979년에 캐나다의 아동 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것이지만 이미 '싸구려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인지도와 입에 붙는 어감을 고려해 기존의 제목을 그대로 채택했다. 그러나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원제의 뜻은 '중고의 secondhand 행복'에 가깝다. 마치 벼룩시장에서 쓸 만한 중고품들을 둘러보다가 어쩌다 기회가 닿아 손에 넣은 것 같은 행복이랄까. 따라서 여기에는 '요행'이라는 의미와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드는 새것을 고른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이 소설의 무대는 경제 위기와 실업의 여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뒤숭숭하기 짝이 없는 캐나다 몬트리올 근교의 소도시 생 탕리다. 이곳에는 공장에 다니거나 변변찮은 직업에 종사하는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 소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열아홉의 아가씨 플로랑틴은 형제 많은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15센트’라는 음식점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애와 결혼을 탈출구로 생각한다.
열 명의 자녀를 낳고 그 중 몇 아이를 잃고 또다시 배가 불러오고 있는 플로랑틴의 엄마 로즈 안나는 오직 가족의 안녕을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무릎이 닳도록 허리가 휘도록. 그녀의 삶 자체가 전쟁터이다. 그럼에도 온 가족이 그저 별 탈 없이 지내는 것이 그녀에게는 행복이다.
“불확실한 것을 잡겠다고 확실한 것을 놓아버리는” 몽상가 아자리우스는 플로랑틴의 무능한 아버지. 가족의 생계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남자인 주제에 세계평화를 걱정하며 흥분하는 몽상가다. 불만스러운 현실을 피해 몽상으로 달아나며 식구들을 더욱 괴로움에 몰아넣는다.
분주한 식당에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하면서도 플로랑틴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올 사랑을 꿈꾸고 기대한다. 그리고 플로랑틴의 기대대로 장 레베스크가 나타난다. 장 레베스크는 불우한 유년의 기억을 가진 야심가다. 그는 출세지향적인 사람으로 신분상승을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공부한다. 그에게 반한 플로랑틴은 임신을 하게 되고, 장 레베스크는 자신의 야심을 위해 주소도 남기지 않고 떠나 버린다.
장의 친구이자 이상주의자인 에마뉘엘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러나 자신의 환경에 안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번뇌하는 가슴을 지닌 이상가다. 그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 한다. 전쟁 터로 떠나기 전 휴가를 나온 에마뉘엘은 플로랑틴을 만나 사랑을 느낀다. 그는 전쟁터로 가기 열흘 전 청혼을 하고 플로랑틴은(임신을 숨기고) 에마뉘엘과 서둘러 결혼식을 올린다.
「어쩌면 헤어져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지만 그에게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지 않은가? 우연과 위험이 많은 세상, 그가 돌아올 날까지 기쁨이 기다려준다고 그 누가 보장하랴? 보기 드문 은총은 예고 없이 스쳐 지나갈지니, 은총이 보일 때 덥석 잡고 봐야 할 일 아닌가? 」
로즈 안나의 장남 외젠이 알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어슬렁대는 것도 지쳤다며 군대는 더없이 좋은 일자리라며 군대에 자원입대 했다고 한다. 평생 무위도식하며 제대로 가족을 먹여 살리지도 못하고 허덕대는 그런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다'며 군복무를 하는 동안은 매달 20달러씩 수당이 나오니 가계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그런 외젠을 잡고 로즈 안나는 꺼이꺼이 울었다.
집세는 자꾸 오르고 결국 5월이면 이사를 나가야 하여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로즈 안나. 그때즈음 열두 번째 아기를 낳을 산달이다. 또 임신을 한 엄마에게 '맙소사 지금도 충분하다.'는 못된 말이 플로랑틴 입에서 뛰어나오고 말았다.
"플로랑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굴러가는 줄 아니? 우리는 그냥 할 수 있는 대로 하면서 사는 거란다."
"아뇨, 엄마. 저는 제가 원하는 인생을 살 거예요. 전 엄마처럼 불행하게 살지 않을 거예요."
여섯 살 다니엘이 백혈병으로 죽은 날, 로즈 안나는 열두 번째 아이를 낳는다.
그녀는 다림질을 하고 풀을 먹여 곱게 갠 하얀 홑이불을 침대에 새로 깐다.
고통은 매일 져야 할 무거운 짐을 그대로 남기고 갔다.
그렇지만 새롭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의지도 그녀에게 남기고 갔다.
로즈 안나의 남편 아자리우스는 " 들어 봐, 7월부터 당신에게 매달 꽤 많은 돈이 지급될 거야. 정부발행 수표가 우리 집으로 도착할 거라고...... 매달 1일에......"
그렇게 장남 외젠에 이어 남편 아자리우스도 군입대를 하여 전쟁 터로 떠났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그리고 저마다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완전한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한없는 절망에 빠져 완전히 손을 놓아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신체적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젊다. 그래서 더 나은 내일을 믿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내일로 넘어가려 한다. 결국 그들은 바라던 그대로의 행복은 얻지 못하지만 저마다 내일로 넘어갈 수 있는 출구를 발견하고 서둘러 그 문으로 빠져 나간다.
<싸구려 행복>은 반세기도 더 된 옛날 이야기로 과거의 맥락에서만 설득력을 발휘하는 소설이 아니다. 꼭 일자리가 급감하고 사내들은 전쟁터로 떠나는 절박한 시대가 아니어도, 평균적인 삶의 질이 월등하게 향상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자기 딴에는 절박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대개 자기가 꼭 원하던 대로 살지는 못하지만 결국 어딘가에 이르게 된다. <싸구려 행복>이 가장 큰 울림을 갖는 부분은 바로 그러한 삶의 보편성에 있다. 젊음의 불확실성은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다 같이 버겁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과 살고 싶은가를 알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 정말로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후회도 하겠지만 '얻어 걸린' 행복이라도 절망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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