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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여행

호서제일가람 속리산 법주사

다보등 2025. 10. 30. 22:44

10월 26일 일요일에 속리산 법주사 일원에서 1박 2일 부부 모임(숙소는 국립말티재자연휴양림)이 있어 약속시간보다 좀 일찍 출발하여 먼저 법주사에 들렀다. 정체 없는 도로를 달려 주차장에 오전 10시 즈음에 도착을 하였는데 벌써 관광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놀랐다. 법주사소형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주차비 : 5,000원) 

대부분의 전국의 사찰이 그렇듯 법주사 입장료는 없다. 

법주사성보박물관

법주사성보박물관은 나중에 돌아 나올 때 관람을 하였다. 속리산은 이래저래 여러 번 왔던 곳이었고 최근 방문이 3-4년 전 늦가을에 친구들과 왔었다. 2025년 이번 10월 말 법주사에는 단풍이 미쳐 들지 않았다. 11월이나 되어야 단풍이 들 것 같다.

호서제일가람 법주사 일주문

 
세조길 시작이 이곳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시작을 한다. 법주사까지는 0.8km로 무장애 탐방로 코스이다. 우리는 오른쪽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세조길을 이용하였다. 

 
법주사는 국보 3건, 보물 15건,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20건, 문화유산자료 2건을 품은 불교문화유산의 보고이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공주 마곡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벽암대사비

법주사 금강문을 바라보는 초입에 조선 헌종 7년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쓴 속리산의 내력이 기록된 '속리산 사실기비각'과 그 옆에 법주사를 크게 중창한 조선 중기 고승 벽암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벽암대사비(碧岩大師碑)'가 있다.

금강문

마침 법주사 경내에는 가을국화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알록달록 국화 그리고 다양한 캐릭터들로 포토존을 만들어 놓은 곳도 많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천뫙문은 보수 중이라 굳게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지는 못했다.

천왕문

법주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천왕문이 있다. 그곳에는 벽암 스님이 임진왜란 이후 불법으로 외세의 침략을 막고자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조(흙)로 6m의 사천왕상을 만들었다. 특히 동방지국천왕은 임진왜란 전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 태종을 악귀처럼 왼발로 밟고 있다.

사천왕상 밑 도요토미 히데요시, 청나라 태종 (자료 사진)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와 주변 산세를 보고 세운 절이라고 한다. 이후 고려와 조선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번성해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대찰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두 차례나 전소하다시피 했고, 이후 30여 동의 건물만이 다시 지어졌다. 텅 빈 듯한 마당은 실제 대찰의 위용이 상실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보 3점과 보물 15점에 지방유형문화재까지 두루 간직한 보물창고다.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보전까지 곧게 이어진 길에는 무려 국보 두 점이 나란히 자리한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1939년에 당시 주지스님이 의뢰해서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김복진이 시멘트로 법주사 미륵불상을 조성을 추진했으나 한때 중단됐다가 1964년에 제작 완공했다. 이후 1986년에 콘크리트 대불을 해체하고 높이 8m 화강암 기단 위에 25m 높이 청동불상을 조성했다. 이후 개금불사를 시작해 2002년 현재의 금동미륵대불로 복원했다. 
 

팔상전 / 국보 제55호

법주사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많은데 그중 우리나라 수많은 탑 가운데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목탑인 국보 제55호 팔상전이 있다. 
팔상전(八相殿)은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인조 때 벽암스님이 주도해 다시 지은 것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탑 중 유일하게 근대 이전에 지어진 5층 목탑이다. ‘팔상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8층 목탑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벽면에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에서 중요한 8가지를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팔상전 내부 팔상탱화, 부처님의 출가 전 상황을 그린 '사문유관상'과 '유성출가상'

팔상전 내부 팔상탱화, 부처님의 수행 과정을 그린 '수하항마상', '설산수도상'

 
팔상전 내부에는 5층 전체를 통과하는 거대한 중심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의 네 면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구분해 각각 이름을 붙인 8폭의 팔상탱화가 각 면에 두 폭씩 있다. 그 앞에는 탱화와 연계된 각기 다른 모습의 부처와 협시불, 나한상들이 있다.
 

팔상전 내부 거대한 중심 기둥

팔상전은 누구나 자유스럽게 내부에 들어가서 4면을 돌아보며 기도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어 들어가서 예를 올렸다. 

팔상전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 국보 제5호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딛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법주사 쌍사자 석등 / 국보


팔상전과 대웅보전 사이에 두 마리의 사자가 연꽃을 받들고 있는 쌍사자 석등(국보)과 사천왕을 사면에 조각한 사천왕 석등(보물)이 일렬로 서있다.

대웅전 앞 사천왕 석등/보물

 

사천왕 석등 / 보물 제15호
법주사 대웅보전/ 보물

 

 560㎡(170평)의 상당히 거대한 대웅보전(보물 제915호)도 흔치 않은 중층(2층) 건물로 마곡사 대웅보전,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불전으로 꼽힌다.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대사가 처음 건립하여 혜공왕 12년(776) 진표율사가 고쳐지었으나 임진왜란 시 불타 버린 후 인조 2년(1624)에 벽암대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보물 제1360호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는 가장 크다고 알려진 법주사 소조비로자나불좌상은 대웅보전에 모신 삼신불로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이 놓여 있다. 

대웅보전 앞 삼계 보도 계단 위 양쪽에 있는 원숭이 석상

법주사 대웅보전 앞의 삼계 보도 계단 위 양쪽에 세워져 있는 원숭이 석상이 있다. 진본은 법주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해설사분 말씀에 의하면 어느 해질녘에 트럭을 몰고 들어와 이 원숭이 석상을 실어 가려는 간 큰 도둑이 있었단다. 마침 지나던 스님께서 보셨으니 망정이지 까닭했으면 도난당할 뻔하였다. 그 이후 수장고에 있다가 2024년 성보박물관이 개관되고 박물관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 만든 원숭이 석상
법주사 대웅보전 앞의 삼계보도 계단 위 양쪽에 세워져 있던 원숭이 석상(조선, 1626년)

 
원숭이 석상 : 부처님이 수행할 때 숲 속의 원숭이들도 따라 좌선하여 깨달음을 얻었는데 "부처님을 따라 흉내만 내어도 천상락을 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잡스러운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기능도 있다.

원통보전, 보물 제916호

 
법주사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을 모셨기 때문에 관음전이라고도 하며, 중생 고뇌를 씻어 주는 권능이 모든 곳에 두루 통한다고 하여 원통 전이라고도 한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인조 25년에 새로 지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 좌상, 보물 제1361호

복장 안에서 나온 불상 조성기에는 효종 6년(1655)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머리에는 호화롭게 꾸민 보관을 쓰고 있는 등 전체적으로 장식성이 돋보이고, 제작시기가 확실하여 조선 후기의 불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원통보전 옆 사방이 트인 전각 안에는 법주사에만 있는 특이한 석조 보살상이 있다.

보은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 , 보물 제1417호

 

얼굴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잘록하고 유연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받침을 받쳐든 양팔은 힘겨운 듯한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옷은 속옷 위에 가사를 걸쳤고, 띠 매듭과 옷자락이 무릎 위에서 투박하게 처리되었다. 향로를 받쳐 든 두 팔의 모습이나 가슴부위의 사실적 표현과 함께 배면 옷의 표현기법은 절묘하여 같은 경내의 쌍사자석등을 제작한 동일한 시기인 720년 전후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은 법주사 석련지 / 국보 제64호

 
신라 성덕왕 19년(720)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이다. 전체적인 조형 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이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 난간 동자주와 유사하다. 
 

고려목종 7년에 조성된 당간지구는 조선 고종 3년(1866) 국가 재정마련을 위한 당백전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수거해 간 철당간을 순종 1910년경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른다. 

당간지주

 

보은 법주사 능인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2호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을 모신 곳으로 능인이란 부처님을 가리키는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여 널리 이로움을 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어졌다. 인조 2년(1624)에 벽암대사가 중창하였다.

 
 
능인전 뒤편에 있는 세존사리탑은 1362년 공민왕이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으로 환도하는 중 법주사에 행차하여 경남 양산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 1기를 법주사로 옮겨와 봉납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전한다.

보은 법주사 세존사리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제16호

 

보은 법주사 석조,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석조는 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석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조로, 쌀 80 가마를 채울 수 있다. 바닥부터 윗부분에 이르기까지 수직의 벽을 이루고 있으며 안팎의 벽체에 아무런 무늬나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지만 윗면의 가장자리는 모를 깎아서 부드러운 느낌을 내고 있다. 아랫부분에 11cm의 구멍이 있어 실제로 물을 담아 두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퉁이 부분의 일부 손상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작품이다.
 

보은 법주사 철솥, 보물 제1413호

철솥은 법주사 공양간 근처에 있던 것으로 큰 사발형상을 하고 있다. 쌀 40 가마를 담을 수 있는 규모로 법주사에 전하여 오는 말로는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 승도가 운집하여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몸체에는 아무런 문양이나 기록이 없어 제조연대, 제작자 및 제조방법 등을 알 수 없지만 주철로 주조된 대형의 주물솥이라는 점에서 기술사적 측면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수정봉에서 굴러떨어졌다는 바위 추래암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 보물제216호

거대한 크기의 추래암 그 옆 6m 높이의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마애여래의좌상(보물 제216호)은 의자 위에 걸터앉아 연꽃잎 위에 발을 올려놓은 보기 드문 모습이다. 넓은 어깨에 비해서 유난히 잘룩한 허리는 비사실적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원당은 특정 개인의 사당과 같은 성격의 건물이다. 보은 법주사 선희궁 원당은 조선 영조 41년(1765)에 후궁인 영빈 이씨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워졌다. 그 뒤 법주사와 관련이 있는 역대 큰스님들의 초상을 모셔둔 '조사각'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비워진 상태이다.  이 건물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사찰 내의 유교적 건축물로 비교적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보존 가치가 높다.

보은 법주사 선희궁 원당/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법주사 금강문 옆에 있는 전통찻집 다향에서 진하게 우려낸 대추차를 마셨다. 걸쭉한 대추차를 마시며 문득 집에도 건대추가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돌아가면 대추차를 끓여야겠다.  

전통찻집 다향
대추차

 

법주사 국보와 보물을 찾아보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법주사 경내에서 볼 수 없는 보물은 사찰 초입에 있는 법주사 성보박물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단풍은 보지 못하였다. 법주사 단풍은 11월에나 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