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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갈대 /펄 벅 본문

공연,영화,서적

살아있는 갈대 /펄 벅

다보등 2026. 1. 13. 17:14

 

 <살아있는 갈대>는 작품의 스케일이나 수준으로 보아 펄 벅의 대표작 <대지> 이후 최대의 야심작이다. 구한말에서 해방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피상적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정서를 깊이 파고들어 간 탁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과 탄탄한 구성, 극적 긴박감, 박력 있는 문체, 사실과 허구의 완벽한 조화 등은 펄 벅의 작가적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살아있는 갈대>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한국의 격동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투쟁한 김씨 가문의 3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김씨 가문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이에 대응한다. 어떤 인물은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어떤 인물은 생존을 위해 순응하며 또 어떤 인물은 전통을 지키려 노력한다.

 

제1부 왕조의 몰락

중국, 일본, 러시아가 서로 한국을 탐내어 풍운이 감돌던 구한말에, 주인공 김일한과 그의 아버지는 왕실의 측근으로서 당시 미묘했던 조정의 갈등에 깊이 관여한다. 대원군 축출,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주변 강국들의 주도권 다툼 속에서 경술국치가 이루어지자, 일한은 그의 아내 순희와 함께 낙향하여 자신의 두 아들 연춘과 연환에게 학문을 가르치며 애국심을 고취한다.

 

제2부 살아있는 갈대의 투쟁

일한의 두 아들 연춘과 연환의 성장기이며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춘은 집을 떠나 지하운동에 가담하다 투옥되어 갖은 고생을 하고, 학교 교사인 연환은 동료 교사이자 독실한 기독교인과 결혼하여 지식인으로서 또 종교인으로서 일제의 박해에 대항한다. 연환은 3.1 운동 때 다른 많은 교도들과 함께 불타는 교회에 갇혀 있는 아내와 딸을 구하려다 같이 죽고 고아가 된 그의 아들 양은 조부 일한의 집에서 자란다.

 

제3부 끝나지 않은 갈등

한편 연춘은 탈옥하여 '살아있는 갈대'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고, 중국과 만주를 종횡무진 누비며 독립운동을 계속한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알게 된 한녀라는 동지와 북경에서 동거 생활을 하지만 그녀가 임신하자 자신의 독립투쟁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하여 남경으로 떠난다. 한녀는 아들 사샤를 데리고 러시아로 가서 갖은 고생 끝에 죽고, 사샤는 고아원에서 자란다. 2차 대전이 시작되자 사샤는 한국으로 오다가 역시 귀국 도중에 있던 아버지 연춘과 우연히 만나 함께 할아버지 집으로 온다. 연춘은 미군이 인천에 상륙할 때 일본 경찰의 손에 죽고, 끝내 북으로 떠나는 사샤와 미국인 병원에서 의사가 되어 서울의 미국인 병원에 남은 연환의 아들 양을 통해, 이제 독립을 맞아 본격적으로 시작될 사상의 갈등과 민족의 분단이 예시된다.


 

외국인 작가의 시선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그려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크고 작은 역사적, 정치적 사건들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를 발췌한 것이며, 펄 벅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알게 된 사실과 중국에서 살 때 보았던 것에 기초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등장인물들을 구상하여 진실되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펄 벅이 한국 사회를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 느낄 수 있었고 한국인의 강인함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제목의 **갈대**는 바람에 휘어지지만 꺽이지 않는 존재를 상징한다.

" 갈대 하나가 꺾였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는 다시 수백 개의 갈대가 무성해질 것 아닙니까? 살아 있는 갈대들 말입니다."

갈대는 꺾여도 뿌리가 살아 있는 한 다시 일어난다. 이는 한국 민족의 끈질긴 생존력과 정신을 의미한다.

 

" 이 애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때는 세상이 많이 나아져 있겠지. 우리 조선도 자유를 되찾을 것이고 말이오, 희망을 가집시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하루인들 살 수 있겠소?"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두려움과 약함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다시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