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간절곶을 걸어 대왕암이 있는 울기등대로 간다~(동해 해파랑길)#3 본문
간절곶을 걸어 대왕암이 있는 울기등대로 간다~~(동해 해파랑길)#3
서생면 신리-간절곶-진하해수욕장-온산공단초입-장생포(처용암)-울기등대-대왕암(19km)
이름하여 동해트레일,
부산 이기대공원에서부터 두만강변 녹둔도까지, 1400km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걸어 보자는 것이다. 해변을 따라 걷게 될 그 길은
관동팔경과 백두대간에 자리 잡은 설악. 금강. 두타산의 명산과 장사, 화진 용화, 원산의 명사십리를 비롯한 천혜의 해수욕장이 즐비하고,
망망대해로 펼쳐지는 태평양이 함께하는 천하제일의 도보답사처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의 발길 닿기를 허용하지 않는 구간이 있어 답사를
완수 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답사에 고무된 많은 사람들이 그 길 걷기를 염원하게 된다면, 어느 날 남북한이 서로 손잡고 그 길도
공동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지 않을까. 결코 헛되지 않을 꿈을 안고 ‘동해 트레일(해파랑 길)’에 오른다
그 머나먼 여정 중 첫 번째 여정이 2월 25일 밤에 부산 해운대에 모여 26일부터 3월 1일까지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실시되었다.
부산 오륙도 이기대공원에서 고성통일전망대까지 688km....
2011년 2월 28일(월)
계속된 비에 출발 시간을 한시간쯤 늦출까도 했지만 다행이 비가 조금 사그라드는 기미가 보여 예정된 시간 7시40분에 숙소를 출발을 했다.
어제 끝낸 월내 고리원자력은 구간은 걸을 수 없는 관계로 원자력발전소를 지나쳐 울산 서생면 신리에서 시작을 한다.우중충한 하늘에 스
산한 바람이 부는 2월의 마지막날이다.
바닷가 마을들은 정월달 용왕님께 한 해의 안녕과 풍어을 비는 별신굿을 동네별로 한다. 바다를 상대로 살아 가는 이들에겐 제일 중요한
일중의 하나이다.
걸어 걸어 발길 닿는 곳이 길이다. 저 멀리 까마득한 저곳을 돌아 서면 간절히 도달하기를 바라던 간절곶이다. 우리나라 육지에서는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일출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평소에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오니 주변 마을들의 관광수입도 짭
짤하다고 한다.예전에 없던 펜션들도 여기저기 들어섰고 울산시에서는 간절곶에 이런저런 시설물들을 만들어 놓아 볼거리도 제공하고 있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새벽이 온다"는 해광횟집~~~ㅎㅎ
편지!!
요즘은 통신수단이 발달해서 편지라는 말을 들어보기도 힘듭니다.옛날에야 편지 아니면 통신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 인사는
늘 "가는데로 편지해라", "올라 가는데로 편지 드리겠습니다" 였고, 떠나는 기차에 손을 흔들며 "꼭 편지해~~~" 소리치곤 했습니다.
나는 이 편지 쓰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젊은 청춘을 해군에서 다 보냈기 때문에 그때는 펜팔이라는걸 많이 했습니다.편지지를 앞에 놓고 편지를 쓰려면 마음이 그렇게도 설레였
나 모릅니다. 어떤말을 어떻게 시작할까? 이런저런 사연들로 몇장의 편지지를 가득 채우고 맨 끝에 하는말은 "답장 기다립니다"였습니다....
지금은 편지라는 이름도 사라지면서 "우편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봄엔 우표붙인 편지를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
내 블로그 친구분께서 방명록에 남겨 주신 글이다.....
편지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집 주소말고는 아는데가 없다.ㅠ.ㅠ
손으로 눌러 쓴 편지란걸 써 본지도 오래고...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은 펜팔이 뭔지나 알까?
MBC 주말 특별기획드라마 "욕망의 불꽃" 간절곶 오픈세트라고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지역사회 일원으로 지역주민들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한다. 드라마가 끝나면 일반에게 공개를 한다고 한다.
멋진 유럽풍의 드라마세트장 앞에서 세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드라마를 안봐서 나는 모르겠는데 혹시 '욕망의 불꽃'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신은경씨가 저곳 어딘가에 보일려나?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애기~~~♪♪ 상냥하고 복스런 울산 큰애기~~~
서울 간 삼돌이가 편지를 보냈는데~ 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도 많지만~~♪♬
울산이라 큰애기 제일 좋데나~~나도야~~삼돌이가 제일 좋더라~~~♬♬
진하해수욕장~~그리고 일출 사진의 명소인 명선도가 높은 파도에 맞서 당당하게 물위에 떠있다.
명선도는 평소 수심이 1.5m~2m정도를 유지하다가 음력으로 2월부터 4월까지 낮 12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바닷물이 갈라지는 장관이 연출된다.
이미 널리 알려진 서해안이나 남해안의 다른 장소들에 비하면 그 길이나 폭이 작은편이긴 하지만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진하해수욕장은 바닷물이 따뜻하고 수심이 앝아 아이들이 어릴때 즐겨 찾곤 했던 해수욕장이다. 회사에서 여름 하계휴양지를 이곳에 마련해 준
탓으로 여름만 되면 직원가족들과 함께 살다시피 하기도 했다. 나중엔 정자 관성해수욕장에 하계휴양소가 이동을 하여 관성해수욕장을 이용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진하해수욕장을 이용을 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여러가지 편의 시설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편리해졌다.
진하해수욕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서생포왜성이 있다. 신정일선생님께서 시간이 되면 들르고 싶어 하셨는데 일정이 수월하지 않아 그대로 지나쳤다.
선조 26년(1598) 임진왜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우리나라 축성기술자들을 강제 동원하여 돌로 쌓은 성이다. 기장 죽도왜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
과 봉화로 서로 연락을 하였다 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이 축성하였으나 후에 우리측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 20여개의 왜성 중 가장 큰 성이면서 보존도 잘되어 있는 성이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회양강하류에 울산 최장의 인도 전용 교량인 "명선교"가 세워져 있다. 서생면 진하리와 온산읍 강양리를 연결하는
명선교는 길이 145m, 높이 17.5m의 교량으로 양쪽에 엘리베이터도 설치되 다리위를 걸으며 바다 해수욕장과 명선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두마리의 학이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르는듯한 모습이다.
울주군 서생면 회야강 하구이다. 명선교를 보며 이런곳에 어째서 이런 어마어마한 다리를 놓았나 싶었다. 그런데 이곳이 울주군의
마리나항으로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 회야강 하구 일대가...어쨌든 명소에 명물이 하나 늘었다....
어느덧 온산공단으로 진입을 했다. 멀리 한창 공사중인 건물들이 아파트 모양을 한 아파트형공장들인 모양이다.
온산공단 초입에서 버스를 타고 장생포 처용암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울산시 남구 황성동 일명 "세죽마을"이다. 가는 대나무가 많아서
불려진 이름이라고...어릴적 세죽마을로 회를 먹으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슨 자그마한 섬에도 갔었던 기억이 나서 친정엄마에게
전화로 물었다. 그랬더니 그곳은 처용암이 아니고 온산면에 있는 '춘도' 혹은 '죽도'라고 불리는 동백섬이 있다한다.주변에 공장들이 수없이
들어서면서 공해 탓인지 동백나무들이 죽어가 출입금지가 된 섬이라고...지금도 그 섬이 남아 있을까? 오래된 기억으로 고목처럼 우거져 있던
동백나무가 기억 저편에 남아 있건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동백도(冬柏島)라 하여 동백이 섬에 가득 찼다고 기록돼 있다.
울산의 대표적인 문화제인 "처용문화제"를 알리는 '처용제의'가 세죽마을 혹은 처용암에서 열린다하는데 공단에 포위된 처용암은 처량하다.
어릴적 기억속에 남아 있는 세죽마을의 풍광은 남아 있지 않고 정유공장의 시뻘건 불기둥만 아득하다.
"서울 밝은 달에/밤들이 노니다가/들어와 자리를 보니/다리가 넷이어라/둘은 내 것이지만/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가 전문)
어느덧 우리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현대공화국이라 불리우는 울산시 동구 방어진으로 들어 왔다. 울산 12경의 하나인 소나무숲이 일품이고
울기등대가 있으며 얼마전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 온 대왕암이 있는 곳이다.울기등대란 이름보다 지금은 '대왕암'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울기등대는 1905년 2월 목재로 만들어진 등간으로 건립되어 방어진항을 유도하는 항로표지로 사용되었다가 1906년 3월 현재의 장소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설치되어 1987년 12월까지 80여년간 사용되었다. 이 기간 일제 강점기 때 울산의 방어진항은 성어기에 매월 6~7척의 어선과 3~4천명의
어부가 드나들 정도로 번성하였고 포경업도 더불어 발달하였다.
구 등탑은 구한말 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어 근대문화재로 가치가 높아 2004년 9월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일본이 1905년 이곳에 등간을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 러.일 전쟁 시 군사목적으로 등대명칭을 울기등간이라고 하였으며
이곳 지명 또한 울기로 부르게 되었다.이 등간은 항해안전이 목적이 아닌 군사작전용으로 보인다.그 이후 동해남부연안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
을 위하여 등대를 설치하였고 주변 해송들이 자라남으로 인하여 구등탑이 보이지 않게 되자 1987년 신등탑을 새로이 건립하였다.
대왕암 가는 길목에 서 있는 하얀 기둥은 고래이빨(?)이다. 사실은 고래 갈비뼈라는데 내가 어릴적엔 어른들이 고래이빨이라고 해서 그런줄 알았다.
예전엔 울기등대 초입에 서 있던 고래이빨인데 대왕암입구로 이전을 했다. 고래가 얼마나 크면 이빨이 저 정도일까 상상도 짐작도 되지 않았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세월만큼이나 낡은 고래이빨(?)이다.....^^;;
등대가 있는 이곳은 송림으로 우거진 산으로 대왕바위산, 혹은 대양산이라고도 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문무대왕비의 넋이 호국용이 되어
문무대왕과 같이 동해를 지키다 대왕암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 하며 그 바위를 대왕바위라고 불렸다.경주 감포 봉길리 앞바다에는 문무
대왕의 능이 있고 이곳 울산 방어진 대왕암은 왕비의 능이라고 한다.
허걱~~ 드디어 여기도 자물쇠가 걸렸다~~
처음 내가 이런류의 자물쇠를 본건 8~9년전 중국 만리장성을 여행할 때 이다. 그곳에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는 멀리 던져 버려 다시는 열 수도
없게 만들어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한다는 중국사람들의 무서운(?) 맹세의 흔적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나라 곳곳
에도 굳게 잠겨진 자물쇠의 모습을 흔히 볼 수가 있다. 주변에 자물쇠 파는 곳도 없으니 일부러 준비를 하고 와서 잠그고 갔을것인데 이들은 훗
날 여기를 찾아 와 맹세를 하던 그날을 회상하며 뿌듯해 할까? 만약 헤어진 커플이 있다면 이곳에 다시는 찾아 오지 않을까?
오늘 우리들은 파도의 진수를 원도 한도 없이 느끼는 날이었다. 파도가 없는 날이었다면 대왕암의 모습이 조금은 반감되었으리라.....
파도가 얼마나 큰지 높은 바위를 사정없이 넘나들곤 했다. 뽀얀 포말을 날리며 으르릉 거리는 파도는 성이 잔뜩난 표호하는 사자같은 소리를
내며 달려 들었다. 우와~~~우와~~~계속적인 감탄사가 사방에서 왁자하니 파도소리만큼이나 시끌하다.
거센 파도 너머 현대중공업의 모습과 거대한 골리앗크레인이 보인다.현대측에서 대왕암과 주변 시설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여고시절 소풍을 자주왔던 울기등대의 주변 모습이 친숙하다. 눈에 익은 바위들.... 바위들.....
울기등대, 망해사,문수사 등 빤한 소풍지라 소풍을 가도 주변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소풍왔다는 즐거움에 마냥 즐거웠던 단발머리 여고생들이
여기저기 송림사이 풀밭에 앉아 김밥을 먹던 모습이 보인다.새삼 들여 다 본 졸업앨범속 소풍 사진에 이곳 송림에서 찍은 모습들이 환하게 웃
고 있다.
높은 파도가 쉴새없이 으르릉대며 붉은 바위들을 사정없이 햘키고 또 햘키는 장관이 그저 넋이 나간듯 하염없는 상념에 빠지게 만든다.
다시금 훌쩍 나이가 들어 찾아 온 소풍지가 너무나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난 그리움이 두껍게 내려 앉는다.
용굴(덩덕구이): 천연동굴로 옛날 청룡 한마리가 여기에 살면서 오가는 뱃길을 어지럽히자 동해 용왕이 노하여 청룡이 굴속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신통력을 부려 큰돌을 넣어 막아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민섬 : 일산만의 동쪽 바다에 있는 불모의 섬을 이르며 민섬을 길게 읽어 '미인섬'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산해수욕장에서 보면 가깝게 보이는 민섬으로 헤엄을 쳐서 갔다오는 경쟁을 하기도 했다는데 갔다가 돌아올때 힘이 빠져 어쩌고(?) 했다는
이야기도 예전에 들었었다.가깝게 보이지만 거리가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그리고 일산해수욕장의 수온은 굉장히 낮아서 물속에 오래 있을 수
가 없었다.
일산해수욕장의 전경이다....
예전엔 그야말로 집도 한채없는 구릉과 백사장뿐이었건만 세월따라 도시화가 되어 버렸다. 쯧쯧쯧 땅이나 사둘걸~~~ㅎㅎㅎ
오후 5시...... 대왕암에서 셋째날 일정이 끝났다. 미포쪽으로 좀 더 걸을까도 했지만 숙소가 기장인 관계로 이동거리를 생각하여 일정을
끝내기로 했다. 오늘은 정말 다시 보기 어려운 멋진 파도의 진수를 만끽한 하루였다. 생각해보니 친정엄마는 방어진 울기등대의 몇년전 모습
을 기억하고 계실까? 요즘의 달라진 대왕암은 모르실것이다. 다음에 울산친정을 들르면 꼭 모시고 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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