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문무왕과 신문왕의 전설이 깃든 감은사지 본문

바람길따라서

문무왕과 신문왕의 전설이 깃든 감은사지

다보등 2011. 4. 1. 11:39

문무왕과 신문왕의 전설이 깃든 감은사지

 

 

국보 제 112호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있는 감포 가는길은......

경주에서 사방 어느 곳을 가든 70리거리란 말이 있다. 포항,울산,영천,감포 어느쪽을 가던 대략 70리라고 한다. 경주에서 동해바다를 가기 위해서

여러 길이 있지만 보문관광단지에서 감포가는 길로 빠져 덕동호수를 끼고 추령고개를 넘어 대종천을 따라가다 보면 동해를 코앞에 둔 도로위에서 

삼층석탑이 보이는 감은사지를 만날 수 있다. 

 

 

 

 

감은사(感恩寺)란 31대 신문왕이 선왕인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 지은 절이다.문무왕이 짓기 시작한 절은 원래 진국사였지만 문무왕이

완공을 못하고 죽자 아들인 신문왕이 선왕의 장례식 날짜에 맞추어 완공을 시키고 절 이름을 감은사로 고쳤다 한다.평소 선왕의 유언에 따라 금

당의 지하에 공간을 만들고 한곳에 용혈이라는 용이 드나드는 구멍을 만들었다고 전하여진다.

 

 

국보 제112호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사진에서 보이는 왼편이 동탑, 오른편이 서탑이다.

 

 

 

감은사터의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국보 제 112호.

2단의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 신라인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직후 쌍탑 가람으로 가는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이러한 호국 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개에 이르는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청동제사리(보물 제366-1호)와 청동제 사각감(보물 제366-2호)이 발견되

었다. 경주에 있는 3층석탑으로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

석탑을 대표할만 하다.

-문화재청-

 

 

 

 

감은사 장대석의 태극문양

태극문양은 유학과 관련있는 것으로 문무왕대에 벌써 유학이 신라에 전래되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감은사지 금당뒤편의 산중턱에 올라서면  감은사지와 두기의 석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감은사지터에 머물다 돌아가곤
하는데 그러면 한눈에 두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을 놓친다. 나뭇잎 우거진 여름철엔 나무에 가려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감은사지는 사계절 다른 느낌을 준다. 3월이라지만 아직은 이른 봄날이라 연녹색의 잔디도 너른 들판의 푸른빛도 없는 어정쩡한 계절이지만

햇살만큼은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곳에서 차로 5분여면 봉길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고 그곳은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는 곳이므로 필히

들러야 할 코스이고 감포방향의 신문왕이 문무왕이 화한 동해용으로 부터 옥대와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얻은 곳으로 알려진 이견대가

있으니 잠시 들러볼만 하다. 물론 싱싱한 회를 곁들여 파도소리를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