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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토함산 동남쪽 기슭 대종천 상류 장항리사지를 찾아서... 본문

바람길따라서

경주 토함산 동남쪽 기슭 대종천 상류 장항리사지를 찾아서...

다보등 2011. 4. 4. 11:00

경주 토함산 동남쪽 기슭 대종천 상류 장항리사지를 찾아서...

국보 제 236호 장항리사지 서 5층석탑

 

 

 

장항리사지는 토함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두 계곡과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석굴암에서 자동차로 약10여분 거리에 있다.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에 있는 3,300평정도의 넓이의 절터로 사적 제45호이다. 절터가 있는 계곡 물은 대종천을 따라 흘러 감은사지를 지나

대왕암 근처에서 동해에 이른다.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데 장항리라는 마을 이름을 따서 장항리사지라 불러 오고 있다. 마을이름으로

인해 장항사가 아니었나 추정하기도 한다고...

 

계곡의 높은 절벽 위에 터를 잡고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기 위한 금당을 마련하였다.금당앞 계곡 사이의 좁은 공간에 두 탑을 배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양식으로 2기의 5층석탑과 불상대좌가 남아 있다.

 

 

 

5층석탑은 동탑과 서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탑은 무너져 계곡에 흩어져 있던 석재를 인양하여 세웠는데 5층중 1층을 제외한 나머지 탑신을 찾지 못하였다. 

 

 

 

 

높이 약 10m의 서탑은 1925년 일제시대때 도굴범들이 탑 속에 들어 있는 사리구를 훔치기 위해 폭약을 장치하여 폭파시켜 흩어져 있던 것을

1932년 복원 수리하였다. 비록 복원된 탑이긴 하지만 서탑은 보물 제 236호 지정되었다.

 

 

 

1층 탑신 4면에는 귀면 문고리가 장식된 두 짝의 문비가 조각되어 있고 그 좌우에는 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 인왕상이 고부조로 아주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중기단은 모두 우주와 2개의 탱주로 되어 있고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1매의 돌로 되어 있다.
추녀는 수평이고 낙수면도 평평하게 엷으며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있다.

 

 

신라석탑은 거의가 삼층으로 경주의 대부분 석탑이 삼층이지만 이 곳 장항리사지에는 동서탑 두기가 모두 흔하지 않은 오층 석탑이다.

경주에는 현곡면 나원리에 있는 나원리오층석탑과 근래에 복원한 경주 남산 늠비봉오층석탑 등 이렇게 세 곳이 있다.

 

 

 

서탑 1층 몸돌에 새겨진 인왕상과 문비 그리고 귀면상 문고리

 

 

동 오층석탑은 도굴 사건 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었다. 일본인 도굴범에 의해 다이나마이트가 폭발하면서 탑재가 계곡 아래로 까지 굴러 떨어졌다.
몸돌과 기단부 없이 대종천에 방치된 지붕돌만 수습하여 쌓아 놓은 것으로 동탑은 탑신이 멸실된 상태지만 남아있는 탑재의 상태로 보아 두탑은 같은

규모와 형태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지금의 모습은 1950년대에 복원된 것으로 일부 석재를 발견하지 못해 어정쩡한 형태로 남아있다. 전반적인

양식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동탑의 1층 몸돌 중 두면의 조각은 계곡 물길에 많이 마모되었지만 나머지 두면의 조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현재 지면에 노출되어 있는 금당의 기단 규모는 동서 15.8m, 남북 12.7m로 초석으로 보아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으로 된 아담한 규모였을

것으로 추측된다.갑석은 없어지고 지대석과 면석만 양쪽 측면과 전면이 남아 있다.

 

 

이 건물터에 있는 석불대좌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하단은 팔각형이며 상단을 연꽃을 조각한 원형으로 되어 있다. 하단의 상대석과 하대석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졌다.팔각형의 하대석 안상속에는 각각 신장(神將)과 신수(神獸)가 번갈아 가며 고부조로 조각되어 있는데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코믹하게 표현된 사자의 앙증맞은 모습은 신라 석조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며 보는 이들의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대좌위엔 도굴범들의 다이나마이트 폭발로 깨어진 불상이 있었는데 1932년 복원하면서 국립경주박물관 정원에 옮겨 일부를

복원하여 세웠다. 불상은 박물관으로 가버리고 장항리사지에는 대좌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두주먹 불끈 쥐고 두손을 번쩍 치켜든 앙증맞은 사자는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야야~~모두 덤벼~~덤벼~~" 하는것 같지 않은가?ㅎㅎ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신장들도 21세기 현재  짐승아이돌에 환호하는 식스팩복근이 뚜렷한걸 보면 그 옛날 신라인들도 식스팩복근을

선호했었나?? 싶기도 하고~~~ㅋㅋ

 

 

 

 

장항리사지는 1금당 쌍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사찰양식을 보이나 반드시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강당과 회랑의 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장항리사지는.....

주변을 정비를 하여 멀리서도 탑이 보이니 이곳이 예전에 절이 있었음을 담박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발굴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 절터 부근 경사면이나 계곡에 어떤 문화재가 매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이렇듯 중장비를 동원하여 절터 부근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

어 놓는 일에 편치않은 사람들도 있음을 관계자들은 알아야 겠다. 힘들고 불편하게 접근했던 절터 가는 옛길이 그리워짐은 괜한 투정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