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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백번 보는 것이 한번 걷는 것보다 못하다? /동해 해파랑길 6월 본문

물길따라 떠나는 여행/688km 동해해파랑길

백번 보는 것이 한번 걷는 것보다 못하다? /동해 해파랑길 6월

다보등 2011. 6. 28. 08:30

백번 보는 것이 한번 걷는 것보다 못하다?/동해 해파랑길 6월

-경북 기성면 사동리에서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까지-

 

 

 

동해 해파랑길이 어느새 여섯번째로 접어들었다. 지난 2월 시작하여 부산을 거쳐 울산광역시를 지나 경주바닷가를 지나며 문무왕의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문무대왕암을 지나고 힘든줄도 모른채 7번국도변의 아름다운 해안절경에 취하여 걷다보니 영덕을 지나고 울진을 지나며 동해바다의

청정한 푸른 바다물빛에 홀려 어느새 강원도가 지척이다. 해파랑길이 여섯번째로 접어 들며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 고포리마을에서 삼척시로

접어 들어 호산리까지의 여정으로 길을 나선다.  하지만 태풍 '메아리' 가 예보된 불길한 날씨에 가겠다고 예약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취소가 되어

차서 출발하던 버스의 뒷자석이 듬성듬성 비어있는 채로 서울을 떠났다. 

그러나 정예멤버들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 날씨에 구예받지 않는 강인함을 보인다.

 

 

 

 

<<망양정 옛터>>

기성면 망양리 망양정, 이제 정자는 사라진 빈터에 망양정 표적으로 세운 비석과 소나무 몇그루가 있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자취가 서린 이곳 평해군 기성면 망양리앞 모래사장 가에 있던 망양정은 조선 세종 시절에 이르러 평해군수 채신보가

오래되어 쓰러져가는 정자를 마을 남쪽 현종산 기슭으로 옮겨 다시 세웠다고한다. 그리고 중종시대에 안렴사 윤희인이 평해군수 김세우에게

명하여 중수하였으나 그 또한 오래되어 쇠락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근남면 산포리로 망양정을 옮겨가면서 이곳에는 표적으로 세운 비석만 남

아있다. -이하 '동해바닷가 길을 걷는다' 신정일-참조

 

 

본래 이곳에 있던 망양정을 두고 조선시대 정국공신이었던 채수는 ‘우리나라를 봉래 방장과 같은 산수 좋은 신선의 고장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

관동이 제일이며 이곳의 누대를 백으로 헤아리지만 망양정이 으뜸.’이라고 극찬하였다. 아마도 망양정이 이름 그대로 바다를 전망하기 좋은 승지

에 위치하였기 때문이리라.  옛말에 “백번 보는 것이 한번 걷는 것보다 못하다(百見不如一步)”이라는 말이 있다. 그 곳을 가보지 않고

가본 사람에게 그 경치를 전해 듣거나 또는 그림을 보고 그곳의 경치를 감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언변이 좋은 사람이

백번 설명해도 한 번 걸어서 가본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먼 곳을 아무나 가볼 수는 없었고 마찬가지로 임금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임금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를

시켜서 그 그림을 그려가지고 오게 하였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숙종 임금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관동팔경을 그림으로 그려 오라고 명한 뒤 그

그림을 두루 감상하였다. 그 뒤 관동의 여덟가지 경치 중 망양정이 가장 아름답다며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친필 편액을 내렸다고

한다. 그 또한 그려온 그림이 좋았던 탓도 있겠지만 탁 트인 망양정 앞으로 펼쳐진 풍광이 그만큼 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정조임금도 시를 읊어

경치를 찬양하였고, 매월당 김시습도 이곳을 찾아 시를 지었다.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도 ‘평해 팔영’의 하나로 망양정을 꼽았다.

선조 시대 송강 정철이 노래한 시문을 통해 망양정의 풍취를 가슴에 담아보자.

‘하늘 끝을 끝내 보지 못해 망양정에 오른 말이,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 인고,

가득 노한 고래 누가 놀래기에 불거니 뿜거니 어지러이 구는 지고.

온 산을 깎아내어 천지사방에 내리는 듯 오월 장천에 백설은 무슨 일인고.’

 

 

 

 

관동팔경중 제일이라는 편액을 숙종임금께 받았다는 망양정에서  임금님들 조차 그림으로만 보았던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지금은 옛터로만

남아 있는곳...하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거센파도가 몰아치고 비가 내리는 날이라 제대로 된 절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동해를 마주하고 벅찬

감동을 느껴보기도 했다. 현재 위치에 있는 망양정도 좋지만 옛터가 그리 멀지 않으니 이왕이면 함께 둘러보는 수고를 해도 좋을듯한 명소이다.

관동팔경은 월송정,총석정,망양정,낙산사,경포대,청간정,삼일포,죽서루 등이다.

 

 

 

 

반건조 오징어 일명 피대기를 파는 상점들이 집집마다 하나씩 도로변에 문을 열고 있지만 사람은 없고 다만 영판 사람인줄 착각한 허수아비(?)가

모형 오징어을 진열해 놓은 상점을 지키고 있었다.

갈색장판을 오려서 오징어처럼 비닐에 매달아 진열해 놓은 모앵새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참신(?)하달까... 암튼 웃음을 자아내었다.

 

 

 

 

 

 

대게를 알리는 선전문구나 대게모형들은 포항을 지나 강구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을 하여 계속적으로 우리를 따라다닌다.

강구,영덕,후포,울진....대게는 어디까지 우리를 따라 오는것일까.....^^;;

 

 

 

 

 

 

 

 

비는 억수같이 계속적으로 내리고 있어 잠시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기도 하지만 내리는 비는 멈출 비가 아닌지라 비를 피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빗속으로 용감하게 내 걸으며 즐기는 방법을 찾는 수 밖에.....^^;;

 

 

 

 

 

 

어느 집 마당 풍경.....

항아리 하나하나에다 올려 놓은 수많은 수석들이 온 마당을 다 차지하고 있다. 수석이 이 집의 쥔인지....사람은 어데로 다녀야할지.....

별 쓸데없는 생각도 하면서....걷는다.....ㅋ

 

 

 

너무나 맑아서 슬프기조차 하였던 바닷물은 누런물로 변하였고 쉴새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오늘은 바닷가와 최근접을 자제하고 주로 도로를 따라 걷는 방법을 택했다. 당연히 그래야하고....

 

 

 

 

 

 

 

 

 

 

 

 

 

 

 

 

 

 

망양정(望洋亭)

소재지: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2

원래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후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58년에 중건하였

으나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에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망양정에서는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왕피천을 볼 수가 있다.

왕피천(王避川)이란 이름은 울진군 서면 왕피리에서 따 온 것이다.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까지 들어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총 연장 68km의 긴 하천이다.

 

 

 

날씨가 험하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불거나 아량곳 없는 걷기의 달인들....

그래서인지 궂은 날씨이건만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대들은 정녕 달인들입니다~~ㅎㅎ^^*

 

 

 

 

 

 

 

 

도로원표는 각시도간 도로의 기점(起點) ·종점(終點) 또는 경과지를 표시하는 것이다.

도로법시행규칙 제16조에 의하면 도로원표의 위치는 도청ㆍ시청ㆍ군청 등 행정의 중심지, 교통의 요충지, 역사적ㆍ문화적 중심지로 정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도로원표가 위치한 곳은 역사적으로도 도시의 중심, 교통의 중심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의 도로원표는 세종로 네거리에 있다.

 

 

 

 

 

 

 

해파랑길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탐방로로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마을길,

해안도로를 잇는 장장 688km의 국내 최장거리 탐방로입니다. <688km를 리수로 환산하면 1720리에 해당 하지만 편의상 1800리로 표기한다>

(사)우리땅 걷기에서는 2011년 장기도보기행으로 정하여 3월부터 12월까지 10회에 나누어 전 구간을 완보할 계획입니다.

"해파랑길"이란 이름은 문화부가 공모를 통해 결정했다고 합니다.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의 '랑'을 합쳐 '해파랑길'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길은 한지역에서 끝나는 길이 아닌 부산광역시,경상남도,경상북도,강원도를 거치는

길이다. 각 지방단체들의 협조와 협력을 통한 지원이 필요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