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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의 현장 서대문 독립문 본문
역사교육의 현장 서대문 독립문
독립문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독립문은 중국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세웠던 영은문을 철거하고 1898년 6월 독립협회에서 자주독립의 상징물로 시민의 기금을 모아 건립되었다. 중앙은 아치형의 홍예문 모양으로 되어 있고,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이화무늬가 방패모양을 한 문양판에 새겨져 있으며 양쪽의 현판은 한 쪽은 한글로 '독립문', 반대쪽에는 한자로 '獨立門'이 새겨져 있다. 주위를 들러싸고 있던 낡고 녹슨 철재 휀스를 걷어내고 112년 만에 독립문을 누구나 가까이에서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사적 제32호)
서대문 독립공원
1992년 8월15일 개원한 독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옥고를 치렀던 애국지사의 자주독립 정신을 후손에게 기억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동안 독립공원은 공원입구에 주택, 상가지역이 무질서하게 자리잡고 있고 주요 시설이 산재되어 있어 시민들의 공원 이용에 불편이 많았다. 2007년 4월 추진한 독립공원 재조성 사업을 통해 2009년 10월 28일 재개장 한 독립공원은 독립문, 역사관, 독립관,순국선열추념탑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함과 동시에 노후하여 시민이용에 불편을 초래했던 공원시설을 정비하여 공원을 방문하는 학생, 관광객, 시민고객들의 편의를 최대화 하였다. 특히 독립문은 그동안 시민들의 접근을 제한하였으나 서대문독립공원 재조성 사업으로 인하여 112년 만에 시민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서대문독립공원 주변에는 독립문,방문자센터,송재 서재필동상, 3.1독립선언기념탑,전통연못,순국선열추념탑,이진아기념도서관,어울림쉼터,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이 있다.
영은문 주초/사적 제33호
독립문 앞에는 옛 영은문의 주초였던 두개의 돌기둥이 서 있다. 이 기둥은 태종 7년(1407)에 명나라 사신을 맞아 들이던 모화관 앞에 있던 일각문 주축돌이다. 처음에는 홍살문으로 영소문이었는데 중종31년(1536)에는 김안로의 발의로 홍살문을 개축하고 청기와를 입힌 후 영조문이란 편액을 걸었다. 그 후 중종34(1539) 명나라 사신 설정총이 영은문이라 쓰고 걸도록 하여 이후로 부터 영은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문은 건양원년(1896) 미국 망명에서 돌아 온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설립하고 자주독립의 결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영은문을 헐어낸 후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자 영은문의 기둥을 받쳤던 주춧돌만 남게 되었다.
송재 서재필 선생 동상
'대한민국은 자주 국가다!' 독립신문을 높이 든 송재 서재필 선생의 동상이다.
독립관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건물인 모화루가 처음 세워진 것은 태종 7년(1407)이고 세종 12년(1430)에는 모화관으로 개칭하고 그 앞에 홍살문을 세웠다. 세종 11년(1429)확장 개축되면서 모화관이라 개칭하였다. 세워질 당시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350m덜어진 영천동이었다. 한말에 이르자 국제관계의 변화로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던 모화관을 서재필이 독립협회을 세우면서 독립관이라 개칭하고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 민권, 자강사상을 고취시키는 독립운동의 기지로써 사용하였다. 그러자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독립운동 탄압의 일환으로써 이 건물을 철거해 버렸다.
서울시는 1989년 독립공원 조성계획에 의해 서대문형무소를 의왕시로 이전하고 일제가 수많은 애국선열들을 참형시켰던 서대문형무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상징성을 애국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역사박물관으로써 가능하게 하는 한편 그 일부 자리에 지상1층, 지하 1층의 구조로 독립관을 복원하였다. 그리하여 지상 1층에는 국권 회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순국선열의 위패 3,000여 위를 봉안하여 고혼을 위령하는 추모의 장으로써 이용토록 했고 지하 1층은 순국선열 후손들이 모여 위훈을 기리고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며 또한 이를 선양하기 위한 학술 및 기념행사장으로써 활용토록 하였다.
순국선열추념탑
순국선열을 추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탑으로 독립운동의 역정이 조각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립문은 1898년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하여 독립협회에서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동남쪽 70미터 지점에 있던 것을 성산대로 건설에 따라 이를 영구히 보존하기 위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본래의 석재를 사용 옛모양 그대로 옮기고 독립문이 있던 옛 자리에는 '독립문지'라고 새겨진 표지판을 매설 그 위치가 길이 보존되도록 하였다.
찾아 가는 길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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