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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교가 섞여 있어 신비스러운 곳 '아야 소피아 박물관' 본문

걸어서 세계속으로/터키

다양한 종교가 섞여 있어 신비스러운 곳 '아야 소피아 박물관'

다보등 2012. 5. 31. 09:00

다양한 종교가 섞여있어 신비스러운 곳 '아야 소피아 박물관'

 

 

 

 

 

 

 

 

아야소피아 성당에 입장하는덴 검색대를 지나야 했다.공항검색대를 통과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형식상의 절차인듯 보였다. 가이드말에 의하면 몇번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검색을 한다고 한다. 또 이곳은 유로입장이다. 20리라.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여아 하는 곳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광객들에 밀리고 밀려서 입장을 해야했으니 이건 어찌보면 전세계에서 몰려 온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편이 훨씬 볼거리가 많다고 봐야할듯도 싶었다. 성당내부는 올려다 보면 목이 아플정도로 높은 천장이지만 은근한 빛이 들어 오는지라 너무나 아름답기 그지없다. 탄성이 절로 나는 모습이다. 가이드는 또 한번 주의사항을 준다. 많은 사람들틈에 혹시라도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신경을 쓴다. 우리도 역시 긴장되긴 마찬가지이다. 일단 아래층에서 간단 설명을 듣고 먼저 이층으로 이동을 한다. 왜 이층으로 먼저 가는지는 올라보니 알 수 있었다. 책자에 소개되어 있는 회칠이 벗겨지며 모습을 들어낸 유명한 모자이크가 이층에 있기 때문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회랑에 수많은 관광객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하였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이 북새통을 뚫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이슬람사원은 여성들이 기도하는 곳이라 한다.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성들을 위해 비탈길로 만들어져 있다. 그 비탈길은 닳고 닳아서 반질반질하다. 2층으로 올라가서 오른편으로 가면 천국의 문이라고 하는 대리석 문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문을 지나면 회칠을 벗겨 내면서 모습을 들어 낸 그 유명한 모자이크를 볼 수가 있다.

 

 

 

 

 

 

드디어 그 유명한 성소피아성당의 모자이크를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 찍느라 혼잡하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지라 찍는데도 그리 만만치 않다. 중앙에 예수가 있고, 오른쪽에는 세례자 요한, 왼편에는 성모 마리아이다. 너무가 훼손이 심해 보기에도 안타까운 모습이다.다행이 훼손이 심하나 눈으로만 불 수 있는게 아니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다만 사진은 찍을 수 있으되 후레쉬는 금지다.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2층 자체의 훼손이 심해 언젠가는 2층은 관광객들에게 공개를 시키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다고 한다. 정확하지 않지만 말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두개의 모자이크를 더 볼 수가 있다.

 

 

 

 

 

갤러리끝에는 창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두개의 모자이크 성화가 있는데 많이 어두워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다. 창을 가운데 두고 오른편에 있는 모자이크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양옆으로 콤네노스 황제와 부인 이레인, 아들인 알렉시우스라 한다.

 

 

왼편에 있는 모자이크는 앉아 있는 예수를 중심으로 여황제 조에와 그녀의 세번째 남편인 콘스탄티누스 9세의 모습이다. 비잔틴시대에 만들어진 모자이크는 손상된 부분도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신성한 지혜'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아야소피아는 360년 콘스탄티누스 2세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원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후 대폭동 등이 일어나 완전히 불에 타 버리게 되는데 532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다시 아야소피아를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성당으로 만들기 위해 황제가 직접 나서 공을 들여 건축하였다고 한다.그는 가장 크고 웅장하면서 화려하고 위엄이 깃든 성당을 원했다. 거기다 새로운 형태까지 곁들여서. 지금 이스탄불에 서 있는 아야 소피아 대성당이라고 한다. 532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537년 12월에 성당은 완공되었다.그후 762년까지는 성당으로써 역할을 충분히 하게된다.그 후 서로마제국과 카톨릭이 분리되면서 아야소피아는 그리스정교회의 총본산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명칭도 그리스어인 '하기아 소피아'로 불리게 되었다.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미흐랍> 정면이 아니라 약간 옆으로 비켜있는데

이는 성당이었던 곳을 이슬람사원으로 개조하게 되어서 약간 틀어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터키에 의해 함락되고 정복자 메흐메드 2세가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라고 명령한다. 아야 소피아 대성당 안에 이슬람 문양과 코란의 구절이 채워진 것은 그 때문이다. 이슬람 종교적 특성인 생명의 모사를 엄격인 금지하는 율법에 따라 성화는 회 반죽을 칠해 가렸고 성당 밖에 4개의 미나레가 세워지면서 이후 성당은 481년 동안 모스크의 역할을 했다. 성당의 운명이 다시 바뀌게 된 것은 터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타튀르크 때문이다. 1847년 스위스의 건축가 풋사티가 아야소피아의 보수를 맡아 일하던 중 회칠 속에 가려져 있었던 모자이크를 발견하게 된다. 아타튀르크가 1930년 이곳을 박물관으로 지정한다. 그럼으로 인하여 회 반죽은 벗겨지고, 성화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지워지고 벗겨지고 퇴색한 모습이 되었지만.

 

 

 

미흐랍 위쪽으로 천정에 있는 프레스코화의 가운데는 성모상이 있고 오른편으로 미카엘 천사가 있다. 미흐랍이 있는가 하면 설교대인 민바르가 있으며 이 계단위에는 이슬람 종교 지도자인 이맘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이슬람의 다양한 종교가 섞여 있어 더욱 매력적인 곳이 이곳이라 하겠다.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전쟁의 중심에는 종교가 함께 있었으니 사랑과 평화를 지양하는 종교의 이중성인것도 같다.

 

 

 

 

 

 

 

  

 

 

 

긴줄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촉촉한 기둥이라 하여 소원을 비는 기둥이다. 기둥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엄지손가락을 넣고 제대로 한바퀴를 돌려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어설프게 손가락을 넣으면 한바퀴를 돌릴수가 없다. 엄지손가락을 넣고 제대로 한바퀴를 돌리려면 최대한 손가락 네개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한 후 돌려야 한다.너도나도 엄지손가락을 넣고 한바퀴를 돌리느라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소원을 비는데는 국적도 필요없다. 암튼 나도 제대로 돌렸는데 그 소원은 언제쯤에나 이루어질려는지...이루어지기나 할런지....ㅎㅎ

 

 

마지막으로 사원을 나오며 긴 회랑을 거쳐 나오는데 우리는 나올때 이곳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본당으로 들어가는 중앙통로라 한다. 이 곳은 황제전용문으로 문위에 예수를 중심으로 성모마리아와 천사 가브리엘, 그리고 비잔틴의 황제인 레오 6세가 등장하는 모자이크화를 볼 수가 있다.

 

 

 

 

 

 

박물관 밖에는 무슨 행사를 하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뭔일인가 가이드가 알아보더니 사이클대회가 시작할 참이라 한다.

이왕이면 출발하는 것을 보면 좋겠지만 금방 시작할 것 같지도 않고 가차없이 출발하는 가이드를 따라 다음 행선지인 식당으로 이동을 한다.

 

 

 

이곳은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가 마주 보이는 쉼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덩달아 우리도 이곳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냈다. 돌아서면 아야소피아가 보이고 뒤돌아서면 블루모스크가 보여 정말 신나고 좋았던 곳이다. 보름후 다시 이곳을 찾아 터키맥주 EFFS와 터키아이스크림 MADO를 먹으며 사위가 어둑어둑해질때까지 놀았다. 그때 다른이들은 모두 호텔로 들어가고 보름동안 죽이 맞은 우리들 몇명만이 돌아가지 않고 남아 터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정말 신나고 흥분되던 날이었다.10달라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10달라의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날 해가 기웃기웃 저물어 사원에 불이 켜질때의 그 야릇하고 흥분되던 순간들. 대열에서 일탈을 하여 호붓하게 가졌던 시간들...그래서 더욱 설레였던 소중한 추억이 된 이스탄불에서 마지막날 찍은 야경.

 

<아야소피아 사원의 야경>

 

 

 

 

 비잔틴 시대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이곳 이스탄불로 옮긴 후 이스탄불은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리며 비잔틴의 수도 역할을 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비잔틴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십자군에게 점령되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이스탄불은 이슬람 문화의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이슬람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스탄불은 로마와 비잔틴, 오스만 제국을 거치며 수도 역할을 햇던 만큼 많은 유적이 남아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현재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