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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산 마틴-아스트로가 24km/산티아고순례길 23일차 본문

해외 트레킹/산티아고순례길 800km

산 마틴-아스트로가 24km/산티아고순례길 23일차

다보등 2020. 12. 9. 23:18

2018년 6월 3일

거의 언제나 출발시간은 6시이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을 걸어 아스트로가로 가는 길.

아카시아 우거진 꽃길과 도로가 나란히 함께 한다. 해가 뜨는 것 같은데 구름이 두터워 붉은 빛만 비친다.

한시간 남짓 걸어 문을 연 Bar에 들렀다. 오늘은 커피 대신 초코라떼를 주문하여 초코는 넣지 않고(일회용 코코아 가루를 따로 준다) 따끈한 우유만 마셨다. 커다란 크로와상을 렌지에 데워주어 부드럽고 맛있다.

바에서 나오니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일명 '왕의다리라고 불러주고 싶다'는 멋진 다리가 나타났다. 모두들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여기가 어딘가? 이 마을은 어제 무슨 행사를 했는지 좁은 골목 가득 문닫은(아마도 늦은밤까지 장사를 하고) 포장마차들이 가득하다.

요며칠 평지만 걷다가 오르막을 만났다. 은근한 오르막이라 그닥 힘들진 않으나 오늘은 배낭이 어깨를 눌러 아프다.

벌레에 물린(이때는 배드버그인줄도 모르는 상태) 여기저기도 괴롭다.ㅠ

물린 자리가 퉁퉁 부었다. 목뒷덜미가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심하게 물렸으니...(말로만 듣던 배드버그가 엄청시리 독한 놈이란걸 여기저기 경험자들의 글에서 보긴 했으나 어찌 이리 괴로울 줄이야)

아스트로가에 도착하면 어디 병원에라도 가야할 것 같다.

 

"더워! 육삼냉면 먹고싶어."  "정욱아 짬뽕이 먹고 싶다." 라고 한글로 적힌 낙서를 보았다. 그늘 한점없는 뜨거운 길을 걷고, 가려움을 참으며 걷다보니 냉면, 짬뽕, 한글 낙서에 울컥한다.ㅠ

나의 개인적인 괴로움을 일행들이 알턱이 없다. (오늘따라)어깨를 누르는 배낭을 내려놓고 쉬며쉬며 걷다보니 일행들은 저멀리 사라지고 혼자 걷는 길이다보니 더욱 서러웠다.

 

덥고 가렵고...힘겨운 걸음으로 더위를 이겨가며 아스트로가에 오후 1시무렵 도착을 하였다.

알베르게 도착하여 침대배정을 받고, 어디 병원이나 약국이라도 가야할 것 같아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레로에게 물린 자리를 보여주며 물어봤더니, 웬걸!!

심각한 얼굴로 어제 어디서 잤고 어디서 물렸는지를 물었다. 이때서야 배드버그란 걸 알았다. ㅠ

(물린 곳의 이틀전 레온의 알베르게 이름을 알려주고, 어제 묵은 비에라의 알베르게도 알려주었다)

나랑 동현언니의 배낭이며 소지품 일체를 건조기에 넣고 30분 정도 열풍 소독을 해야한다고 했다. 입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40도의 수온으로 세탁을 해야했다.

짐속에 배드버그가 따라와서 다른 곳에 옮긴다는 것이다. 물리긴 레온에서 물렸는데... 어제 비에라의 숙소는 어쩌나 싶은 마음에 우울했다.

건조기와 세탁기가 돌아가는동안 호스피탈레로는 동현언니랑 나를 데리고 주방으로 갔다.

뜻밖에도 물린 자리는 식초를 바르라고 알려주었다. (오래전 서울로 이사오기전 부산 해운대에 살던 시절, 그때 해운대에서 바다수영을 즐겨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해파리에 쏘이면 해변에 있던 동료들이 식초를 부어 중화시키곤 하였는데...그런 이치인가?) 상점에서 식초를 구입하여 간지러울 때마다 시도때도 없이 식초를 발랐다. 언니랑 나는 시큼한 식초냄새를 풍기며 다녀야 했다.ㅠ

가려움증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정말 오래오래...

 

오르비오강에 세워진 일명 왕의 다리라고 불리운다는...오르비고 다리

 

 

 

힘겹게 걷다가 길위의 산타(?)를 만났다. 알아서 먹고 돈을 내는 무인 가게이다. 납작복숭아가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2개는 먹은 것 같다. 바나나는 배낭에 하나 챙기고 수박을 한 쪽 먹었다. 내가 낸 돈으로 내일 순례자에게 또 이런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산또 또리비오 십자가

또리비오의 십자가를 지나면 오늘의 목적지인 아스트로가가 보인다.

5세기 아스또르가 주교였던 성 또리비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아스또리가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아스또르가로 향하는 높은 언덕에 앉아 샌들의 먼지를 털면서 "아스또르가 소유라면 먼지도 가져가지 않겠다!" 고 말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주교가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 아스또르가 사람들이 이 언덕에 그를 기리는 십자가를 세웠단다.

십자가가 있는 이 언덕에서는 아스또르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리비오 십자가를 지나 언덕을 내려오면 마을 초입에 목마른 순례자가 물을 마시는 동상을 만난다.

옆에 있는 펌프를 누르면 조롱박에서 물이 나온다. 목마른 순례자동상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안도감이 차올랐다.

그의 목마름과 힘듬을 나도 느끼기 때문이다.

 

철길에 건널목이 있으면 편하겠구만...철위에 설치된 지그재그 육교를 건너야 한다.

그 기둥에 한글로 써놓은 낙서를 보며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나도 냉면 먹고 싶다. 간절히...ㅋ

 

에스빠냐 광장에 있는 바로크양식의 시청
산타 마리아 대성당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궁(Palacio Episcopal)

 

주교궁-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환성적인 현대 건축물이다. 원래 주교의 거처로 건축되었으나 오늘날엔 까미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알베르게에서 보이는 멋진 풍경.

 

배드버그퇴치 방법으로 배낭이며 모든 소지품은 싹다 건조기에 넣고 돌려야 했다

옷 종류는  40의 수온으로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레온의 알베르게는 사설이었고 시설도 훌륭하였더랬다. 레온시내를 실컷 구경하고 늦게 들어와서 그냥 잤더니 이런 사단이 났다.

사실은 배드버그가 걱정이 되어 한국에서 준비해 간 비오킬이 있다. 그동안은 갖고 간 해충퇴치약인 '비오킬'을 침대주변에 항상 뿌렸었는데 하필 이 날만 그냥 잔 것이다. 비오킬 뿌리는 걸 잊은거지뭐...ㅠ

하필 레온의 그 알베르게에 배드버그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