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6월, 김제 모악산 마실길-귀신사 본문
이번엔 그동안 꾸준히 걷기를 하던 경기둘레길을 잠시 벗어나 모악산 마실길을 걸었다. 오랜 길동무 중 전주에 사시는 기철호,유숙자씨 부부가 김제 모악산 자락에 있는 농막으로 우리를 초대하였다. 하루 머물며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오래 만나지도 못했으니 이 참에 얼굴 좀 보자는 취지의 초대의 자리였다. 하여 1박 2일로 김제 모악산으로 갔다.
우선 농막으로 가기 전에 이왕지사 김제 쪽으로 왔으니 모악산 마실길을 걷기로 하였다. 서울서 출발해 온 차량 석 대를 금산사 입구 모악산 관광안내소에 주차를 하였다(주차비 없음). 모악산 관광안내소 왼편으로 모악산 마실길이 시작한다. 주로 금산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많이 걷지만 우리는 금산사가 아닌 귀신사 코스를 택했다.
모악산 관광안내소- 백운동마을 - 귀신사- 싸리재 - 금평저수지-모악산관광안내소로 돌아오는 원점회귀로 13km이다.
5시간쯤 걸리는 코스긴 하지만 우리는 6시간을 걸었나보다. 결코 만만한 코스는 아니었다.
이 길이 처음 걷는 길이 아니건만 어째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귀신사도 절 이름은 기억을 하고 절이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귀신사를 들른다 하여 내심 좋았다.
모악산 마실길 시작하자마자 첫 번째 쉼터인 닭지붕까지 700m 구간은 숨이 턱에 차도록 심한 오르막길이다.
땀깨나 흘리며 헉헉 올랐다.
그 보상인지 이 구간을 지나면 푸른 숲이 터널을 이루는 편한 길이 이어진다.
초여름의 푸르름은 아름답다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다.
탁 트인 전망대에서 모악산 자락에 푹 싸인 천년고찰 금산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멋진 풍광을 볼 수가 있었다.
모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금산사는 호남 미륵신앙의 도량이다. 드넓은 경내에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을 비롯하여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거찰이다.
후백제를 건립한 견훤이 그의 아들 신검으로 인해 말년에 유폐를 당한 곳이 바로 이곳 금산사라고 한다.
모악산과 금산사라는 이름은 큰 산을 뜻하는 고어 엄뫼, 큼뫼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의 뫼라는 뜻의 모악으로, 또 큼은 금으로, 뫼는 산으로 적게 되었다는 것이다. 온통 평야인 이 지역에서 옛날부터 이 산의 존재가 외경의 대상이 되어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시인 고은은 "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라고 노래했다.
모악산 마실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순례길도 있고 금산사길도 있었다.
여러 스토리가 있는 길들이 이리저리 겹쳐진 길이기도 한다.
길가엔 산딸기가 지천이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산딸기를 한줌씩 따서 먹기도 하면서.
귀신사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일주문도 없이 그저 계단을 올라서면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이다.
돌아올 귀歸, 믿을 信자를 쓰는 귀신사歸信寺는 영원을 돌아 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오는 자리이다.
흔히 생각하는 그 귀신이 아니다. 자칫 귀신이란 발음으로 인해 오해가 있기도 하다.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보물 제 826호)은 흙으로 빚여 만든 소조 불상인 소조 비로자나 삼불 좌상(보물 제1516호)이 모셔져 있는 건물이다. 본래 이 건물은 2층으로 지어졌었으나 조선 순조 23년(1823)에 1층으로 낮추어 다시 지어졌다.
대적광전 뒤편으로 높은 언덕 위에 귀신사 석탑이 있다.
남서쪽 솔개봉을 향하여 엎드려 있는 이 사자상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다. 사자의 등 위에는 남자의 성기처럼 생긴 마디진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위에 또 하나의 작은 돌기둥을 얹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 사자상은 이곳 지형의 나쁜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귀신사 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꼭대기 부위가 크게 손상되었다. 고려시대 세운 탑이지만 전체적인 조각기법으로 보아 백제시대의 양식을 크게 반영하고 있다.
귀신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며 창건 당시에는 국신사(國信寺)라 하였으며 국신사(國神寺)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신라 말 도윤이 중창한 뒤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중기 사상가 정여립이 모악산 줄기 제비산에서 혁명을 꿈꿨고, 조선 후기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과 증산교를 창시한 강증산 역시 모악산을 무대로 활동했다. 어지러운 세상, 미륵의 힘을 빌려 세상을 구원하려 했던 이들이다.
금평저수지는 1961년 축조되었으며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금평저수지 옆에는 대순진리회 청소년수련원이 자리하고 있다.
금산교회(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 선교사 테이트가 처음 세웠으며 1908년 새 건물을 마련하여 지금의 이 자리로 옮겨왔다. 한옥으로 지어진 교회 건물은 단면이 <ㄱ>자형이다. 이러한 건축구조는 남녀 신도의 자리를 분리하기 위한 것으로 남녀유별이라는 전통사회의 습관을 해치지 않으려는 방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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