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실과 투쟁을 기록한 '케테 콜비츠' 본문
내가 사랑한 화가들/ 정우철 지음
<내가 사랑한 화가들>은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알폰스 무하, 프리다 칼로, 구스타프 클림트, 툴루즈 로트레크, 케테 콜비츠, 폴 고갱, 베르나르 뷔페, 에곤 실레 등 열한 명의 화가들을 소개한다. 작품 분석이 주인 미술 해석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엮어 놓았다. 온 세상이 거장이라 부르는 화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로 이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그래서 그림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책이었다.
특히 케테 콜비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 기뻤다. 독일 베를린에는 다양한 기념조형물이 설치되어 있고, 특히 과거의 영광뿐 아니라 치욕과 비극도 기억하고 경고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으로 베를린에서 역사 기억하기로 조성된 기념조형물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19세기 프로이센 왕의 경비소였던 그리스풍의 건물을 활용하여 독일 재통일 이후 '전쟁과 폭정의 희생자들을 위한 독일의 중앙 추모소'로 노이에 바헤를 조성하였고, '노이에 바헤' 내부 공간에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단 하나의 작품만을 두었다. 그 조각가가 케테 콜비츠이다. 마치 피에타를 연상시키는 조각으로 자식을 잃은 세상 모든 부모에게 위로와 추모를 전하는 공간이다. 예전에 독일 여행 중 노이에 바헤에서 낯설고 생소한 조각가 케테 콜비츠를 알게(이름만)된 곳이었다. 그 공간에 왜 케테 콜비츠의 작품이 놓였는 지를 '내가 사랑한 화가들'를 읽으면서 그 이유를 충분히 알게 되었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실과 투쟁을 기록한 케테 콜비츠(1867-1945)
케테 콜비츠는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 조각가, 판화가, 참여미술의 선구자격인 인물로 노동자, 가난한 이들, 그리고 전쟁피해자를 소재로 삼아 동시대를 고발하고 직시하는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의사로서 평생 병든 사람들을 무료 진료하였던 남편 카를 콜비츠와 뜻을 같이하여, 가난한 노동자와 함께 생활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콜비츠에게 평생의 상처를 안겨준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원해 전쟁터로 향했는데 그들 중에는 콜비츠의 둘째 아들 페터도 있었다. 이후 아들의 전사통지서가 집으로 배달된다. 페터가 전쟁터로 간 지 20여 일 만이자 그의 나이 열여덟 살 때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며 반전 포스터를 제작하고, 전쟁의 광기와 참혹함을 알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전쟁은 이제 그만>, 1924
모두가 알다시피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비참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콜비츠가 남긴 이 작품에 새긴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외침은 부탁도 호소도 아니었다. 세상을 향한 명령이었다.
전쟁은 그녀에게서 아들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에 만연해 있던 모든 부조리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평화를 추구해야 할 성직자들이 전쟁을 독려했으며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보여줘야 할 학교는 전쟁의 필요성을 가르쳤다. 그녀는 이러한 사회적 폭력에 맞서 작품을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인간 개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적, 소모적인 전쟁이 더 이상 발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이번에도 수많은 청년들이 징집되었다. 콜비츠의 손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손자는 페터의 이름을 물려받았는데,
이로 인해 콜비츠는 1942년 9월 22일 페터의 이름이 적힌 두 번째 전사 통지서를 받게 된다. 노령의 화가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슬픔이었다.
작품 속의 어머니는 양팔을 마치 날개처럼 벌려 자신의 옷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표정에서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결의에 찬 마음이 느껴지죠. 자신과 아이들을 공격하고 억압하는 대상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무리 바깥을 궁금해해도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바깥을 보여줄 수 없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안전해지는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요./206
전쟁 중에 미처 옮기지 못하고 베를린 집에 남겨두었던 수많은 작품이 불에 타 사라졌다. 그녀의 작품 상당수를 지금 우리가 감상할 수 없는 이유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 평생 예술로 목소리를 낸 콜비츠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보지 못하고 전쟁이 끝나기 2주 전인 1945년 4월 22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만약 그녀가 살아 있어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그밖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녀의 작품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의지를 다질 수 있을까?
"나는 이 시대에 보호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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