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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일월면 주실마을 조지훈 고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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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일월면 주실마을 조지훈 고향

다보등 2024. 4. 25. 10:31

4월 6-7일 청송 온지 이틀 째이다.
이곳 청송, 영양에는 막 벚꽃이 피기 시작을 하였다. 어제 토요일 보다 오늘 아침은 벚꽃이 더 많이 피었다.
다른 지방보다는 꽃이 늦게 피긴 하나 계절은 봄인지라 시시각각으로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일요일인 오늘은 청송에서 영양, 일원 방면으로 한적한 31번 도로를 달려 시인 조지훈의 고향 주실마을로 가는 길이다.
주실마을은 2018년 외씨버선길을 걸을 때 들렸던 곳이기도 하다.
 

 

 
 
일월면 주실마을은 시인 조지훈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마을이 들어앉은 형국이 배산임수 문전옥답의 전형이다. 마을 뒤에 산이 있고 마을 앞에 논이 펼쳐졌으며, 논 앞에 개울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마을로 드나들 수 없다. 주실숲 옆에 있는 다리가 마을로 드나드는 다리 중 하나다.
 

 
 
마을 대부분의 집이 한옥 기와집이다. 마을을 한 눈에 보려면 마을 앞 개울가 어디쯤에서 바라봐야 한다.
물결처럼 이어지는 한옥의 선들, 산줄기가 어우러진 풍경이 마음을 얼마나 푸근하게 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이 태어난 호은종택과 옥천종택, 월록서당 등 오래된 한옥도 남아있다.
우리는 먼저 지훈문학관을 보고 마을 위 산기슭에 있는 공원에서 시비와 조형물을 보았다.
 

지훈문학관

 
 
멋설(說)
-1941년 22세 되던 해에 오대산 월정사 불교외전 강사로 지낼 때 써두었던 멋 說, 삼도주(三道酒)를 1958년 <신태양>에 발표하여 비로소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가족은 아랑곳없이 당신 혼자만 짧고 굵고 멋들어지게 마흔여덟해를 사시다 멋만 남겨놓고 가버리신 야속한 당신은 이 글을 쓰실 당시 겨우 22세에 이미 멋쟁이가 되어 계셨습니다.
 
당신이 가신 5월이 다시 돌아오는데, 당신이 평생 사신 햇수보다 아홉 해나 더 먹은 당신의 자식은 당신이 멋을 설(說)하던 나이의 곱절에다 십 년을 더 보탠 나이가 되었어도 당신의 그 멋의 근처도 못 가고 있음이 부끄럽습니다.
-장남 광렬의 <승무의 긴 여운 지조의 큰 울림> 中에서
 

 
 
한 바리 밥과 산나물로 족히 목숨을 이으고 일상(一床)의 서(書)가 있으니 이로써 살이 있는 복이 족하지 않는가.
시를 읊을 동쪽 두던이 있고, 발을 씻을 맑은 물이 있으니 어지러운 세상에 허물할 이가 누군가.
어째 세상이 괴롭다 하느뇨. 이는 구태여 복을 찾으려 함이니, 슬프디, 복을 찾는 사람이여. 행복이란 찾을수록 멀어 가는 것이 아닌가.
 
안분지족(安分知足)이 곧 행복이라, 초의야인(草衣野人)이 어찌 공명을 바라며 포류(蒲柳)의 질(質)이 어찌 장수(長壽)를 바라겠는가. 사는 대로 사는 것이 나의 삶이니 여곽지장이라 과욕을 길러 고성의 도를 배우나니 내 어찌 고성의 도를 알리오. 다만 알려고 함으로써 멋을 삼노라. - '멋 설說' 중에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詩
조지훈 시인 대표작인 '승무'다
승무로 詩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가 시인의 나이 19세였다고 한다.
(승무 : 불교의식에서 흰 장삼에 붉은 가사를 어깨에 매고 흰 고깔을 쓰고 추는 민속 춤)
 

 

 
 
마을 위 산기슭에 지훈 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지훈 본가 방우산장

 
방우산장은 조지훈이 생전에 방우산장기(放牛山莊記)라는 수필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집에 붙인 이름이다.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한 한 마리 소가 있는 자리, 곧 그의 영혼의 새가 깃들이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지 모두 방우산장이라 하였기에 어린 시절 그의 시혼이 깃든 이곳에 그 이름을 붙여 현판을 달았다.
 

 

조지훈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