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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특별전<한글편지, 문안 아뢰옵고> 본문

공연,영화,서적

서울역사박물관 기증유물특별전<한글편지, 문안 아뢰옵고>

다보등 2026. 1. 26. 17:47

성곡미술관을 나와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왔다. 성곡미술관에서 광화문이나 덕수궁을 방향으로 잡고 걸어 나오면 자연스럽게 동선이 이어진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정말 오랜 만인 것 같다. 지난번 성곡미술관을 들렀다가 그냥 지나쳤으므로 오늘은 들여다볼 결심을 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가 확실히 평일보다는 관람객들이 많다. 1층 로비에 들어서니 기획전시실에서는 기증유물특별전 <한글편지, 문안 아뢰옵고> 전시 중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B
<한글편지, 문안 아뢰옵고>
2025. 12.10. ~ 2026. 03.02.
무료입장

 

● 전시 안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오늘날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편지가 마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한문 서신과는 다르게 한글편지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널리 사용했고, 구어적 표현을 쉽게 쓸 수 있었기에 그들의 일상과 감정을 생생히 담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우리 박물관이 개관을 준비하던 시기부터 여러 분들이 기증해 주신 고문서 중 한글편지들을 정리, 연구하여 한자리에 모은 뜻깊은 성과입니다. 옛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쓴 글에는 사랑과 그리움, 배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편지는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글이 아니라 마음을 잇는 다리였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 여러분께서도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따뜻한 인사를 나누던 옛사람들의 정서를 온전히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 서울역사박물관장 

 

 

당시 한글편지를 쓴 이는 대개 여성들이었지만, 한문에 익숙한 사대부 남성들도 어머니나 부인, 딸, 며느리 등 가족 간의 정을 나누기 위해 한글을 사용했다. 이런 편지들에는 부부, 부모와 자식, 시부모와 며느리, 사돈과 형제자매 등 다양한 관계 속의 따뜻한 사연들이 담겨 있다.

 

 

어머니가 보낸 편지가 순천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진다

 

전시실 초입에는 어머니의 편지가 한양에서 순천에 있는 아들에게까지 약 796리를 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재현해 편지가 배달되는 과정을 실감 나게 볼 수 있다.  편지를 배달할 머슴(?)이 밤낮으로 걸어서 순천으로 향한다.

조선 시대에는 제6로를 이용하여 서울에서 순천까지 갈 수 있다. 제6로는 서울에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지나 통영으로 가는 길이며 남원에서 빠져나와 곡성을 지나 순천으로 간다. 

대동여지도에 표시한 서울에서 순천까지 가는 길

 

 

오정근 한글 편지, 1887년 : 어머니에게 쓴 한글 편지로 집 떠난 지 4-5일이 지나 그리움 마음 가이없다며 모친의 건강과 큰어머니댁 안부를 물었다.

 

오정근 모친 한글 편지 : 날마다 시달리니 건강에 관계되지 않느냐? 방이 춥다니 답답하다. 아침저녁 밥은 어떻게 먹느냐? 나는 치통으로 늘 똑같이 지내니 괴롭다. 과일 조각을 들여보내니, 시장할 때 먹어라.

 

1891년 3월 초6일에 오준영이 숙모에게 쓴 한글 편지이다.

 

 

 

계사년 종자부 한글편지

계사년 1월 초4일에 종자부가 종숙부(작은아버님)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하여 한글로 쓴 편지이다. 새해를 맞아 종숙부와 종숙모의 안부를 여쭌 뒤에 시댁부모의 무탈한 안부도 전하였다.

 

 

 

 

흥복이란 놈이 술을 처먹고 내 친정 조카와 종손의 이름과 성명을 부르면서 욕설을 하고, 흥복이와 재석이 두 놈이 밤새도록 주정을 부렸으니, 이런 분하고 죽일 놈들이 있습니까?

너무 분하여 손수 몇 대 매를 때리니 죽이라며 발악하고, 성내면서 말하니, 그놈들의 죄가 통탄하고 통탄할 만합니다. 주관하는 주요 일이 없고, 수중에 다른 하인도 없어서 그놈들을 치지도 못하고 내쫓지도 못하며 분함을 참고 있으니

아무리 개화세상인들 이러한 욕설을 당하고 무고한 모양이 되겠습니까?

---1909년 윤 2월 16일에 부인이 남편에게 답장을 올린 한글 편지로, 형편의 어려움과 하인들의 문제를 토로하고 있다.

 

 

한글편지는 안부, 축하, 위로를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실용적인 역할도 했다. 필요한 물건의 양과 값을 구체적으로 적은 물목이나 치부 또는 필요한 물건이나 돈 등을 편지와 함께 동봉하여 전했다. 이를 통해 당시의 물가와 생활물품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말 ~ 20세기 전반 : 새해를 맞으며 언니가 동생에게 보낸 한글 편지이다. 아우님의 이름을 부르고자 지필을 가져왔으나, 마음속에 서려 있는 말을 다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다. 조카의 시험 결과 발표 날짜가 예정일이 지나도록 무소식인 것을 답답해하면서 근황을 전하였다. 

 

집안의 여성을 배려하여 한문편지 한쪽에 한글로 사연을 써서 전하거나, 별도로 쓴 한글편지를 동봉함으로써 두루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는 가족과 친지에게 자부심이자 희망이었으며, 그러한 소식을 기다리던 마음은 오늘날과 다르지 않았다.

 

 

18세기 상공업의 발달과 함께 부를 축적한 중인과 상민 사이에서도 한글편지가 널리 퍼졌다. 편지 쓰는 법을 익히기 어려웠던 이들은 한글 간찰 서식집인 <언간독>을 참고해 편지를 썼고, 한글 편지는 점점 대중적인 소통의 매체로 자리 잡았다.

아래는 글씨 쓰기를 연습한 초본이다. 같은 내용을 두 번씩 반복해서 썼다.

내용은 새해 아침에 옥후께서 평안하신지 여쭙고, 올린 말씀을 살펴 주신다면 황송하겠다는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마지막에 '쇼인 윤참판 집'이라고 적어 둔 것으로 보아, 발신자를 밝혀 둔 것으로 이해된다.

 

한글 편지의 정리와 해제의 성과를 담은 아카이브형 키오스크도 있다. 총 31건의 한글편지를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편지를 띄워 글씨를 클릭을 하면 오른쪽에 현대어로 읽을 수 있어서 옛사람들의 구어적 표현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