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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계속으로/터키

페르가몬 왕국의 유적터 아크로폴리스

다보등 2012. 12. 6. 08:14

페르가몬 왕국의 유적터 아크로폴리스

 

 

 

 

 

 

자연 치료법으로 치료했다는 고대의 종합의료센터인 아스클레피온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나오면 저 멀리 높은 산위에 고대 도시가 아스라히 보인다.저곳이 페르가몬 왕국의 유적인 아크로폴리스이다. 버스로 산아래까지 이동을 하여 다음엔 케이블카를 타고 산위로 올라가야 한다. 예전엔 걸어서 올랐다는데 그나마 케이블카가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환경을 위해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고 있는 우리나라 여러곳을 떠 올렸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며 내려다 보이는 베르가마의 모습

 

 

 

 

 

 

제우스 신전터라고 하는데 지금은 소나무 세그루만이 덩그라니 남아 있어 그 옛날 신전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당시에는 헬레니즘 시대 최고의 건축물로 손꼽히던 곳이었다고 한다. 제우스 신전은 에우메네스 2세 때 갈리아인 등의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리고 이곳에서 나온 유물들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허망한 유적지 빈터 소나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고대의 페르가몬 왕국이었던 베르가마는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부하였던 리시쿠스가 기원전 323년에 세운 도시다. 페르가몬은 독립된 왕국을 중심으로 높은 문화를 이루었는데 기원전 133년 마지막 왕인 아탈로스 3세가 죽은 후 왕국이 로마 공화국에 영입되면서 페르가몬 왕국이 사라지게 된다. 페르가몬의 문화유산을 보는 것이 바로 베르가마를 가는 이유이기 때문에 아크로폴리스는 베르가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다. 이곳은 페르가몬 왕국의 중심지였고 페르가몬이 번성했던 당시에는 아테네, 알렉산드리아에 버금갈 정도의 규모였다.

 

 

 

제우스신전터에서 고개를 들면 언덕위로 보이는 원형극장과 기둥만 남은 하얀색의 트리아누스 신전은 얼핏 그랜드피아노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야외원형극장은 기원전 3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그리스 시대에서는 아찔할 정도로 최대의 경사를 이루고 있는 야외극장이다. 수용인원은 약 만명정도였는데 아찔한 급경사로 어질어질 무섭기까지 하다.

 

 

아찔한 급경사 아래로 현재의 도시 베르가마가 한눈에 보인다.

 

 

 

 

 

 

 

 

 

아테나신전 터와 도서관 터

아테나 신전은 기원전 4세기 에우메네스 2세때 건설된 것으로 총 60여개의 기둥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헬레니즘 예술을 대표하는 '죽으러 가는 갈리아인'의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모조품이 남아 그 흔적을 보여준다.

 

 

산의 정상에는 페르가몬 왕국의 상징이었던 트리아누스 신전을 만날 수 있다. 로마의 트리아누스 황제때 건축을 시작했지만 완성되기 전에 황제가 숨을 거두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때 비로소 완성된다. 하얀 색 대리석 기둥만이 남아 허망한 모습을 보여 준다. 영원한 영화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는 모양이다.

 

 

 

 

 

트리아누스 신전에서 내려 다 보는 야외원형극장과 베르가마 현재의 도시모습. 이 신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훌륭하다더니 정말 멋지다.가스로 인해 시야는 시원하지 않지만 말이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유적지 뒤편으로 가 보았다. 너무나 많은 꽃들이 융단처럼 깔려있어 여기저기 탄성이 쏟아진다. 정말 너무나 아름답다. 이렇게 많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모습은 정말 처음보는 장관이었다.

 

 

 

 

 

 

폐허의 유적지 너른 풀밭에 야생화가 그야말로 천국같다. 하얀데이지 사이로 붉은 개양귀비가 피처럼 선명하다. 수 많은 꽃들 사이로 폐허가 된 유적지가 쓸쓸하다. 결국 영원한 것은 없다.

 

 

 

 

아래에 호수가 보인다. 지금은 댐을 막아 호수가 있다만 그 옛날엔 것도 아닌듯 싶고...이 높은 곳까지 물을 끌어 올렸다한다. 먼곳에서 이곳 산정상까지 물을 끌어 올렸다고 하는데 물을 길어 올리느라 노예들이 엄청난 희생을 했을듯 싶다. 아마도 물 때문에라도 이 도시가 영원할 수가 없었을듯 싶다.

 

 

 

 

 

 

신전의 북쪽에는 도서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헬레니즘 시기에는 세계 최대의 규모를 가진 도서관이었다. 무려 20만권의 장서를 자랑하며 당시 페르가몬 도서관의 규모에 위협을 느낀 알렉산드리아가 파피루스의 수출을 중단하게 되고 파피루스를 쓸 수 없게 된 페르가몬에서는 대신 양피지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