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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계속으로/인도

시크교의 성지 암릿차르 '황금사원'

다보등 2016. 2. 15. 14:45

시크교의 성지 암릿차르 '황금사원'

 

 

 

 

 

 

 

2015년 7월3일

다람살라에서 암릿차르까지는 버스로 5-6시간이 걸린단다. 자다깨다 하다보니 어느새 암릿차르에 도착을 했다.암릿차르는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약 3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라호르와 대치하는 교통, 군사상의 요지이다. 1577년 시크교의 제 4대 구루 람 다스가 시크교 신앙의 중심지로 성천 암리타사라스 주변에 건설되어 시의 명칭이 비롯되었다. 1604년 연못의 중심에 황금빛을 발산하는 황금사원을 건립하면서 시크교의 성지로 여겨졌다. 시크교는 인도에서 가장 많은 박해를 받은 종교로도 유명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나뉠 즈음 시크교도의 본거지인 푼잡 주가 동서로 갈리며 쌍방학살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도 마이너리티인 시크교도들. 1980년대 시크교 분리주의자들의 무장시위에 맞선 인디라 간디의 전격적인 진압 작전으로 최고 성지인 황금 사원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비극을 낳기도 했다.

 

 

 

 

 

 

 

 

 

 

 

 

차에서 내리니 그 동안의 고산에서의 시원함은 언제 그랬던적이나 있었냐 싶게 훅하고 달려드는 열기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호들갑스럽게 서둘러 호텔안으로 냅다 들어갔다. 냉방시설 지대로인 시원한 호텔에서 잘 차려진 점심뷔페로 배를 채웠다. 다들 흡족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식사후 우리는 릭샤를 불러타고 시크교의 총본산인 황금사원으로 간다. 나는 암릿차르가 두번째이다. 당연 황금사원도 두번째인게지. 암릿차르 입구쪽은 이년전보다 훨씬 정돈된 모양새이다. 한번 왔던 곳이라고 익숙하다. 그래 내가 이 황금사원엘 또 오게될지 어찌 알았겠나... 처음 보다는 가슴 설레이는 호기심은 덜하긴 하기만...그러나 친구를 다시 만난듯 반갑기 그지없다. 입구에 들어서며 호수 한가운데 황금사원을 보니 이건 꿈이 아니고 정녕 현실이었다. 정말 내가 다시 이곳에 왔다는거...그리고 이 인도사람들의 외국인에 대한 여전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도 낯설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자는 호의(?)도 거절않고 모델이 되어 주기도 하는 일을 즐겼다. 아주 유쾌하게 말이다.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대리석의 뜨거움 조차 온 몸으로 즐겼다.

 

 

 

 

암리차르는 '감로 甘露의 땅'이라는 의미로 시크교 최대의 성지이다. 황금사원은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전에 가 보아야 할 50곳 가운데 6순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사원에 들어 갈때는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천으로 감싸고 신발을 벗고 발을 씻어야 한다. 이건 남녀 모두 해당이 된다. 모자도 안된다. 우리는 일찌감치 스카프를 둘렀다. 입구에서는 준비가 안된 이들을 위해 주황색의 작은 머리수건을 나눠준다. 그걸 쓰면 된다. 그리고 신발 보관소에 신발을 맡기고 맨발로 입장을 한다. 물론 보관료는 공짜다. 전 세계에 성공한 부자들중 시크교도들이 의외로 많단다. 그들의 기부로 무료로 운영되는 것들이 많다.

 

 

이런 모양의 두건을 쓴 사람이 시크교이다. 색은 자유인지 다양한 색의 두건을 썼다.

 

 

 

 

 

황금사원...

하리 만디르라는 정식 명칭보다 '황금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황금 사원이라는 애칭이 붙은 이유는 시크교 왕국의 마하라자였던 란짓 싱이 약 400kg의 황금을 제공해 지붕을 덧씌웠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건물 전체가 번쩍이지만 사실 지붕만 100% 순금으로 제작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도금으로 처리됐다고 한다.

이 년전 방문때 두루두루 보았기에 이번엔 멀찌감치서 보는 것으로....

 

 

 

 

 

 

 

이 년전 이곳에 왔을땐 그 전날 델리에서 밤기차를 타고 암릿차르로 왔었다. 저녁을 김밥 한줄로 떼우고 아침에 암릿차르에 도착하여 미쳐 아침도 못먹고  오전 11시쯤 황금사원엘 왔더랬다. 들어서자마자 달밧공양부터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밥이 얼마나 맛이 있었겠나 싶다. 이 곳 황금사원에서는 전 세계의 시크교도들이 보내는 헌금으로 누구에게나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식당인 '구루 카 랑가르'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곳뿐만이 아니라 인도 전역의 시크교 사원에는 같은 이름의 무료 식당이 있다. 이처럼 무료로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크교 창시자인 구루 나낙이 평생 탁발을 하며 유량한 것에 대한 보답의 의미라고 한다.

 

 

 

 

나는 다시 한 번 어마어마한 식판들을 보고 정말 입이 쩍 벌어졌었다. 이번엔 그나마 두번째인데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식판은 다시봐도 놀랍기만 하였다. 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함께 짜이를 마셨다. 유쾌하기 그지 없었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식판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쌓여 있는 식판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 아래 사진은 2013년 황금사원을 방문하였던 당시 식판들이다. 이런 식판의 산이 몇개나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습이다.

     아래 달밧 사진 역시 2013년 방문시 점심으로 받은 음식이다.

 

 

 

달밧은 허접해 보이긴 하지만 의외로 먹을만 하였다.(밤기차에 시달리며 암릿차르에 도착하였고 그 전날부터 거진 굶다시피 하였으니 천하에 어떤 것도 맛있었겠지만 말이다...)

달은 녹두를 끓인 것이고, 밧은 밥이다. 빈그릇은 물그릇으로 나중에 주전자를 든 이가 와서 물을 부어준다.(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 물을 마시지는 않는다.) 걸죽해 보이는 달은 녹두를 끓여 만든 것으로 난(넙적한 빵...)과 함께 먹는다.

2013년 황금사원에서 달밧공양을 한 글이다.기억이 새롭다.  http://blog.daum.net/whdms26/17189341

 

 

 

 

 

 

 

 

 

 

 

 

 

 

 

 

 

 

 

 

 

 

 시크교와 인디라 간디

인디라 간디가 인도의 총리이던 1984년 시크교도들이 암리차르에 있는 황금사원을 점거하여 자치를 요구하며 봉기하고 이에 당시 인도의 수상 인디라 간디는 탱크를 동원해 황금사원을 장악하고 무력진압. 이때 사원안에서 저항하는 수백명의 시크 분리주의자들을 공격해, 정확한 공식 집계는 아니지만 450~1,200여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얼마 후 이에 대한 복수로 시크교를 믿는 자신의 경호원에 의해 간디는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