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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손오공이 인도로 가던 중 파초선으로 불을 껐다는 '화염산' 본문

걸어서 세계속으로/정통 실크로드 신장자치구

손오공이 인도로 가던 중 파초선으로 불을 껐다는 '화염산'

다보등 2021. 5. 16. 22:47

2014년 7월 30일

「 2014년 여름에 갔다온 실크로드 신장자치구여행 사진을 들춰보며 묵은 먼지를 털어낸다.  하도 오래전 여행인지라 당시 일기는 어디로 갔는지 그저 사진만 남은 상태. 사진을 들여다보니 당시 기억이 사진따라 뒤죽박죽. 정확한 여정은 생각이 나지 않으나 사진 흐름을 따라 정리를 하기로..」

 

고창고성, 교하고성을 돌아보고 투루판으로 가면서 화염산과  무토우 계곡으로 접어 들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벌건 사막, 이 곳은 베제클리크 천불동이 있는 화염산 무토우 계곡이란다.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6세기 고창국 시대에 시작해 7세기 당 서주시대를 걸쳐 13세기 원나라 때까지 조성되었다. '베제클리크'는 위구르어로 '그림이 있는 곳' 또는 '아름답게 장식된 곳'이라는 뜻이란다. 황량한 사막에 굴을 파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하여서 베제클리크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굴 안에 아름다운 그림(벽화)와 예술품은 약탈 당해 지금은 거의 폐허와 다를 바 없는 곳이 되었다. 1902-1906년 3차례에 걸쳐 독일탐험대가 거의 전부를 뜯어 내어 가버렸다. 이 유물들은 안타깝게도 2차 세계대전 때 유실됐다.

1909-1910년 러시아에서도 많은 벽화를 가져갔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오타니 탐험대도 이곳에서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부는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오타니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수장되어 있다.

 

이런 무지막지한 약탈을 당한 베제클리크 천불동의 아름다운 벽화들은 간 곳 없고 현재는 빈 껍질만 남은 동굴 사원만 남아있을 뿐이라고.

 

 

화염산 아래 절벽의 베제클리크 천불동 유적이 있는 곳이다. 수천 여개의 불교 벽화가 있었으나 빈껍데기만 남은 안타까운 유적지. 베제클리크 석굴은 이중 삼중으로 인위적 파괴를 당했다. 그것도 문명을 외치는 현대인에 의해서.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나 싶은 붉은 산만 보이는 황량한 이 곳 산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있다. 초록빛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곳은 분명 지구가 맞다.

베제클리크 석굴의 수난을 보며 유물의 파괴는 자연적인 파괴와 인위적인 파괴 두 가지가 있다. 풍화작용이나 지진 같은 자연에 의한 파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이 자행한 인위적인 파괴는 문명파괴행위라고 본다. 베제클리크 석굴은 문명파괴행위의 처절한 현장이다.

 

 

 

불타는 화염산에 오프로드 투어가 있다. 낙타를 타고 오르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냥 걸어 올라 갔다.

이름모를 행성의 막막한 사막을 걷는 기분이다.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행색이다. 

 

저 죽은 나무는 그냥 갖다가 심어 놓은 것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중국에서 가장 더운 지점을 기록하고 있다는 화염산에 와서 수박을 먹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없을 맛있는 수박이다!

수박을 먹고 손오공이 다녀갔다는(?) 화염산절경구에 도착을 하였다.

 

소설<서유기>에 삼장법사 현장이 손오공 등을 데리고 불경을 가지러 인도에 가다가 서역에서 거대한 불타는 산을 만나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 때 손오공이 우마왕의 부인 나찰녀의 파초선(한번 부치면 강풍이, 두번 부치면 비가 내리고, 세번 부치면 태풍이 일어나는)을 훔쳐 마흔아홉번 부채질을 해서 화염산 열기를 잠재우고 인도로 떠났다는 배경지가 바로 화염산이다. 

 

 

화산활동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에 침식되어 형성된 협곡과 산으로 용암이 녹아서 산 아래로 길을 내었고, 화염산의 불타는 형상을 갖추게 했다.

화염산의 평균 높이는 500m이며, 여름에는 80도까지 이를 정도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곳으로 중국에서 가장 더운 지점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온도계가 있으며 투루판 주변의 유적지와 맞물려 인기있는 관광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