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그린로즈의 일상 스케치

<낙타샹즈> 베이징을 사랑한 작가 라오서老舍의 대표작 본문

공연,영화,서적

<낙타샹즈> 베이징을 사랑한 작가 라오서老舍의 대표작

다보등 2026. 4. 29. 22:40

 
내가 라오베이징인老北京人 라오서(老舍)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1월 칭다오靑島에서 한달살이를 할 때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칭다오 거리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곤 하였었다. 20세기 초 중국의 저명한 인사들이 살았던 고택들이 골목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위산루魚山路에서 시작해 칭다오미술관을 관람하고 대학로大学路를 거쳐 라오서 고택(낙타샹즈骆驼祥子박물관)이 있는 황시엔루까지 걷다 보면 커피 향 그윽한 커피거리가 있다. 베이징에 라오차관이 있다면 칭다오에는 라오서 박물관과 이어진 거리가 커피거리다. 커피거리에서 만난 라오서는 낯선 중국작가였고 라오서 박물관에 들어서면 먼저 마당에 인력거를 끄는 청동상이 있다. 그 인력거꾼이 <낙타샹즈骆驼祥子>의 주인공 샹즈祥子란 것도 사실 당시엔 몰랐다. 소설 <낙타샹즈>는 중국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이다. 처음 접하는 중국작가 라오서, 그의 대표작인 <낙타샹즈>는 이미 오래전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고. 나는 ‘낙타샹즈’를 메모를 해두었었다. 

그리고 일 년 후에 코로나가 창궐하였고, 사이버대학에서 중국어 수업을 들을 때 이 책을 찾아 읽었었다. 

낙타샹즈박물관
인력거를 끄는 샹즈
老舍 1899-1966

 
 
라오서는 중국 현대문단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1924년 영국으로 건너가 중국어를 가르치다가 서양문학작품을 읽을 기회를 접하면서 소설 창작을 시작하게 된다. 1931년에 귀국하여 칭다오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전업 작가의 길로 접어든 그는  1936년 그의 대표작인 <낙타샹즈>를 발표하여 이름을 알렸다. 베이징에 사는 인력거꾼 샹즈의 비참한 일생을 그린 이 소설은 당대 하층민의 삶과 그를 둘러싼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그려놓아 비판적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지옥에 굴러 떨어져도 착한 귀신이 될 법한 사람, 샹즈는 그런 사람이었다. 농촌에서 자란 그는 부모를 여의고 열여덟 나던 해에 북평(예전의 베이징老北京)으로 왔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며, 세상 물정에 어두울뿐더러 기댈 친지나 친구조차 없는 천애의 고아나 다를 바 없는 막일꾼, 무릇 힘을 팔아서 먹고 사는 일이라면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오래지 않아 인력거를 끌면 다른 노동에 비해 변화와 기회가 많아 더욱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빌린 인력거를 끌게 되면서 자기 소유의 인력거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는 틀림없이 달성할 수 있는 소망이자 목적으로 결코 헛된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또한 보통 인력거꾼처럼 나쁜 습관에 물들지 않았다.
 
‘자신의 인력거를 끌지 않으면 그는 헛되이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돈을 벌거나 부동산을 사놓을 생각도 없었다. 그가 가진 능력은 오직 인력거를 끄는 것이었으니, 그가 믿을 수 있는 희망 역시 자신의 인력거를 사는 일뿐이었다. 인력거를 사지 못하면 스스로 면목이 없었다.’ /  69
 
나의 인력거,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먹을 거, 입을 거, 심지어 몸이 아파도 약조차 사 먹지 않고 꼬박 3년이나 걸려서 겨우 100원을 모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샹즈는 원래 계획은 가장 완벽하고 최신식이며 가장 마음에 든 인력거를 사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100원 한도 내에서 살 수 있는 인력거를 구입했다. 지금으로 치면 회사택시를 몰다가 개인택시를 몰게 된 것이다. 샹즈는 꿈을 이룬 것이다.
 
‘샹즈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보증서를 받고 인력거를 끌고 오면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외진 곳으로 끌고 가 자신의 인력거를 자세히 살펴왔다. 옻칠한 판때기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기도 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이상과 부합하지 않는 곳도 모두 너그럽게 봐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 자신의 인력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 19
 
‘샹즈는 이른 아침에 인력거를 끌고 한바탕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찬바람이 소맷부리로 스며들면 냉수욕을 하는 것처럼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미친 듯 바람이 몰아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문 채로 앞을 향해 바람을 뚫고 지나갔다. 마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큰 물고기마냥. 바람이 커질수록 그의 저항도 더욱 커졌다. 마치 미친바람과 일대 격전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맹렬한 맞바람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면 한참 동안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결국 딸꾹질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마치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는 것 같았다. 딸꾹질을 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 어떤 것도 이 거인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온몸은 한 군데도 풀어진 데 없이 팽팽해졌다. 마치 개미 떼에 포위공격을 받고 있는 파란 벌레가 온몸을 뒤틀어 저항하듯이. 온몸이 땀투성이다! 인력거를 내려놓고 허리를 쭉 펴서 긴 한숨을 돌린 뒤 입가에 묻은 황사를 닦아내면 문득 자신이 천하무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127.
 
인력거는 샹즈의 희망이고 살아가는 전부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대부분 허사가 되는 법이니, 샹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력거를 사고도 인력거를 잃고, 돈을 모아도 다시 빼앗기고, 다시 사고, 다시 팔아 버리고 자꾸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마치 헛것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에게 능멸을 당할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집적거린 일이 없고, 하다못해 떠돌이 개 한 마리도 피해 다녔건만 결국 빈털터리가 되었다.
 
소설에서는 순박한 인력거꾼 샹즈가 힘들게 마련한 인력거를 당시 군벌의 병사들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마련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샹즈라는 이름 앞에 낙타라는 말이 붙은 것은 그가 어렵게 마련한 인력거를 군인에게 뺏기고 탈출하면서 낙타 세 마리를 끌고 온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무런 밑천이 없었던 샹즈는 낙타를 팔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만큼의 돈을 받았지만 샹즈는 이에 굴하지 않고 갖은 고생을 견뎌내며 돈을 모은다. 그러나 그 조차도 손형사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후 샹즈는 원하지 않았던 결혼이지만 후니우와 결혼도 하고 나름대로 삶에 대한 희망도 품어 보지만 결국 후니우도 죽고 인력거까지 잃고 삶에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는 나락에 떨어져 그날그날을 적당히 살아가게 된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이웃집 딸 샤오푸즈를 사랑했으나 사창가에 팔려간 샤오푸즈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연이은 불행은 성실하고 순박했던 샹즈를 하루아침에 바꿔버렸다. 더 이상 희망을 품지 않았다.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고, 도박하고, 나태하고..., 방탕하고 교활한 모든 모습은 그가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체면을 소중히 여기고 강인하게 꿈을 좇던 사람, 자신을 사랑했고 독립적이었던 사람, 건장하고 위대했던 샹즈. 그러나 타락한 인간, 이기적이며 불행한 인간, 사회적 병폐의 산물이며 개인주의의 말로에 선 그 영혼이 언제 어떻게 땅에 묻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샹즈는 때마침 그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사막에서 그처럼 오랜 시간을 헤매던 그에게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를 바 없었다.’ / 105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마음을 잠시 거둘 수 있었던 차오 선생 댁에서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샹즈에게 오아시스란 어떤 것이었을까? 잘 먹고 잘 자면서 깨끗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지옥에 떨어져도 착한 귀신이 될 법한 샹즈처럼 살아도 오늘날 현실은 뛰어넘기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근면, 성실만 하다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은데, 현실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바뀔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서럽다. 아무리 애써도 악몽에서 헤어날 수 없는 상황, 그것은 개인의 재앙이자 또한 사회의 비극이다. 제2, 제3의 샹즈가 오늘날에도 무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단어, 희망, 꿈, 목표 등의 단어가 주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라오서의 첫 번째 작품인 <낙타샹즈>는 베이징 구어를 활용하여 베이징에 사는 가난한 인력거꾼 샹즈의 인생을 통해 서민들의 비참한 삶과 그들을 억압하는 권력의 부패와 횡포, 사회의 무질서를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사회 현실이 너무 리얼해서였을까? <낙타샹즈>는 한동안 중국에서 금서로 낙인찍혔었다가 1978년 해제되었다.
라오서는 뤼쉰과 함께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하지만 1966년 문화혁명의 광풍을 피할 수 없었다. 수백 명의 홍위병들에게 욕설과 구타를 당하고 귀가한 라오서는 이튿날 새벽 자금성 근처 태평호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라오서는 생전에 “나는 중국문화계의 졸장부일 뿐이어서 대장부들의 큰 뜻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붓을 총을 삼았고, 내 피를 짜내는 심정으로 졸고를 썼다. 내가 죽으면 묘비에 ‘책임을 다한 문학계의 졸장부 여기 묻히다.’라고 쓰였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는 문혁의 광풍이 끝나고 나서 1978년에 복권됐다. 그가 죽은 지 12년이 지난 다음이다. 그 스스로 졸장부라 칭했지만 중국인들은 그를 대작가의 반열에 기꺼이 올려놓았다.